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생존기
어제 회사에서 연락을 받았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하라는 연락이다. 2년 6개월 만이다. 코로나 때문이었다. 아직 코로나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일상의 많은 부분이 코로나 이전 상황으로 회복되고 있다. 일부 직원들은 아직도 놀고 있지만 그들도 곧 출근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장기간 놀게 될 줄은 몰랐다. 처음엔 길어야 한 두 달이면 다시 출근하게 될 줄 알았다. 그 한 두 달이 일 년이 지나고, 순식간에 2년이 지났다. 처음엔 그 노는 생활이 아주 좋았다. 실업수당도 받았기 때문에 소득은 좀 줄었지만 생활에 큰 불편은 없었다. 단지 매일 저녁 산책하던 알라모아나 공원까지 폐쇄해놓아 그걸 못하는 게 제일 힘들었다. 수영장도 사용할 수 없어서 1주일에 한 번씩 하던 수영을 못하는 것도 불편했다. 코로나 걸릴까 봐 음식점 가는 것도 꺼려져 외식도 거의 끊었고, 즐겨가던 마노아 카페도 의자를 모두 치워놓아 갈 곳이 없었다. 코스코나 한국 슈퍼마켓에 장 보러 가는 게 외출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마스크를 써야만 들어갈 수가 있었다. 다행히 등산로는 폐쇄하지 않아 주말에는 마키키 산에 갔다. 밤에 와이키키에 나가보니 사람이 없었다. 불 꺼진 놀이공원 같았다. 사람들에 밀려다닐 정도로 복잡했던 칼라카우아 거리도 그렇고, 바다에도 사람이 없었다. 홈리스 몇 명이 있을 뿐이었다. 와이키키 호텔 건물들은 불 꺼진 건물이 을씨년스러워서인지 전등으로 하트를 그려놓았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세상을 이토록 철저히 바꿔놓을 수 있다는 사실이 무서울 정도였다. 2020년 9월, 보스턴에서 이직을 준비하던 세라가 하와이로 왔다. 하던 일은 코로나로 인해 하와이에서 인터넷으로 할 수 있다고 했다. 다 큰 딸하고 한집에서 생활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게다가 세라도 집에서 일하고 나는 일을 못하는 상태여서 아빠와 딸이 거의 매일 집에 함께 있어야 했다. 마땅히 나갈 만한 곳도 없었다.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책과 넷플릭스뿐이었다. 책은 처음엔 책꽂이에 있던 안 읽은 책을 먼지를 털어내고 읽었다. 더 이상 읽을 게 없어 2020년 6월에 킨들을 샀다. 놀기 시작한 지 3개월 만이다. 아마존에서 영어 소설을 사거나 도서관에서 E북을 빌려 킨들로 읽었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2년 반 기간 동안 대략 50권 정도는 읽지 않았을까. 문학작품, 심리학, 추리소설, 여행기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읽었다. 오래전 한국에서 한글로 읽었던 책을 영어로 다시 읽기도 했다. 어떤 작가의 책이 흥미로우면 그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었다. Edx라는 웹사이트를 알게 돼 무료 강좌를 듣기도 했다. 스페인어와 영문학 관련 강좌를 몇 개 들었다. 넷플릭스로 한국 드라마와 영국 드라마, 미국 영화, 다큐멘터리 등을 봤다. 유튜브를 클릭하는 횟수도 늘어갔다.
2020년 12월 미국에서 코로나 백신이 처음으로 나왔다. 처음에는 의료계 종사자와 65세 이상이 돼야 백신을 맞을 수 있었다. 백신 개발 소식에 반가웠고 이제 머지않아 코로나가 사라질 것이 기대됐다. 주사 맞는 걸 싫어하는 나는 우선 접종 가능한 기간이 되었지만 접종을 미루었다. 백신을 맞은 사람들이 늘면서 공원과 음식점 수영장이 다시 열렸다. 그런데 음식점에 들어가려면 코로나 접종 증서를 보여줘야만 했다. 여기저기 출입하려면 접종증명서를 요구해 아무래도 접종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우리 집에서는 그래도 내가 제일 먼저 맞았다. 2021년 4월이었다. 아플 줄 알았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다. 며칠 후 소피도 백신을 맞았다. 세라도 맞았다. 2차 백신은 5월에 맞았는데 맞은 다음날 하루정도 아팠다. 심하진 않았고 감기몸살 정도였다.
백신 접종이 늘면서 음식점에도 와이키키에도 사람이 좀 늘었다. 우리는 가능하면 실내를 피했다. 실내 식당보다는 야외 테이블이 있는 맥주집에 갔다. 할레코아에서 맥주 마시고, 다이아몬드 헤드에 올랐다. 코코 마리나에서 맥주 마시고, 탄탈루스를 걸었다. 마카푸우에 갔고, 마키키산에는 매주 일요일 아침에 갔다. 그러는 사이 1인용 리클라이너를 들여오고, 배터리 수명이 다한 청소기를 새로 사고, 자꾸만 꺼지는 압력 밥통을 새로 샀다. 붙박이 마이크로웨이브도 바꿨다. 일은 안 하고 놀지만 집안의 전자기기는 계속 돌아가야만 했다. 정기적인 피검사와 안과 검사, 치과 클리닝도 예약대로 다녀왔다. 회사에서 의료보험 혜택을 계속 주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2021년 9월, 연장시켜주던 실업수당이 9월에 끝났다. 이제 내 수입은 제로다. 소피의 수입으로만 살아야 했다. 수입이 모자라면 저축을 까먹기 시작해야 했다.
그래도 여행은 떠나고 싶었다. 집에만 있으니 생활이 단조롭고 답답했다. 일 할 때는 일을 쉬려고 여행을 갔지만, 쉬다 보니 답답해서 여행을 가고 싶어 졌다. 그래서 가기로 했다. 2021년 10월 말에 떠난 여행, 코로나 이후 처음이고, 2년 전 유럽여행 이후 처음이다. 회사에서 곧 출근하라는 연락이 올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출근 전에 다녀오고 싶었다. 외국여행은 쉽지 않고 돈도 많이 드니 미국 내 여행으로 정했다. 캘리포니아 해안과 콜로라도 로키를 저울질하다 콜로라도로 정했다. 덴버 시내 노란 단풍을 구경하고, 4륜 구동 렌터카로 영상과 영하를 오르내리는 로키에 오르고, 콜로라도 스프링스 신의 정원에도 갔다. 9일간의 여행이 짧게 느껴졌다. 여행을 다녀왔는데도 회사에서는 아직도 연락이 없었다. 12월에는 가족 모두 코로나에 걸렸다. 세라가 본토에서 온 친구에게서 옮겨온 것 같았다. 몸이 안 좋아 집에서 하는 자가검사를 해보니 양성이 나왔다. 별로 아프진 않았다. 며칠간 독감약을 먹었다. 며칠 후 다시 해보니 음성이 나왔다. 2022년 2월에는 대장내시경 검사를 할 때가 됐다는 통지가 와 예정대로 했다.
장모님이 쓰러지셔서 입원하셨다는 연락이 왔다. 소피가 2022년 4월 말부터 3주간 한국에 다녀왔다. 한국에 가려면 3차 백신 접종을 맞아야 한다고 해서 가기 전에 3차 접종을 했다. 나도 혹시 가게 될지 몰라 일단 소피와 함께 3차 접종을 했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 가지 않기로 했다. 가서 할 일도 별로 없었고 한국은 아직 코로나로 다니기가 불편해 보였다. 회사에서 갑자기 출근하라는 연락이 올지도 몰랐다. 2022년 2월부터 뉴욕에 살고 있는 세라는 이번이 한국 여행의 기회라 생각했는지 뉴욕에서 바로 한국으로 가겠다고 했다. 세라는 하와이로 돌아온 지 4개월 만인 2021년 1월, 원하던 분야로 이직에 성공했다. 인터넷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코로나 시기에 하와이를 떠나지 않고 있다가 3차 백신을 맞고 5월부터 5개월간 미서부, 동부, 중서부의 친구들을 만나는 여행을 하며 일했다. 11월에 하와이로 잠시 돌아왔다가 2022년 2월부터 뉴욕에 집을 구해 살고 있던 것이었다. 소피는 한국에 간 후 일주일 정도 병원 출입을 못하다가 간병인을 자처해 2주간 병원에서 먹고자며 어머니 병간호를 했다. 세라는 친척집에 머물며 구경 다니다가 할머니는 오기 며칠 전 딱 한 번 봤다. 소피와 세라는 5월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다. 세라는 샌프란시스코에 들러 친구들을 만난 후 뉴욕 집으로 돌아갔다.
2022년 9월, 마침내 회사에서 출근하라는 연락이 왔다. 집에서 놀기 시작한 지 2년 반이 지났다. 다시 출근하려니 다 잊어먹은 일도 그렇지만 2년 넘게 노는데 익숙해진 몸이 빨리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 처음에 놀기 시작할 때는 9시에 일어났지만 점점 게을러졌다. 늦게 잠자리에 들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최근 들어 10시쯤에 일어났다. 잠은 7시쯤 깨지만 그때부터 9시까지는 잤다 깼다를 반복했다. 10시쯤엔 "그래도 이제는 일어나야겠지" 하는 생각에 일어났다. 침대 정리 후, 아침 먹을게 뭐가 있나 한 번 살펴보고 밥이 없으면 밥을 안쳐놓는다. 30분 정도 요가 스트레칭을 한 후 샤워를 한다. 금요일엔 수영을 하고, 월요일엔 청소기를 돌린다. 샤워 후엔 아침을 차려먹고 녹차 한잔을 들고 소파에 앉는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듣거나 유튜브로 뉴스클립을 몇 개 본다. 음악은 클래식이나 이탈리안 연주곡을 주로 듣는다. 비발디는 오스트리아의 잘즈부르그를, 이탈리안 연주곡은 로마의 나보나 플라자를 떠올리게 한다. 차를 다 마시면 킨들로 책을 읽는다. 3시쯤 배가 고파지면 우유와 넛, 빵 같은 것을 조금 먹고 컴퓨터를 켠다. 글을 쓰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궁금했던 것을 구글로 찾아본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저녁 5시 반 소피가 퇴근해 올 시간이다. 함께 저녁을 먹고 7시쯤 혼자 공원 산책을 나간다. 소피는 가뭄에 콩 나듯 함께 나간다. 두 시간 정도 걷다가 들어와 샤워하고 소파에 앉으면 9시다. TV를 켜 잠시 BBC 뉴스를 보다가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켠다. 2~3시간 정도 보다 보면 12시, 잠자리에 든다. 소파에서 졸던 소피는 그제야 깨서 방에서 다시 잔다.
다음 주부터 회사에 출근하면 이런 스케줄은 이제 끝날 것이다. 일찍 일어나야 하고, 일로 스트레스도 조금 받고, 안 가본 곳으로의 여행을 계획하고, 언제 어디로 은퇴를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아마도 그렇게 살 것 같다.
09.20.2022.
출근 후 일주일이 지났다. 정상적인 업무는 일주일 더 지난 후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6시 반에 일어나 요가 스트레칭 30분 후, 간단히 아침을 먹고 회사로 향한다. 10시에 일어나다 6시 반에 일어나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일찍 자니 금세 적응이 된다. 오랫동안 못 본 회사 사람들을 여기저기서 마주친다. 코로나로 모두 쉬긴 했지만 쉰 기간은 저마다 달라 서로의 안부를 묻고 동료들의 소식을 교환한다. 3시쯤 퇴근해 집에 오면 고된 일을 한 것도 없는데 피곤하다. 새로운 정보들이 머릿속에서 빙빙 돌아 종종 잠을 설친다. 새벽 2시에도 깨고, 3시에도 깬다. 몸보다 뇌가 적응력이 느린듯하다. 출근 후 첫 쉬는 날인 토요일 아침, 알람을 맞추어 놓지 않았는데도 6시에 눈이 떠진다.
10.01.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