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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민 Nov 08. 2021

러시아에서 엄마가 됐습니다_1

"지금 바로 출산하셔야 합니다"


2021년 10월 중순. 출산 예정일이 3주 남은 시점, 그동안 미뤄왔던 육아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렸을 적 집집마다 있었던 노란 전화번호부 책 두께의 육중한 존재감의 육아 서적 '삐뽀삐뽀 119' 책도 읽어보리라 다짐했다.


야무진 다짐을 한 다음날,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됐다.


37주 1일, 러시아 모스크바 산부인과에 막달 정기검진이 있던 날이었다.

아기의 머리가 평균치보다 커서, 러시아 의사들이 초음파 검사를 할 때마다 '발쇼이 가라바(머리 엄청 커요)'라며 하하 호호하곤 했는데,

이번 주에는 또 얼마나 자라서 러시아 의사들을 놀라게 하려나 장난 섞인 걱정을 하며 병원에 갔다.


진료실에 들어가서 태동검사 장치를 배에 달고 편안한 마음으로 누워있는데, 의사들의 동향이 이상했다.

알아듣지 못하는 러시아어로 담당의사와 산파가(러시아 산부인과 병원에는 산파 - midwife가 산모마다 배정되고 출산 과정을 거의 주도하다시피 한다) 수군대더니 몇몇 의사가 더 들어왔다.


의사들끼리 한참을 더 열 띄게 토론을 하더니, 겨우 내게 말을 걸었다.   


"자궁이 수축하고 있었는데, 모르셨어요? 아기가 배속에서 힘들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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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20주 차에 지금 다니고 있는 모스크바 산부인과 'EMC Radom'에서 정밀 초음파 검사를 받았는데,

그때 탯줄 안에 두 개가 있어야  동맥이  개뿐이라는 단일 제대 동맥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다른 이상 징후가 없었고, 이후로도 아기가 쭉 잘 자라주었기에 탯줄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 조차 잊고 있었는데,

막달이 되자 아기가 하나뿐인 탯줄로는 산소와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받을  없었나 보다.  

아기는 내 배속에서 숨을 할딱거리고 있었고, 더 잘 먹고 놀 수 있는 세상으로 나오고 싶어 하고 있었다.


그래서 계속 엄마에게 ' 나갈래요'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데, 둔한 나는 그걸 까맣게 몰랐다.  

"배가 좀 당기네. 이래서 막달이 힘들다는 거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심지어 아기 머리가 크다는 의사 말에 예정일보다 조금 더 일찍 낳겠다는 심산으로 하루에 거의 한 시간씩 걷기 운동을 하고, 모스크바의 가을을 만끽하겠다며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다니고 있었다.

진료 전날 밤은 남편과 불금을 즐기겠다며 모스크바에서 가장 좋은 시설이라는 클래식 콘서트홀 '자라지에 '에서 첼로 4중주 연주회도 보고 펍에도 갔다.


** 자라지에 홀(Concert hall Zaryad'ye) = 크렘린과 성 바실리 성당이 한눈에 보이는 자라지에 공원에 위치한 최신식 콘서트홀. 공연도 다양하고 비용도 저렴한 편이라 (3000 ~ 5000 루블 정도) 여행자든 거주자든 한 번쯤 가볼만한 곳이다.



설레발은 설레발대로 치면서 둔하기 짝이 없는 엄마 때문에 우리 아기는 고민과 인내 끝, 내 배속에서 '탈출 선언'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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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로 제왕절개 하시죠"


자궁이 규칙적으로 수축하고 있고, 양수마저 조금씩 세는 상황. 의사는 바로 수술을 하자고 했다.

집에 가서 필요한 짐들을  싸오면  되냐고 물었지만, 의사는 단호하게 '지금 당장 수술해야 한다'라고 했다.

그만큼 긴박한 상황이던 거다.  


"진료를 마치고 집에 가서 남편과 출산 가방을 싸려고 했는데. 언니들이 슬슬 가방 싸두라고 할 때 말 들을 걸... "


출산 가방은 고사하고, 핸드백에 지갑, 핸드폰, 립밤만 넣어 달랑달랑 흔들며 병원에 갔던 나는 나의 제왕절개 수술을 준비하는 의료진들 사이에서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나보다 더 준비가 안 돼있던 남편은 의사에게 '저희끼리 좀 의논을 해보면 안 될까요' 의사에게 물었다가

'아기를 낳을지 말지 의논하겠다는 거냐'며 의사한테 황당한 소리 하지 말라고 핀잔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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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절개 준비 과정은 블로그나 유튜브에서 봤던 우리나라의 수술 준비 과정과 동일했다.

혈액 검사, 소변 검사와 제모를 하고, 간단하게 샤워를 한 뒤, 수술 대기실로 향했다.


수축 검사기를 달고, 수축 주기가 5분 간격으로 더 가빠지면 수술을 시작하자고 했는데, 대기실에 간 지 채 10분도 안 돼서 수술실로 들어갔다.


둔한 엄마 대신 바지런을 떨어주고,

내가 엄마가  순간임을 자각하기까지, 본인이   있는 최선을 다해 불편함과 불안함을 견뎌준 나의 아기.

수술대에 오르기까지 두려움이나 긴장감 대신 나를 휘감은 감정은 아기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아주 간절했을 아기의 목소리에  기울이지 못한 나의 무심함에 대한 미안함말이다.


"아가야, 엄마가 미안해"

너무 늦어버린 사과를 하는 동안, 어느새 나는 낯선 러시아 모스크바의 산부인과 수술실에 들어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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