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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Bird Feb 06. 2022

이민 가정의 자녀

하와이 사는 이야기


세라가 쓰다가 두고 간 수비드 기계


1월 마지막 날 세라가 뉴욕으로 떠났다. 여행으로 간 것이 아니라 부모의 품을 떠나 홀로서기를 시작한 것이다. 만 26살이고, 이제 독립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세라는 지난해 5개월간 혼자서 미국 여러 곳을 여행하며 각 지역의 친구들을 만났다. 그러면서 어느 곳에서 정착할지를 찾았던 것 같다. 세라의 회사는 보스턴에 있지만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이라 거주지역에 제한이 없다. 지금까지는 부모가 살고 있는 하와이에서 거주하며 일했다. 하와이의 날씨와 바다를 좋아하긴 했지만, 본토 시간에 맞춰서 일해야 하므로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하는 것과 갈 곳이 많지 않아 답답해했다. 여러 곳을 다녀본 결과 일단 뉴욕으로의 정착을 결정한 것이다. 뉴욕에 얼마나 살지는 모른다. 가능하면 유럽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늘 말했기 때문이다. 리모트로 일하기 때문에 미국 내에서는 동부나 서부, 하와이 어느 곳이나 가능하지만 유럽에서 일하는 것은 회사와 협상이 필요한 듯하다. 


이번에 완전히 홀로서기에 성공할지는 아직은 모른다. 보스턴에서 대학을 졸업한 이후 동부에서 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방학기간 학교에서 3달간 임시로 일하면서 잡서치를 했었다. 일단 보스턴을 떠나면 잡서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것이 여의치 않자 9월에 하와이로 왔다. 하와이에 온 지 3개월 만에 보스턴의 원하던 회사에 취업이 되어 다음 해 1월에 떠났다. 하지만 그 회사에서 1년 7개월을 다니고 그만두었다. 생각과는 달리 막상 들어가서 일해보니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이후 세라는 커리어를 UX research 쪽으로 바꾸었다. 관련 업무 경력을 쌓기 위해 하바드대학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다시 잡서치를 시작했다. 생활비는 벌어서 할 수 있었으나 렌트비까지 내기는 어려워해 월 800~1000불 정도씩 보내줘야 했다. 그렇게 거의 1년간 보스턴에서 파트타임과 잡서치를 했으나 커리어를 바꿔 원하는 잡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다 코비드가 시작됐고 내가 일을 못하는 상황이 닥쳤다. 기간이 정해진 것도 아니니 끝없이 렌트비를 보내줄 수는 없었다. 세라는 거의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크게 낙심한 상태로 하와이로 돌아왔다. 2020년 9월이었다. 하와이에 돌아온 지 3개월 만에 원하던 UX Researcher 로서 다시 취업에 성공했다. 세라의 보스는 보스턴에 있지만 본사는 텍사스에 있고 미 전역과 일부 외국에도 있는 회사다. 세라는 프로그래머, UX 디자이너 등 IT 부서와 일하므로 거주지에 제한을 받지 않는 잡이라며 더욱 만족해했다. 


우리 가족이 하와이로 올 때 세라는 만 1살이었다. 하와이에서 프리스쿨,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보스턴으로 가기 전까지 계속 하와이에서 함께 살았다. 대학 때부터 기숙사에서 살면서 부모로부터 떨어져 살긴 했지만, 졸업 후 취업하고 나서는 빨리 성인으로써 홀로서기에 성공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두 차례 홀로 서지를 못하고 돌아오는 통에 언제쯤 독립할 수 있을 것인지 부모로서 내심 우려했었다. 한국에서는 대학을 졸업한 자녀가 결혼해서 독립할 때까지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이 흔한 일인 듯 하지만, 미국에서는 오히려 그러기가 쉽지 않다. 나와 소피는 미국에 살고 있어도 (25년간 우리도 많이 변하긴 했지만) 사고방식과 문화, 먹는 음식이 여전히 한국으로 기울어져 있다. 반면 세라는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긴 했지만) 아무래도 미국으로 기울어져 있는 듯하다. 한국과 미국을 양 끝 점으로 놓고 중간에 열개의 눈금이 있다면 나와 소피는 한국 쪽에 가까운 3 정도의 눈금에 있을 것 같고, 세라는 미국 쪽에 가까운 8 정도의 눈금에 있을 듯하다. 그 사이의 간격은 메우기 어려운 것이다. 이처럼 이민가정의 부모-자녀 관계의 어려움은 한국에서 살고 있는 일반적인 부모-자녀가 겪고 있는 세대차이를 넘어서는 것이다. 물론 모두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부모와 아이들의 성향에 따라 이 간극은 더 벌어지기도 하고 좁혀지기도 한다. 부모가 미국식으로 사고하고, 영어를 사용하며, 주로 미국 음식을 먹는 정도로 미국화되어있다면 자녀들과의 간격이 좁혀질 것이다. 아이를 철저히 한국식으로 키웠다면 역시 간격을 어느 정도 좁힐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간격을 최대한 좁히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이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미국에서 살아야 하는 아이가 너무 한국화 되어 있다면 미국 사회에 대한 적응력이 그만큼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 같은 이민 1세대 부모가 철저히 미국화되는 것도 좀 어색하다.      


뉴욕으로 떠난 세라의 방을 정리하는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옷장에 두고 간 여러 벌의 색색깔 수영복, 드레스, 반바지 등 옷가지와 책꽂이 여기저기에 어지럽게 놓여있던 책, 서류, 안 쓰는 화장품, 운동기구, 신발 등을 버릴 수도 없다. 헤드폰과 스피커만 해도 여러 개가 나온다. 스킨스쿠버 핀도 나오고, 오토바이를 배우려 했는지 한 번도 안 쓴 헬멧과 오토바이 운전 가이드북도 나온다. 불을 붙여 돌리는 훌라후프와 불 붙이는 파라핀 오일은 면적도 크게 차지하고 아무래도 위험한 듯해 내다 버렸다. 뉴욕에 도착한 지 5일째 되는 세라는 또 가구와 주방용품, 옷, 스피커, 기타 여러 가지 물건들을 마구 살 것이다. 자기가 하와이에 두고 간 에어프라이어, 수비드, 팬, 허브 키우는 기계 등을 그대로 두고서. 냉장고 안에는 세라가 애용해온 새콤 달콤 매콤한 이름 모를 온갖 소스가 여전히 남아 있는데.


02.0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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