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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Bird Feb 13. 2022

대장내시경

하와이 사는 이야기

병원 대기실


한국에서는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미국에서는 그렇게 하는 사람이 드물다. 내가 건강검진을 하는 것은 일 년에 한 번씩 하는 피검사이다. 눈이 건강한 편이 아니라 안과는 의사의 처방대로 6개월에 한 번씩 받는 정밀검사 이외에는 건강검진을 거의 받지 않는다. 피검사는 주치의를 통해서 하게 되며 만약 피검사에서 뭔가 비정상 수치가 나타나면 주치의는 추가적인 검사를 의뢰하거나 약을 처방해준다. 그밖에 내가 하는 유일한 검사는 대장내시경 검사다. 지난 주에 대장내시경을 했다. 대장내시경은 45세 이상부터는 보험에서 커버해준다. 나는 이번이 5년 전에 이어 두 번째 검사다. 폴립이 발견되지 않으면 10년 후에 하면 되는데, 5년 전 검사에서 2개의 작은 폴립이 발견되어 5년 만에 하게 됐다. 대장내시경은 검사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준비하는 과정이 괴롭다.   


지난번 했던 병원에서 편지가 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검사한 지 5년이 경과됐으므로 이제 다시 검사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편지를 받고 병원에 전화해서 예약을 해야 한다. 대부분 오전을 선호해서 그런지 오전에 하려니 3주 후로 예약이 잡혔다. 예약 시 병원에서는 먼저 전화로 건강상태와 복용약 상황, 의료보험을 확인한다. 검사 준비 안내 편지를 집으로 보내고, 검사 하루 전부터 마셔야 할 약을 환자가 지정한 약국에서 픽업할 수 있도록 해준다. 검사 준비 안내는 매우 자세하고 까다롭다. 3일 전부터 무엇을 먹어서는 안 되고 무엇을 먹으면 된다는 식으로 자세하게 쓰여있다. 나는 검사 3일 전 아침에 밥을 먹은 후 "자 이제부터 준비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편지를 봤더니 내가 아침에 먹은 현미밥도 미역국도 먹지 말라고 되어있다. 일단 먹었으니 얼른 소화되기를 바랄 뿐이다. 늦은 아침을 먹었기에 점심은 건너뛰고 저녁부터는 흰쌀밥에 북엇국을 먹었다. 먹지 말라는 것은 대체로 씨앗이 들어있는 음식 종류와 섬유질이 많은 음식, 생야채 등이다. 먹어도 되는 음식은 두부와 계란, 생선 등이다. 검사 하루 전에는 오후 1시부터는 모든 고형의 음식을 먹으면 안 되고 물이나 맑은 음료는 마실 수 있다. 나는 정오쯤 흰쌀밥에 북엇국, 계란찜, 씻은 김치, 오이지로 검사 전 마지막 식사를 했다. 장을 비우기 위해 마셔야 하는 약은 아침부터 만들어 냉장고에 보관해 놓았다. 오후 5시부터 15분마다 한 컵 (8 온즈) 씩 네 번이나 마셔야 한다. 혹시 배가 고플까 봐 맑은 탄산수를 몇 개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배는 전혀 고프지 않았다. 약을 계속 마셔서 그런 것 같다. 저녁을 건너뛰자니 마음이 상당히 섭섭했다. 먹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보니 음식을 먹는 행위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을 먹지 않게 되니 저녁 시간도 많이 남았다. 게다가 약을 많이 마셔서 언제 화장실에 갈지 모르니 산책하러 밖에 나갈 수도 없었다. 약을 마신 후 1~2 시간 이내에 설사가 나온다고 했는데 내 배는 꾸르룩 거리기만 할 뿐 소식이 없었다. 넷플릭스로 한국 좀비 시리즈물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11시 30분 잠자리에 들기 바로 전에 드디어 소식이 와서 화장실에 한 번 갔다가 잠들었다. 얼마후 또 한 번 깨 화장실에 다녀왔다. 새벽 2시에도 한 번 깨고, 새벽 3시부터 4시까지는 또 한 통의 약을 마셔야 했다. 먼저와 마찬가지로 15분마다 8온즈씩 약을 마시고 또 물을 16온즈 더 마셨다. 그 이후로도 두세 번 화장실에 가느라 거의 잠을 못 자다시피 했다. 


비몽사몽중인 가운데 6시 50분에 맞춰놓은 알람은 인정사정도 없이 울어댔다. 병원 체크인 시간은 아침 8시다. 집에서 가까우니 15분 전에 출발하면 되는데 막상 출발하려니 또 화장실이 부른다. 아직도 배가 꾸르륵 거린다. 가는 도중에 또 화장실에 가야 하는 일이 발생할까 봐 조마조마했다. 무사히 병원에 도착해 체크인했다. 접수하면서 건강상태와 복용약, 검사 후 픽업할 사람 전화번호 등을 확인했다. 검사 대기실에 안내되어 모든 옷을 벗고 검사용 가운만 하나 걸친 후 이동침대에 누웠다. 잠시 후 간호사는 마취제 들어갈 자리에 바늘을 오른 팔에 꽂고, 몸에도 세 개의 센서를 부착했다. 그 상태에서 침대를 밀어 검사실로 이동했다. 몸에 복잡한 호스를 부착하고 이동침대에 누워 밀려가다 보니 마치 어디가 많이 아픈 환자가 된 듯했다. 건강이 제일 소중하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의사가 검사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고, 마취 간호사가 이제부터 약을 넣겠다고 하면서 한두 마디 시켜서 대답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정신을 잃었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정신이 서서히 들었다. 누운 채 여기가 어디지 하고 둘러보니 아까 검사하러 들어간 곳이 아닌 것 같았다. 간호사가 커튼을 열고 들어왔다. "내가 아직 검사를 기다리고 있는 건가요, 아니면 이미 검사가 끝난 건가요?" 물어보니 간호사는 "검사는 이미 끝났고 40분 정도 걸렸다" 고 말했다. 지금 몇시인지 물어봤다. 9시쯤에 검사가 시작됐고 지금이 9시 45분이라고 한다. 간호사는 검사 결과 용지를 주며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줬다. 이번에도 조그만 폴립을 하나 잘라냈다. 식사는 평상시대로 해도 좋고, 술은 12시간 이내에 마시면 안 된다고 했다. 입고 있던 일회용 가운을 벗어서 버리고 입고 왔던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대기실로 갔다. 픽업할 소피에게는 이미 병원 측이 전화를 해둔 것 같다. 마취 후 깨어난 환자는 절대 혼자 보내지 않는 것 같다. 소피는 회사에서 오느라 1시간 정도 후에 도착했다. 간호사는 아랫층 픽업장소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소피에게 나를 인계했다. 


오전 11시 조금 넘어 집에 도착했다. 장에 부담을 적게 주기 위해 흰쌀밥에 북엇국, 고춧가루 씻어낸 김치만 먹었다. 검사를 위해 장속에 넣은 가스 때문에 뱃속이 불편했다. 한 시간 정도 후에 몇 차례 방귀가 나오면서 배가 편안해졌다. 기분 같아서는 맛있는 것을 많이 먹고 맥주도 한잔 하고 싶은데 아직은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도 뱃속이 깔끔하게 비어있는 느낌은 뱃속이 음식물로 가득 찬 느낌보다 훨씬 좋았다. 거실 리클라이너에 누워 따스한 햇살을 즐기며 이태리 음악을 들었다. 저녁을 간단히 먹고 와이키키 쪽으로 걸어서 산책을 나갔다. 약 두 통을 마시고 화장실 옆에 꼭 붙어있어야 했던 어제를 생각하니 끔찍했다. 이렇게 시원한 저녁에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02.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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