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이다. 오늘은 어딘가 조금 멀리 갔다 오고 싶다. 어제저녁 소피에게 내일은 아침부터 바람 쐬고 오자고 말해두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6시 30분. 침대에 누워 어디 갔다 올까 생각해봤다. 산에 가고 싶지만 하이킹을 싫어하는 소피가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럼 바다? 오랜만에 하나우마베이에 가서 물고기들을 보고 올까? 몸을 다 적셔야 하니 그것도 별로 내키지 않는다. 서쪽 끝 카에나 포인트 도로 끝까지 가서 주차하고 바다를 따라 하이킹을 할까? 너무 멀고 더울 것 같다. 쇼핑센터 구경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 어디 갈까? 보타니컬 가든 (야외 식물원) 은 어떨까? 오아후에서 보타니컬 가든은 카네오헤 쪽에 있는 Hoomaluhia Botanical Garden 이 좋긴 한데 이미 여러 번 가봤다. 다운타운에 있는 건 좀 작고 집에서 너무 가깝다. 그렇게 구글 지도에서 찾다가 오아후 중심부에 있는 와히아와 보타니컬 가든 (Wahiawa Botanical Garden)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여기는 한 번도 안 가본 곳이다. 늘 한 번도 안 가본 곳을 가고 싶은데 이제 하와이에서는 그런 곳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 7시 20분쯤 일어나 소피를 깨우고 샤워했다. 아침은 팔라마에서 김밥 한 줄씩 사 가지고 가자고 했다. 집에서 아침밥을 먹고 나가면 시간이 너무 늦어진다. 얼음물 한 병씩 챙겨서 나왔다.
팔라마 슈퍼는 아침 8시에 문을 연다. 8시 10분쯤 갔더니 벌써부터 장 보러 온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김밥이 아직 없다. 김밥을 다른 곳에서 만들어서 오는데 이미 도착했지만 아직 진열을 안 했다고 한다. 소피가 조금 기다렸다가 김밥과 빵을 사 가지고 나왔다. H-1 하이웨이 펄시티 쪽으로 한참 달리다 북쪽으로 올라가는 H-2로 바꿔 탔다. 밀릴라니를 지나 돌 플랜테이션 (Dole Plantation) 가기 전에 와히아와로 빠지는 길이 있다. 8번 출구로 나가면 된다. 여느 때처럼 하와이 날씨는 쨍하다. 와히아와는 옛날 사탕수수 농장이 있던 곳으로 농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다. 도로를 지나다 보니 구 시가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보타니컬 가든에 도착하기 전 맥도널드에서 커피 두 잔을 픽업했다. 레귤러 커피 큰 것 하나와 라테 큰 것 하나. 맥도널드에는 라테가 없는 줄 알았는데 물어보니 있단다. 맥도널드에서 라테를 사는 건 처음이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냥 커피에 우유를 조금 얹은 것 같다.
보타니컬 가든에 도착하니 스무 대 정도 주차공간이 있는 조그만 주차장이 있다. 주차된 차는 서너 대가 있다. 차를 세우고 차 안에서 김밥과 커피를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차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따스하다. 김밥을 먹는 동안 서너 대의 차가 더 와서 주차를 했다. 그렇게 아침을 때운 후 가든 입구로 들어섰다. 입장료는 없다. 가든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지만 앞쪽이 잘 관리되어 있다. 반면 계단을 통해서 내려간 쪽은 야생 그대로이고 별로 관리를 안한 느낌이다. 베고니아, 하이비스커스, 여러 종류의 야자수, 대나무, 타로, 그리고 이름을 알지 못하는 온갖 나무와 꽃이 있었다. 오전이라 아직 뜨겁지 않아 나무와 꽃 사이를 천천히 걷기 좋았다. 잔디밭에 몇몇 사람들이 두세명 앉아 일요일 아침의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다. 한 시간 정도 그렇게 시간을 보낸 후 나왔다. 차로 마을을 좀 더 돌아본 후 노스쇼어 쪽으로 향했다.
카메하메하 하이웨이를 타고 북쪽으로 달렸다. 돌 플랜테이션을 지나 할레이바 쪽으로 향하니 언덕 아래로 멀리 바다가 멋진 모습을 드러냈다. 할레이바 쇼핑센터에 차를 세웠다. 커피는 아침에 마셨기에 전에 가던 커피 갤러리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멕시칸 식당 촐로스도 그대로 있다. 이곳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쇼핑센터 밖으로 나와 타운센터 쪽으로 걸었다. 길 양편으로 갤러리와 선물가게, 음식점들이 아주 많아졌다. 훌리훌리 치킨 파는 곳은 그대로다. 이제는 너무 유명해져 버린 마쓰모토에서 쉐이브 아이스 큰 것을 하나 샀다. 벤치에 앉아 다 먹으니 배가 조금 고파졌다. 점심을 엉클 보에서 먹을려고 보니 별로 먹을만한 게 없다. 쇼핑센터 쪽으로 거의 다 가니 푸드트럭이 몇 대 있다. 태국 음식이 끌려 드렁큰 누들과 레드 카레를 시켰다. 맛이 괜찮았다. 갤러리와 선물가게는 밖에서 지나가면서만 볼뿐 들어가지는 않았다. 딱히 뭔가를 살 생각이 없으니 별로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다. 차를 가지고 바다가 보이는 비치 팍으로 갔다. 여기서 비치 체어에 앉아 좀 쉬다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보니 마쓰모토에 긴 줄이 늘어서 있다. 별것 아닌 쉐이브 아이스인데 유명세를 타니 항상 사람이 많다. 어디가면 꼭 무엇을 해야 한다. 무엇을 꼭 먹어봐야 한다는 곳들이 있게 마련이다. 노스쇼어의 마쓰모토 쉐이브 아이스도 그중 하나다. 별것도 아닌데 입소문을 타고 아주 평범한 음식점도 유명세를 누린다.
비치 팍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비치 체어에 앉았다. 소피는 바닷물 쪽으로 가더니 거북이가 5마리나 있다고 했다. 그쪽을 보니 거북이가 바닷물에서 올라왔다 내려갔다 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사이 몇몇 차들이 왔다가 가고, 몇몇 사람들은 거북이를 구경한다. 소피는 오랫동안 거북이 구경을 하고 돌아왔다. 옆쪽으로 가보니 또 다른 거북이 3마리가 더 있다고 했다. 그렇게 30분 정도 노스쇼어 비치 팍에서 쉬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바다 풍경이 눈부시다. 오후 2시 30분이다. 이제 집으로 출발하면 4시쯤이면 도착한다. 온 길을 되짚어 돌 플랜테이션 쪽으로 간 후 카메하메하 하이웨이를 탔다. 신도시 밀리라니와 와이켈레를 지나 펄시티 근방에서 H-1 하이웨이로 들어섰다. 일요일 오후, 차들은 많지 않았고 도시는 조용했다. 와히아와도, 밀릴라니도, 와이켈레도, 심지어 호놀룰루까지 고요했다. 주차장에서 오랜만에 세차를 한 후 집에 들어갔다. 2022년 2월 어느 평범한 일요일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