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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Bird Feb 04. 2022

하와이 상륙일

하와이 사는 이야기

알라모아나 비치 팍,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모습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 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 같지만 조금만 길게 보면 아주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대부분은 아주 작은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머릿속을 얼핏 지나가던 생각 하나가 점차 발전해 아주 큰 변화를 가져온다. 때로는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바꿔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순간에는 별로 느끼지 못하다가 한참 지나고 나서야 스스로가 변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매년 1월이 되고 연말연시 분위기가 조금 지나가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날이 있다. 내가 하와이에 상륙한 날이다. 한국 김포공항에서 (그때는 인천공항이 아직 생기지도 않았다) 대한항공으로 1월 13일 저녁에 떠나 같은 날 하와이 호놀룰루에 아침에 도착한 날이다. 지구 동쪽으로 10시간 정도 날아오니 그만큼 하루가 긴 날이었다. 오늘이 2022년 2월 3일이니 어느새 25년 전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30대 초반 혈기왕성한 나이에 한국을 떠나 지상낙원 하와이에서 잠깐 살다 보니 50대 후반이 되었다. 


그전에도 하와이에 두 번 여행 온 적이 있으니 하와이 상륙 일이 내가 처음 하와이에 온 날은 아니다. 언제 왔는지 정확히 기억도 안 난다. 결혼하기 전 휴가 때 한 번 왔고 (94년 여름쯤인가?), 결혼한 후 어머니를 모시고 소피와 한 번 왔다. 결혼한 후에 온 것은 96년 여름쯤 되는 것 같다. 그렇게 두 번 하와이를 다녀간 후 아예 하와이에서 장기간 살아볼 수는 없을까 라는 상상을 했다. 답답한 서울에서 느낄 수 없는 매력을 하와이는 마구 발산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여유는 세상에 이런 곳이 또 있을까 싶었다.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찾은 방법은 하와이 대학원으로의 유학이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고 싶었기에 당장 갈 수 있는 어학연수로부터 시작했다. 96년 여름부터 수속해 채 6개월도 되기 전에 하와이에 도착했다.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결혼한 지 2년 만에 딸이 이제 막 돌이 지난 시점에서 하와이에서 몇 년 살아보겠다고 덜렁 유학을 온 것이다. 집안이 부자라서 일을 하지 않고도 여유롭게 유학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다. 회사를 관두면 당장 수입이 끊기는 데다가 와이프와 1살짜리 딸까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대책 없는 선택이었다. 차분히 전후 사정을 지금 생각해보면 현명한 선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그 선택이 잘됐든 잘못됐든, 지금 나는 여기 하와이에서 25년째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그때도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광고회사에서 7년 정도 일했으니 유학을 가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한국에 돌아가서 교수를 해야겠다고 내심 생각했었다. 그렇게 큰 그림만 그려놓고 구체적인 계획은 아무것도 세우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석사만 마치고, 취업을 하게 되면서 하와이에 살게 된 것이다. 하와이에서 몇 년간 살아보겠다고 25년 전 그날 유학을 떠나온 것이 잘한 것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그 당시 나는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한 것이고 그 결과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 것이다. 하와이 초창기 생활을 돌아보면 고생스럽게 살기도 했지만 그 고생이 그다지 힘들다고 느끼며 살지는 않은 것 같다. 가장이 학생이었으니 경제적으로 빠듯하게 생활했던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것 아닌가. 그래도 힘들지 않았던 것은 하와이의 자연과 자유를 마음껏 을 누리며 살았기 때문인 듯하다. 


매년 1월 13일이면 우리 기족은 하와이 상륙 기념일을 기념했다. 물론 특별한 기념식을 치르는 것은 아니고 그 핑계로 외식을 하는 것이다. 한식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든, 중국집에 가서 차오 펀을 먹든, 미국 식당에서 햄버거와 프랜치 프라이를 먹든 그랬다. 그것도 아니면 비치바에서 맥주나 칵테일을 한잔씩 마시기도 했다. 우리 집의 기념일은 매년 이렇게 상륙 기념일로부터 시작된다. 


02.0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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