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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ph Mar 29. 2022

영어 이름

유진, 조셉, 형배

영어 이름이 하나 필요한데 외국에 오래 산 네가 잘 알 것 같으니 하나 지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현재 후보군이라며 내게 리차드, 세바스찬.. 등을 말한다. 나는 절레절레하며 음, 글쎄, 너의 나긋나긋한 이미지와는 좀 동떨어진 느낌이야. 그러고 보니 일상 속에서 외국 사람과 만날 일이 거의 없는 토종 한국 사람에게 영어 이름이 주는 이미지라면 영미권 셀럽과 결부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했다. 예를 들어 앤(Ann)이라면 앤 해서웨이, 브래드 (Brad) 하면 브래드 피트의 이미지가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것은 꽤 합리적 의심이다.


한국말에 한 글자만 들어가도 이름을 예스럽게 만들어버리는 음절이 있는 것처럼 현지인만 느낄 수 있고 일반적으로 공유되는 그런 보편적 뉘앙스가 당연히 영어 이름에도 있다. 예를 들어 도로시(Dorothy)나 에드워드(Edward) 같은 이름은 상당히 고전적이고 예스러운 느낌을 준다. 왠지 영국 애프터눈 티타임에 가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란 느낌? (스타트업 네트워킹 파티에서 샴페인 들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은 아니다.) 그에 반해 클로이 (Chloe) 같은 이름들은 도회적이고 경우에 따라선 약간 깍쟁이 같은 인상을 줄 수 있다.


1980년대 미국에서 유행했던 이름들을 2022년과 비교해봤다. 15위까지 순위권에 든 이름들을 비교해봤을 때 여자 이름은 단 하나도 겹치는 게 없고 남자 이름은 James와 Daniel 정도가 전부다. 한국인들이 흔히 선택하는 영어 이름들은 대체로 1980/90년대에 유행했던 이름이란 게 흥미롭다. 굳이 말하자면 ‘철수’ ‘영철’ 같은 느낌일탠데. 그러고 보니 2022년 가장 인기가 많았다는 Noah, Ayden이나 Grayson 같은 이름을 선택하는 유학생들은 거의 본 적이 없다. 하긴 파란 눈동자의 서양 남자가 22년 최신 유행 한국 이름이랍시고 ‘서준이에요’ 혹은 ‘시우예요’ 하는 것도 으악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것 같다. 이름은 보통 단어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고 그 나라 고유의 문화적 콘텍스트 안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뉘앙스가 남기는 느낌이란 게 흔히 그렇듯 그게 왜 그런지를 콕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나 또한 분명치 않은 이유로 내 한국 이름 (’ 형배')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배'가 주는 어감이 묘하게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영국으로 처음 이사를 갔을 때 이름을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건 꽤나 신기한 경험이었다. 같이 영어수업을 듣던 중국 여자아이들도 이 경험에 무척 들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들은 작명 아이디어를 온갖 종류의 음식으로부터 가져오는 듯했기 때문이다 캔디, 체리, 등등.. (난 그 이름들을 매일 불러야 했던 ESL 선생님의 입장을 20년이 지나 다시 생각해봤다. #스승의 은혜)


여하튼, 당시 판타지 소설들에 한참 심취했던 나의 첫 선택은 <비상하는 매>의 주인공 ‘펠'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이름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꼭 한번 되물어봐야 하는 수고를 끼쳤기에 결국 돌고 돌아 유진(Eugene)이 됐다. 나의 첫 영어 이름. 기원은 아일랜드로 거슬러 올라가며 ‘고귀한 혈통 (noble genes)'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꽤나 예스러운 이름.. 이란 건 한참 지나 알게 된 사실이었고, 그냥 영국 가서 처음 본 영화의 주인공 이름이어서 골랐다. 영미권에선 분명한 남성 이름이지만 한국 사람이 듣기엔 중성적인 그 어감이 좋아서 골랐던 걸로 기억한다. (이후 대학 갈 때쯤 다시 ‘조셉'이 되었는데 이 얘긴 생략하자.)


사실 외국에 나가 영어 이름을 선택하는 건 필요에 의한 것이고 반강제적인 경우가 많지 않은가 싶다. 예를 들어 ‘형’ 같은 음절은 영국인이 발음하기가 어렵다. 나름 노력한다는 게 ‘히웅’ 혹은 ‘하이 엉’이고 그래서 나는 ‘히웅바이’ 내지는 ‘하이엉배이’가 되었으며 다시 만날 때 그들은 보통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심지어 이 이름은 약자로 줄여 표현하려 해도 딜레마에 봉착한다. HB라고 했다간 내가 문구류로 전락하는 느낌이고, Bae는 사실상 ‘자기야’와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총체적 난국이다.


발음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어떤 이름은 그네들 문화권에서 가지는 의미 때문에 난감해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한국 이름에서 정말 흔한 ‘동’ 같은 경우 ‘dung(똥)’을 연상시켜서 안되고, ‘범’은 ‘Bum(엉덩이)’여서 피해야 하며 ‘석’은 ‘Suck’이어서 안된다. 유소영 (You So Young), 임소영 (Im So Young), 오유석 (Oh You Suck) 등등 문제가 될 베리에이션은 무궁무진하다. 그러니 영어 이름을 가지는 게 현지인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 꽤나 합리적으로 들리고 돌이켜보면 나 또한 그런 논리에 설득당했다.


그런데 사람들 앞에서 내가 ‘히웅바이’가 될 때마다 느꼈던 감정을 곰곰이 떠올리다 보니 그게 바로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그 이름이 영국인들 앞에서 불릴 때마다 내가 느낀 감정이 수치심 비슷한 것이었음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그 이름을 발음하려 누군가 애쓸 때마다 나는 그가 적당히 하고 나를 ‘Mr. Park’으로 불러주길 간절히 바랬다. 아무도 무어라 한 적이 없음에도, 누군가 내 이름이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하며 움츠려 들었다. 이름은 존재 자체다. 그러니 이름을 부끄러워해야 했던 경험은 한 인간의 자아에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적어도 겉으론) 남의 이름을 면전에서 비웃을 만큼 무례하진 않다는 걸 알게 되며 처음 내가 느낀 그 수치심은 조금씩 잊혔지만 사실 내가 유진으로, 조셉으로 살기로 한 건 실용성의 문제가 아닌 이런 이방인의 감정에서 달아나고 싶었음이 아닐까. 그 상흔은 지금 내 속엔 어떤 식으로 남아 살아가고 있을까.


대학 후배가 예전에 페이스북에 쓴 글이 문득 생각난다. 나만큼이나 발음하기 쉽지 않은 이름을 가졌던 그는 ‘내 이름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지성의 소유자와는 굳이 친구를 할 마음이 없다.’라고 썼다. 그것도 모두가 읽을 수 있게 멋들어진 영어로. 생각해보면 한국어엔 존재하지 않는 R발음이나 F 발음을 정확히 내려고 우린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가! Sheet과 Shit, Beach와 Bitch를 틀리지 않으려고 바짝 긴장했던 시간을 생각해보면 이건 결국 노력과 존중의 문제란 결론이 나온다. 그 친구가 옳았다.


십수 년 전의 내가 나의 이방인 됨을 좀 더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내 영국 생활은 달랐을까. 너희들은 기껏해야 대장장이(Smith)에 제빵사(Baker) 아니냐. 이 뉘앙스도 없는 일차원적인 이름들아. 내 이름은 형통할 형에 북돋을 배로서 가는 곳마다 형통함의 통로가 되라는 풍성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단다. 자 따라 해 보거라. 히웅바이 아니고 형.배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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