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부터 3교대 근무를 들어가면서 각 근무 형태마다 어떻게하면 알차게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예를 들면, 아침근무 때는 퇴근 후 낮잠 자지 않기, 오후근무에는 일찍 일어나서 아침에 운동하기 등이 그것들인데, 제대로 못 지키는 계획들이 많았지만 나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나가려는 나만의 방식이었기에 지금도 계속 도전하고 있다.
이런 소소한 고민 중 주로 야간 시간에 노력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이는 근무 중간의 휴게시간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야간근무 중에는 중간에 야식타임(야식이라니 대번 치킨이 떠오르지만 그냥 밤에 식당에서 밥을 먹어서 야식(夜食)이다)이 있고, 식사 후엔 카페나 매점 등이 열려있지 않다보니 휴게실에서 잠깐 눈을 붙이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보다 다시 근무에 들어가곤 한다. 초기에 일을 적응할 때는 피곤함에 잠을 청하기 일쑤였는데, 슬 있다보니 잠도 안 오고 하염없이 페이스북만 보기엔 시간이 아깝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건물 1층에 놓여진 책장이 눈에 들어왔다. 임직원들이 자유롭게 책을 대여하고 반납할 수 있게 다양한 종류의 도서를 비치해둔 것이었는데, 작년 이 맘때쯤 한 권 빌려본 이후로 잊고 있었던 공간이었다.
매번 집에서 읽는 책을 들고 오는 번거로움을 감수하지 않고, 그저 야간 때마다 짬내서 여기에 있는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드는 순간, 바로 이 책이 눈에 보였다.
오늘의 책.
김연수 작가의 '세계의 끝 여자친구'
핑크핑크한 이 책은 사실 처음 접한 건 꽤 오래 전 일이다. 다독(多讀)의 아이콘인 어머니를 통해 김연수 작가님을 알게 되었는데, 이 책을 비교적 여유가 많았던 제대한지 얼마 안 된 그 때에 집 책장에서 발견하곤 꺼내 읽은 적이 있었다.
보기와는 다르게 감성이 풍부하여 섬세한 문체에 감동하기 일쑤인 나에게 핫핑크의 책표지는 그 때 느꼈던 향수를 다시금 떠오르게 하였고(물론 내용은 다 까먹었었다), 바로 책을 집을 수밖에 없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것은 '여운 속에 남아있는 희망'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각각의 단편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부족하다. 이별을 경험했거나, 지독한 외로움에 잠겨있다거나, 공허하거나. 하지만 그런 인물들이 만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그 속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몇몇 해피엔딩의 영화처럼 선명하고 밝은 미래를 보여주진 않지만, 적어도 인물들이 앞으로 더 나아질거라는 희망을 잔잔한 여운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을 것만 같은 소설 속 인물들의 사랑과 이별, 그들이 느끼는 애틋함과 담담함, 아름다운 추억과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나의 경험과 한 때 나를 사로잡았던 감정들과 엮이며, 어느새 나도 그 마음에 공감을 하고 희망을 느끼며 더 나아가 그들과 함께 위로를 받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힘들다. 그 힘듬은 나 자신이 아니면 누구도 대신 이해해줄 수 없고 남이 대신해서 이겨내줄 수도 없다. 참 슬프지만 그게 현실이더라.
하지만 다행인건, 가끔 누군가에게, 혹은 그 사람과 함께했던 기억에다 그 짐을 덜어낼 수 있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순간들을 통해 내가 위로받고, 또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이 참 희망차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 그런 기억들을 적게나마 가지고 있음에 감사하며,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자고 다짐하며, 새벽을 마무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