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미국은 기술의 발달로 자동차, 라디오, 가정용 전자제품에 대한 수요가 높았다. 건설은 호황이었고 영화관과 체육관에 사람들이 몰려 여가를 즐겼다. 그러나 20년대가 끝나갈 무렵 경고신호가 울렸다. 소비자의 소득이 더 이상 늘지 않으며 주택, 자동차, 소비재가 과잉 생산되었다. 신용거래로 주식을 매입하며 주가가 치솟았다가 주식시장이 무너졌다. 실업자가 늘고, 생산이 감소하고, 은행이 도산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위기에 대처하는 뉴딜정책을 내놓았다. 은행 신뢰회복을 위해 예치금을 보장하고, 긴급 구제금융을 통과시켰다. 공공사업국을 세워 실업청년을 조림사업, 산책로 유지보수사업, 공원관리 사업에 고용했다. 테네시 강 유역 개발공사를 설립해 댐과 수력발전소를 건설, 전기와 휴양시설을 제공하고 홍수와 침식을 조절했다. 농업 조정국을 만들어 농민에게 보조금을 주고 생산량을 줄여 농산물 가격을 조절했다. 전국 산업부흥국은 고용을 유지하고 가격과 임금을 내리지 않음으로 디플레이션을 방지했다. 기업과 부자가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했고, 신속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공공사업 진흥국을 만들고, 주식시장을 더 면밀히 규제할 수 있도록 증권거래위원회((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을 창설했다. 1935년 반노동조합 전략을 불법화하는 전국 노동관계법을 만들었고, 사회보장법(Social Security Act)을 만들어 노령연금, 실업수당, 부양아동 부조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한편 1922년 베니토 무솔리니의 국가 파시스트당이 이탈리아를 장악했다. 군국주의 노선을 택한 일본은 1937년 난징학살을 자행했다. 독일에서는 아돌프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당(나치)이 1933년 권력을 장악했다. 히틀러와 나치는 유대인,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를 제거한다는 행동강령을 추진했다. 스페인에서는 1936년부터 3년간 공화주의자와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파시스트 군대가 충돌하는 내전이 발발했다. 히틀러는 프랑코를, 소련은 공화주의 정부의 공산주의자를 지원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의 3만여 자원병은 공화주의 편에서 싸웠다. 1939년 히틀러와 이오시프 스탈린은 독일과 소련이 폴란드를 분할 점령하고 서로 간의 불가침을 약속하는 조약을 체결했다.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을 선포했다. 1940년 독일은 노르웨이, 덴마크, 네덜란드, 벨기에를 점령하고 프랑스를 침략했다. 프랑스가 항복하고 독일 전투기가 영국 도시를 폭격하자 윈스턴 처칠은 미국의 지원을 요청했다.
미국 의회는 1940년 군비증강과 징병을 허가했고, 1941년 연합국에 식량, 장비, 군수물자를 제공하는 무기대여 법을 승인했다. 1941년 독일은 불가침 조약을 깨고 소련을 침공했다. 1941년 12월 일본 전투기가 하와이 진주만의 미 함대를 공격했다. 19척의 군함과 150대의 항공기가 파괴되고 2천3백여 명의 미군이 죽었다. 다음날 의회는 주축국 일본, 독일, 이탈리아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
연합군은 1943년 시칠리아와 이탈리아를 수복했다. 7월 이탈리아는 전쟁을 그만두었다. 1944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지휘로 16만 명의 연합국 군대가 프랑스 노르망디에 상륙했다. 독일군이 저항했지만 연합군은 파리를 해방하고, 1945년에는 독일로 진격했다. 미국과 영국의 전투기가 베를린, 함부르크, 드레스덴에 폭격을 퍼부었다. 동부전선에서는 소련이 스탈린그라드와 레닌그라드를 포위한 독일군을 격퇴했다. 소련군도 1945년 독일로 진군했다. 1945년 5월 7일 독일이 항복했다. 미국은 태평양 전선에서 1942년 일본이 점령한 필리핀을 1945년 탈환했다. 솔로몬제도, 길버트 제도, 마셜제도, 마리아나 제도의 일본 요새도 점령했다. 1945년 B-29 폭격기가 도쿄를 공습, 민간인 10만 명이 죽었다. 미국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와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5일 후 일본이 항복했다. 소련은 8월 8일 일본에 전쟁을 선포했다.
2차 세계대전으로 미군 40만 명이 죽고 67만 명이 다쳤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1,700만 명의 군인과 2천만 명의 민간인이 사망한 것에 비하면 미국의 희생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전쟁으로 독일과 일본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유럽은 쇠약해졌고, 소련은 큰 피해를 보았다. 본토를 공격당하지 않은 미국은 세계 초강대국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소련이 국제적 영향력을 키워가며 냉전을 예고하고 있었다. 전시 독일이 발전시킨 로켓 공학은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의 기반을 제공했고, 미국이 사용한 원자폭탄은 지금도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전시 컴퓨터 연구는 전후 컴퓨터 기술발전의 토대를 만들었다.
미국의 도시
미국 최대의 도시는 단연 뉴욕이다. 2020년 기준 뉴욕은 880만 명으로 집계됐다.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는 로스앤젤레스로 380만 명이다. 이어 시카고 (270만), 휴스턴(230만), 피닉스(160만), 필라델피아(160만) 순서다. 그밖에 인구 백만 명이 넘은 도시로는 샌안토니오, 샌디에이고, 달라스, 샌호세가 있다. 이 가운데 휴스턴, 샌안토니오, 달라스는 텍사스주에 속하고, 로스앤젤레스, 샌디에이고, 샌호세는 캘리포니아주에 속하므로 땅덩이가 큰 텍사스와 캘리포니아는 각각 3개 도시를 10대 도시에 올린 것이다.
2020년 기준 주별 인구는 캘리포니아가 3,900만 명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2위는 텍사스로 2,900만 명이다. 그러나 2010-2020 기간 인구 증가율은 텍사스가 15.9%로 캘리포니아 6.1%의 두 배가 넘는다. 3위부터 10위까지는 플로리다(2,100만), 뉴욕(2,000만), 펜실베이니아(1,300만), 일리노이(1,200만), 오하이오(1,100만), 조지아(1,000만), 노스캐롤라이나(1,000만), 미시간(1,000만) 순이다. 인구증가율은 뉴욕, 캘리포니아, 펜실베이니아 등은 낮고, 텍사스, 플로리다, 조지아는 10% 이상이다. 변화의 양상은 춥고 세금이 높은 지역의 증가세가 낮고, 집값이 비교적 낮고 따뜻한 지역의 증가율이 높다.
인구 최대의 미국 도시 뉴욕은 다민족 도시이며 인구의 37% 이상이 외국 태생이다. 인구수에서 뚜렷하게 많은 인종은 없지만, 푸에르토리코, 이탈리아, 카리브해, 도미니카, 중국계 사람들이 가장 많다. 유대계도 전체의 12%로 최대의 유대인 커뮤니티로 손꼽힌다. 아시아계는 전체의 10% 를 상회하는데, 중국계가 가장 많고 필리핀, 인도, 한국, 일본, 베트남계가 많다. 중국계의 40%는 퀸스에 집중해 거주하고 있으며, 한국계의 60% 이상도 퀸스에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