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다녀온 지 5개월 만의 여행이다. 나에게 한국 다녀온 것은 여행이라고 할 수 없다. 한국여행은 가족, 친구, 지인들 만나서 지난 이야기하고, 맛있는 음식 먹는 것이 전부이다. 나에게 여행이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 가서 느껴보는 낯섦을 경험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캘리포니아 북부를 다녀오기로 했다. 레이크 타호와 요세미티가 목적지다. 휴가를 내고, 호텔을 잡고, 지도를 보면서 일정을 짰다. 비행기표는 8월 초에 예약했다. 출입 공항을 새크라멘토, 샌프란시스코, 라스베이거스 중에 어디로 할까 일정을 맞추면서 고려하다 샌프란시스코로 정했다. 그래서 일정이 샌프란시스코- 레이크 타호- 요세미티- 몬트레이- 빅 서- 산 라파엘- 소노마 - 샌프란시스코, 이렇게 짜였다. 지도로 보면 북캘리포니아를 한 바퀴 빙 도는 일정이다. 보통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갈려면 아무것도 안 하고 운전만 해서 가는 시간이 3~4시간씩 걸리니 이번에도 운전을 많이 하는 로드 트립이 될 듯하다. 스페인 발렌시아에 있던 세라도 이번 여행에 합류하기로 했다. 세라는 시카고에서 이주일 머물다 샌프란시스코 친구집으로 왔다. 우리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기 일주일 전이다.
샌프란시스코 공항 도착
여행을 앞두니 시간이 잘 안 간다.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10월 25일 정오 호놀룰루 공항을 출발했다. 샌프란시스코까지는 4시간 30분 거리다. 항공기가 조금 늦게 출발했지만 예정대로 8시 15분에 도착했다. 짐을 찾고 호텔 셔틀을 타고 도착한 곳은 공항에서 5분 거리의 힐튼 에어포트 베이프런트 호텔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레이크 타호로 떠날 것이라 일부러 공항 까까운 곳에 방을 잡았다. 세라는 호텔에서 합류했다. 세라가 공항 근처에서 친구와 저녁을 먹고 있다 길래 우리가 먹을 저녁거리를 식당에서 하나 픽업해 오라고 했다. 세라는 지난 5월 한국여행도 같이 갔으니 얼굴 본 지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다음날 아침 7시쯤 우버를 불러 공항 알라모 랜트카로 갔다. 12일간 우리와 함께 여행을 떠날 차는 토요다 RAV4 가 선택됐다. 카키색, 13,353 마일, 텍사스 번호판을 달고 있다. 예약할 때 중형 SUV를 선택했고 처음에 배정된 차는 현대 투싼이었는데, 트렁크 속이 밖에서 보여서 가리개가 있는 RAV4로 현장에서 바꿨다. 차량털이가 많은 샌프란시스코라 가능하면 트렁크에 실은 러기지가 안 보이는 게 좋겠다는 세라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차 상태를 다 확인하고 8시가 조금 넘어 출발했다.
레이크 타호로 출발하기 전 오클랜드 쪽으로 먼저 갔다. 세라가 이번 여행과는 상관없지만 여권을 갱신해야 한다고 해서 우체국에 들러야 했고, 한국마켓에서는 샤워수건을 사야 한다고 했다. 한국 슈퍼마켓에 먼저 들러 샤워수건을 사는 김에 햇반과 컵라면을 몇 개 샀다. 강도와 도둑이 많은지 슈퍼마켓 입구에는 방탄복을 입은 시큐리티가 지키고 있어 분위기가 좀 살벌하다. 근방의 우체국에도 들러서 일을 다 보고 나서야 마침내 출발할 수 있었다.
애플 힐 사과농장 - 레이크 타호
2시간 반 정도 I-80과 US-50을 운전하다 새크라멘토를 지나 중간에 쉬어가기로 한 애플 힐에 도착했다. 대규모 사과농장이다. 사과를 직접 따는 곳인 줄 알았는데 파머스마켓처럼 여러 곳에 부스를 차려놓고 사과, 감 등 농산물과 사과도넛을 판매하는 곳이었다. 잠시 쉬며 사과 열린 것을 구경하고 사과도넛도 먹어보고 감도 샀다. 여기서부터 한 시간 반정도 더 운전해 사우스 레이크 타호에 도착했다. 햄튼 인 레이크 타호에 짐을 풀고 좀 쉬다가 간단하게 저녁을 먹으러 Idle Hour라는 와인 바에 들어갔다. 레이크 타호의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와인 바여서 사람이 많았다.
캘리포니아 애플 힐 랜치
레이크 타호 경치가 뛰어난 와인 바 Idle Hour
가벼운 저녁을 먹고 세라는 호텔로 들어가고 소피와 나는 우버를 불러 타고 근방의 카지노호텔 Harrah's Lake Tahoe로 갔다. 갬블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밤시간을 보내기에는 슬롯머신이 좋다. 많이 잃지만 않으면 된다. 가지고 간 300불만 다 잃으면 오려고 했는데 거의 다 잃다가 900불짜리가 터졌다.
인스피레이션 포인트 - 바이킹스홀름 - 탈락 유적지
다음날은 Inspiration point, Vikingsholm, Tarllac Historic Site 등 호수 경치 좋은 포인트를 둘러보고 타호시티 인근까지 갔다가 사우스 레이크 타호로 돌아왔다. 브류어리에서 맥주를 마시려고 몇 군데 갔지만 적당한 곳을 찾지 못했다. 대신 불링장이 보이길래 처음으로 셋이서 볼링을 쳤다. 세라는 호텔로 가고 소피와 나는 다시 같은 카지노에 갔다. 이번에는 300불을 잃고, 팻버거를 먹고 씩씩하게 돌아왔다. 10월 말 밤의 레이크 타호 주변 날씨는 무척 차가웠다. 화씨 40도 안팎. 섭씨로는 0~5 도를 넘나드는 기온이다.
레이크 타호 인스피레이션 포인트
레이크 타호에서 요세미티로
다음날은 요세미티로 떠났다. June Lake를 들러서 구경한 후 Lee Vining 쪽을 통해 요세미티 벨리 랏지까지 가는 길이다. 계속 운전만 해도 5시간 반 정도 걸리는 길이다. 395번을 타고 브리지포트와 모노 레이크를 거쳐 120번으로 요세미티를 서쪽에서 들어가는 길, 가는 길에 호수가 여럿이고 경치도 좋다. 다행히 세라의 요청으로 운전자를 추가해 놓아 세라가 반정도 운전해 주니 피로가 덜하다. 집에서 새로 업데이트해서 가져간 GPS 보다 세라의 전화를 차와 연결해 구글지도를 사용하니 화면이 훨씬 커 길 찾기가 쉽다. 인터넷이 안 되는 지역이 가끔씩 나올 때는 가져간 GPS에 의존했다.
GPS에 도착하는 순서를 반대로 적어놓아 일부 포인트에서 내려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Lee Vining에서 요세미티 벨리 랏지로 가는 Tioga Pass는 역시 아름다운 경치임에 틀림이 없었다. 우리가 들린 곳은 June Lake Loop, Tenaya Lake, Olmsted point였다.
노란 단풍이 한창인 요세미티 벨리
요세미티 A Field of Hay
요세미티 벨리 랏지 베이스캠프
요세미티 벨리로 가는 길
요세미티 벨리
요세미티 벨리 랏지는 생각만큼 낡았다. 시설도 가격대비 (1박 340달러) 좋다고는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요세미티 벨리 안에는 숙소가 매우 한정되어 있다. 1박에 800달러가 넘는 Ahwahnee 호텔은 너무 비싸고, 텐트에서 자야 하는 Curry Village는 가격은 130불 정도이나 너무 불편하다. 그나마 위치가 제일 좋고 개별룸과 화장실, 샤워가 가능한 벨리 랏지를 예약한 것만도 다행이다. 여기를 예약해야 아침 일찍 요세미티를 제대로 돌아다닐 수 있다. 저녁은 베이스캠프에서 버거, 수프, 프라이, 맥주로 간단히 때웠다. 해 질 무렵 주변을 걸어보니 야영장에서 텐트를 치고 저녁을 준비하는 캠핑족들의 모습이 보인다. 기온이 화씨 40도 안팎으로 꽤 추운데도 야영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세라는 선셋을 본다고 차를 가지고 혼자서 높은 곳으로 갔다가 왔다. 밤에 뭘 할까 인터넷으로 찾다가 별 구경하는 투어를 찾았는데 이미 시작시간이 지났다.
다음날은 본격적인 요세미티 탐험이다. 해돋이를 보려고 아침 일찍 15분 운전해 터널뷰로 갔다. 그런데 벨리라 그런지 이미 날은 밝았는데 해 뜨는 모습은 볼 수가 없다. 춥기는 엄청 춥다. 차로 다시 이동해 미스트 트레일로 갔다. 한두 시간 예상으로 트레일을 걷기 시작했다. 경치가 매우 좋고, 겨울에 접어드는데도 작은 폭포를 볼 수가 있었다. 랏지로 돌아가 11시에 체크아웃을 했다.
요세미티 최고의 뷰포인트 Glacier Point 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걸렸다. 하프 돔이 가까이서 보이고, 요세미티 벨리 폭포, 네바다 폭포, 센티널 돔 등 요세미티의 봉우리와 폭포들을 파노라마처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글래시어 포인트에서 한 시간 이상 운전해 내려간 후 마리포사 그로브에 들렀다. 엄청 키가 큰 세쿼이아 나무를 보려는 것이다. 그런데 웰컴플라자에서 남쪽 출입구 쪽으로 가는 길을 막았고, 무료셔틀도 운행 정지됐다. 옆으로 돌아서 아침에 갔던 트레일보다 더 긴 듯한 트레일을 걸어가야만 했다. 한참을 걸어갔더니 거기가 세쿼이아 나무를 본격적으로 볼 수 있는 마리포사 그로브의 시작점이다. 바로 앞에도 엄청 키가 큰 세쿼이아 나무가 좀 있긴 하지만 정작 엄청 큰 나무들이 있는 곳까지는 시간상 갔다 올 수가 없다. 1시간 후면 해질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가까운 빅트리 트레일만 가볍게 구경하고 하룻밤 예약해 둔 Oakhust 햄튼 인으로 향했다.
터널 뷰 포인트 해 뜨는 시각
미스트 트레일
글래시어 포인트 전망
마리포사 그로브
요세미티에서 몬트레이 가는 길
로스 바뇨스 - 캐너리 로우
다음날 아침. 호텔 체크 아웃한 후 Bass Lake에 들렀다가 몬테레이이로 가는 날이다. 아침에 잠시 들른 Bass Lake는 관리가 잘 안 되고 있는 느낌이다. 원래는 많은 별을 볼 수 있다 해서 밤에 오려고 했는데 이 길을 깜깜한 밤에 오는 건 무리인 것 같다. 차를 돌려 몬트레이로 향했다. 요기서 몬트레이까지도 3시간 반정도 예상된다. 가는 길에 과일 스탠드에 잠시 들러 감을 몇 개 샀다.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뒷길로 한참 가다 보니 길이 군데군데 파여 운전하기에 너무 안 좋다.
중간 지점인 로스 바뇨스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타케리아에 들러 멕시코 타코를 몇 개 시켰다. 가게 주인도 손님들도 주로 스페인어를 쓴다. 꼭 멕시코에 온 듯한 느낌이다. 마침내 몬트레이 엠버시 스위트에 도착했다. 아직 해지려면 시간 여유가 있어 가방을 던져놓고 바로 나왔다. 호텔에서 15분 거리에 캐너리 로우가 있다. 이곳은 미국 소설가 존 스타인 백이 소설의 배경으로 쓴 글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The Grapes of Wrath (분노의 포도), East of Eden (에덴의 동쪽), Of Mice and Man (생쥐와 인간)을 읽으며 한 번쯤 와보고 싶어 했던 곳이다. 캐너리 로우는 원래 정어리 통조림 공장으로 유명한 곳인데 이제는 관광지로 변했다. 상점과 음식점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래도 아직 바다 경치만큼은 멋진 곳이다. 거리를 조금 구경한 후 바다에 떠있다시피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 식당은 삼면이 바다다. 클램차우더와 파스타, 피시 앤 칩등을 시키고 맥주도 한잔 했다. 세라와 내가 맥주를 한잔씩 해 호텔로 갈 때는 소피가 처음으로 운전했다.
캐너리 로우의 한 건물
경치가 좋은 캐너리 로우의 식당 Fish Hopper
요세미티에서 몬트레이로 가는 길
올드 피셔맨스 워프 - 17마일 드라이브 - 빅 서 빅스비 다리 - 캐너리 로우
엠버시 스위트는 방과 거실이 따로 있어서 우리같이 성인 자녀와 함께 여행할 때 숙소로 딱 좋다. 아침은 컨티넨탈 조식 이외에 항상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오믈렛이 있어 더욱 좋다. 게다가 오후시간에는 리셉션시간이 있어서 간단한 주류도 무료로 마실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다음날은 아침에 올드 피셔맨스 워프에 잠시 들렀다가 17마일 드라이브를 하려고 퍼시픽 그로브로 갔다. 17마일 드라이브 코스는 페블비치, 론 사이프러스, 허클베리 힐, 스패니시 베이 등 경치가 아름다운 포인트를 감상할 수 있는 멋진 드라이브 코스다. 이곳에는 찰스 스왑 (Charles Schwab), 조지 로페즈 George Lopez), 클린트 이스트우드 (Clint Eastwood), 콘돌리사 라이스(Condoleeza Rice) 등 거물급 인사들이 살고 있거나 살았다고 한다. 세라가 커피 한 잔을 픽업하고 싶다고 해 페블비치 리조트의 스패니쉬 배이의 한 호텔(The Inn at Spanish Bay)에 잠시 들렀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로비에 차를 잠시 세웠고 세라가 커피를 픽업하러 간 사이 화장실에 잠시 다녀왔는데 로비 근방에 서있는 벨보이들의 차림새가 멋스럽고 연령대가 지긋하다. 차로 다시 돌아가는데 한 60대의 직원이 나를 보더니 나를 등지고 내가 세워둔 차 쪽으로 먼저 가길래 로비 바로 앞에 차를 너무 오래 세워두어서 옆으로 가라고 하는 줄 알았는데 차문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팁을 줘야 할 듯한 순간이었지만 호텔에서 커피 한잔 산 것 뿐이서 땡큐 하면서 그냥 차에 탑승했다. 차에 타고 있던 소피도 차 빼달라고 오는 줄 알았다며 내가 금방 올 것이라고 말하려고 했다고 한다. 세라는 커피 한 잔이 9불이라며 이곳의 물가를 전했다. 로비에서 바닷가 쪽으로 얼핏 보니 해 질 녘에는 백 파이프 연주가 있다는 안내문이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방값이 얼마나 할까 하고 찾아보니 제일 싼 방이 960불, 스위트룸이 5,820불이다.
경치가 멋진 빅 서 (Big Sur)로 향했다. 왼쪽은 절벽, 오른쪽은 바다, 그 길을 한 시간 정도 달리니 유명한 빅스비 다리가 나왔다. 거기를 지나서 빅서 베이커리까지 갔으나 베이커리는 월요일과 화요일에 문을 닫는다고 쓰여있었다. 차를 돌려 다시 빅스비 다리에 차를 세웠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버터플라이 생추어리 (Butterfly Sanctuary)에 들러 모나크 버터플라이를 구경했다.
저녁을 태국식당에서 먹으려고 인터넷으로 찾아갔더니 바로 어제 갔던 캐너리 로우다. 저녁 식사 후에는 어제 가려다가 못 갔던 방탈출 게임(Room Escape)을 하러 갔다. 감옥에 넣고 잠근 후 여러 가지 힌트를 찾아 키를 열고 1시간 내에 룸을 탈출하는 게임이다. 하와이 알라모아나에서 해보려고 하다가 말았는데 마침 근방에 있길래 해본 것이다. 나는 생각보다 별로였는데 세라는 매우 재미있어했다. 생일날 친구들을 여러 명 데리고 가고 싶다고도 했다.
몬트레이 엠버시 스위트
올드 피셔맨스 워프
스패니시 베이의 The Inn at Spanish Bay
빅 서 가는 중 뷰 포인트
빅서 빅스비 다리
마리포사 생추어리, 나무에 붙어있는 호랑나비들
하프문 베이 리츠 칼튼 - 퍼시피카 타코 벨
오늘은 하프문 베이에 들렀다가 샌프란시스코를 지나 산 라파엘까지 가는 날이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은 후 공원에서 잠시 산책을 했다. 짐을 챙겨서 체크 아웃을 하고 하프문 베이로 향했다. 하프문 베이에서는 리츠칼튼 호텔 전망이 좋다고 하여 들어갔다. 아직 배고플 때가 아니어서 경치 좋은 호텔 식당에서 커피 한잔하고 가려했는데 세라가 그냥 나가자고 한다. 세라는 이렇게 인위적으로 멋지고 비싸게 만들어진 분위기를 싫어하는 듯하다. 나이 많고 돈 많은 백인들에게나 어울리는 곳이라고 한다. 세라는 자기가 졸업한 보스턴 칼리지도 이와 비슷한 분위기라고 했다. 학교 다니면서 백인 상류층 학생들과 위화감이 좀 있지 않았나 싶다. 세라가 먼저 차로 가버리는 바람에 결국 잠깐 구경만 하고 나왔다.
좀 더 올라가서 퍼시피카의 타코벨도 경치가 좋기로 소문난 곳이다. 그러면 여기서 하프문베이를 좀 구경하고 가야겠다고 세웠다. 그런데 세라는 여기도 싫어했다. 소피와 내가 타코벨에 앉아서 간단히 타코를 하나씩 먹는 사이 세라는 옆의 커피숍으로 간다고 가버렸다. 타코벨은 여느 가게와는 달리 음악이 시끄럽고 사람이 붐비는 곳 이긴 한데 그렇게 못 참을 정도는 아니다. 뭐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리츠 칼튼에서부터 계속 심통이다.
티뷰론 - 산 라파엘
금문교를 건너 티뷰론에 도착했다. 원래는 소살리토의 경치 좋은 식당 The Trident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했지만 세라의 심통이 풀리지 않아 티뷰론에만 잠시 들었다가 산 라파엘의 호텔로 바로 가기로 했다. 티뷰론에서 세라는 차 안에서 잠을 자고, 소피와 나는 경치를 잠깐 구경하고 돌아왔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여기까지 페리로 금방 올 수 있는 곳이다. 산 라파엘 엠버시 스위트에 들러 체크인을 했는데 마침 리셉션 시간이 25분 남았다고 해서 짐을 들여놓지도 않고 바로 로비 바로 갔다. 하루에 두 잔씩 맥주든, 칵테일이든, 양주든 무료로 시킬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진토닉 두 잔을 시켜 소피와 나누어 마셨다. 세라는 칵테일 한 잔을 마시고 와인 한잔은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짐에 가서 운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호텔에 오기 바로 전에 저녁거리로 라파엘의 아시안 슈퍼마켓에서 약간의 반찬과 스팸, 인스턴트 된장국, 컵라면, 소주 등을 샀고, 세라는 근방의 식당에서 샐러드와 음료를 픽업했다.
하프문베이의 리츠 칼튼
퍼시피카의 타코벨
티뷰론에서 바라본 샌프란시스코 쪽 풍경
엠버시 스위트 산 라파엘
뮤어우즈 국립공원 - 배터리 스팬서 - 소노마
오늘은 뮤어우즈 국립공원에 가는 날이다. 다행히 세라의 기분이 조금 풀린 것 같다. 뮤어우즈는 미리 예약하고 가야 한다. 이 사실을 몰랐는데 인터넷으로 찾아보다가 오는 사람들에 비해 주차장 공간이 많지 않아 주차비와 입장료를 미리 내고 입장 시간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었다. 10시 30분 입장을 선택하고 온라인으로 지불했다. 가는 길은 상당히 경사가 심하고 꼬불꼬불했다. 그래도 호텔에서 출발한 지 1시간 이내에 도착했다. 국립공원은 잘 관리되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가까운 레드 우드 숲이라고 한다.
한 시간 반정도의 하이킹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인 금문교로 향했다. 금문교를 코앞에서 보는 게 아니라 금문교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손꼽히는 Battery Spencer로 갔다. 19년 전에도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금문교를 봤기에 처음은 아니지만, 이곳의 뷰는 역시 뛰어났다. 주차하고 약 5분 정도 걸어야 하지만 주차장에서 바로 보이는 곳이다. 사진만 찍고 가기에는 조금 아쉬워 잠시 시간을 두고 가만히 금문교를 바라봤다. 바다에 우뚝 선 현수교 다리, 참 멋지다. 내려와서는 어제 가려다 못 갔던 소살리토에 갔다. 아직 배고프지 않아 바닷가 카페에서 커피 한잔, 음료 한잔, 클램차우더 하나를 시켰다.
시간이 되면 소노마나 나파에 가볼 생각이 있었는데 세라가 소노마에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식당이 있다고 한다. 그럼 산 라파엘에 머무는 오늘이나 내일밖에 갈 시간이 없다. 오늘 저녁을 거기서 먹기로 했다. 북동쪽으로 차를 몰아 소노마의 와이너리들을 거쳐 소노마 시청 앞의 음식점 Valley에 도착했다. 저녁시간은 5시에 여는데 4시에 도착했다. 기다리면서 시청 근방을 걸어서 구경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와인 테이스팅하는 가게들이 아주 많았다. 시간이 돼서 첫 입장 손님으로 들어갔다. 세라가 여러 가지 애피타이저와 음식, 후식, 와인을 시켰다. 식당 입구에 미슐랭 로고가 보이는 집이지만 내 입맛에는 그저 그랬다. 별로 먹은 것도 없는데 300불이 넘게 나왔다. 나는 밤길을 운전해 호텔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았다. 지금쯤 호텔에서 주는 무료 리셉션 타임에서 주는 술과 치즈를 먹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한번 사고를 당할 뻔했다. 길이 복잡하게 여러 갈래로 꼬이는 교차로에서 하마터면 반대 차선으로 들어갈 뻔했다. 얼른 옆쪽 맞는 차선으로 들어갔다. 운전에 더욱 집중해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리셉션은 이미 끝난 시간이었고 배는 조금 고팠다. 어제 남은 햇반을 인스턴트 된장국에 말아먹으니 뱃속에서 방금 다녀온 미슐랭 식당보다 훨씬 낫다는 반응을 보였다.
뮤어우즈 국립공원
배터리 스팬서에서 본 금문교
소노마 시청
골든게이트공원 - 실리콘벨리 컴퓨터박물관 - 공항 랜트카 - 샌프란시스코 한식당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체크아웃했다. 오늘은 샌프란시스코 시내로 들어가는 날이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는 차 트렁크에 짐을 싣고 다니는 것보단 호텔에 맡겨놓는 게 낫다. 그래서 다음 호텔인 힐튼 샌프란시스코 유니온베이에 먼저 들러서 짐을 맡긴 뒤 시내를 여행하기로 했다. 금문교를 지나 샌프란시스코 시내의 언덕을 올랐다 내렸다, 우회전 좌회전을 몇 차례 반복하다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로비 앞 공간에는 택시와 우버 등 차들로 복잡했다. 그 틈을 비집고 차를 잠시 댄 후 소피에게 차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프런트데스크로 갔다. 아직 오전 11시 정도인데 다행히 체크인이 가능하다고 했다.
세라와 둘이서 배정받은 방으로 짐을 날랐다. 곧바로 차로 돌아와 골든게이트 파크로 갔다. 샌프란시스코에는 오래전에 와 봤지만 이 공원은 처음이다. 뉴욕의 센트럴파크보다 더 크다는 이 공원은 입장료는 없지만 군데군데 위치한 명소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도록 되어있다. 우리는 Japanese Tea Garden, Conservatory of Flower, Botanical Garden에 들어갈 수 있는 패스를 샀다. 한 사람당 28불이니 셋이 84불, 공원 입장료치곤 꽤 비싼 편이다. 게다가 주차비도 있다. 일본 티 가든은 아기자기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규모가 작았다. 티 가든 안에 있는 찻집에 잠시 앉아 차도 마셨다. 찻집은 조용해야 제격인데 사람들이 많아 어수선하다. 그래도 자연 속 찻집 분위기는 괜찮다. 보태니컬 가든은 규모는 큰데 볼 것은 생각보다 별로 없다. 세 군데 중에서 Conservatory of Flower 가 그나마 가장 나았다. 실내 식물원이라 좀 덥지만 관리가 잘되어 있었다.
공원을 나와서는 실리콘벨리로 갔다. 오늘 저녁에 차를 반납해야 하므로 그전에 다녀오는 게 낫다 싶었다. 금요일 오후 샌프란시스코에서 실리콘벨리로 가는 하이웨이는 꽤 막혔다. 실리콘벨리에서는 앱을 다운로드하여 자유 자동차 투어를 하려고 했는데 세라가 앱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다고 했다.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뭔가 보고 가야 할 것 같아 컴퓨터박물관으로 갔다.
도착한 시간은 4시인데 5시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세라는 컴퓨터에 관심이 없다며 인근 카페에나 가겠다고 한다. 시간이 늦은 관계로 20 불하는 입장료를 10불에 할인받아 소피와 둘이 들어가기로 했다. 볼 것은 꽤 많았고 시간이 많으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박물관이다. 특히 컴퓨터에 관심이 있다면 더욱 그러한 곳이다. 대강 둘러봐도 1시간이 지났다.
나오니 세라는 차에 있었다. 카페에 못 갔는지 배가 너무 고프다고 했다. 점심을 안 먹었으니 나도 고프다. 하지만 한 시간 후면 해가 지니 일단은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가서 차를 반납해야 한다. 한참을 달려 알라모에 무사히 차를 반납했다. 9일간 여행을 같이 한 차라 벌써 정이 들었다. 반납 전에 공항 근방의 주유소에 들렀는데 일반 차를 주유하는 곳이 아니다. 그냥 포기하고 반납하기로 했다. 주유하고 반납하는 게 훨씬 싸지만 다시 주유소를 찾아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차 반납 시 마일리지는 14,647, 9일간 우리가 주행한 거리는 1,284 마일이다.
세라에게 한국식당을 찾아보라고 했고, 우버를 불러 샌프란시스코의 한식당으로 갔다. 재팬타운에 있는 대호갈비찜이라는 곳이다. 7시쯤 식당에 도착했는데 식당 앞에 기다리는 사람이 30명쯤 된다. 원래 줄 서서 들어가야 하는 맛집인 모양이다. 주문을 밖에서 미리 하고 30분쯤 기다리다 겨우 들어갔다. 식당 안은 많은 사람들로 엄청 시끄러웠지만 그래도 맛은 있었다. 우리는 수육과 매운 갈비탕, 육회, 소주를 시켰다. 다시 우버를 불러 호텔로 돌아왔다.
골든게이트파크 내의 일본 티 가든 찻집
Japanese Tea Garden
예르바 부에나 - 케이블카 - 피어 39 - Palace of Fine Arts - 코이타워 - 힐튼 시티스케이프 바
오늘은 여행 마지막 날이다. 세라는 오전에 짐을 싸 호텔에서 멀지 않은 친구집으로 다시 가기로 했고, 소피와 나는 샌프란시스코 시내 구경을 하기로 했다. 세라가 짐 싸기를 기다리다가는 시간이 너무 지체될 것 같아 오전 10시쯤 나왔다. 예전에 갔던 예르바 부에나가 호텔 근처라 걸어갔다. 19년 전에 왔을 때는 넓은 잔디가 있는 좋은 분위기였는데 건물이 많이 들어서 답답한 느낌이다. 좀 실망하고 호텔 근방 케이블카 턴어라운드 하는 곳으로 갔다. 근처에서 1일 패스를 사고 케이블카에 올랐다. 피어 39에 도착했다. 물개를 보고 식당에 들어가 클램차우더와 피시 앤 칩, 맥주를 시켜 마셨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다. 우버를 타고 Palace of Fine Arts로 갔다. 아름다운 이곳 경치는 예전 그대로였다.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이젠 어디를 갈까 생각하다 전에 코이타워에 안 가본 것이 떠올라 다시 우버를 불러 타고 갔다. 타워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라고 해 걸어 올라갔다. 입장료 10불은 좀 비싼 편이었다. 힘들게 계단을 올라가 경치를 한 번 쓱 보고 내려왔다. 케이블카 지나는 곳까지 걸어 내려가 한참 동안 케이블카를 기다렸다. 마침내 온 케이브카를 탔는데 한 정거장 지나니 종점이라며 내리라고 한다. 반대로 탄 것이다. 내려서 막 출발 대기하는 케이블카로 갈아타려니 다음걸 타라고 한다. 차 뒤쪽을 보니 케이블카에 타려는 줄이 길었다. 그 맨 끝에 가서 기다리면 한참 걸릴 것 같다. 우리는 서서 가도 상관없으니 한 정거장 앞까지 걸어가 그곳에서 다음에 오는 케이블카를 탔다. 잠시 후에 온 케이블카에 올라 유니온스퀘어를 지나 종점에 도착했다.
힐튼 샌프란시스코 유니언스퀘어 호텔 꼭대기층인 46층에는 시내를 360도 내려다볼 경수 있는 Cityscape Bar 가 있다. 마침 호텔 크레디트도 써야 하니 이곳에서 칵테일 한 잔 하며 선셋도 구경하려고 올라갔다. 선셋과 야경을 구경하려고 바에 온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칵테일 두 잔과 치즈세트를 시켰다. 값은 75불이나 나왔다. 선셋 무렵 샌프란시스코는 안개가 자욱이 껴있다가 건물에 불이 하나둘 켜지면서 안개가 걷히고 맑아졌다. 방으로 돌아오기 전 배가 고픈 듯 해 우버 이츠로 초밥롤을 시켜놓고 로비에 들러 픽업했다. 방에서 남은 컵라면 하나 약간의 남은 음식, 픽업한 초밥롤, 남은 캔맥주로 저녁을 때웠다. 그리고 짐을 쌌다. 내일 아침 7시 15분에 떠나는 비행기라 5시까지 공항에 가려면 4시쯤 나가야 한다. 일찍 일어나기 위해 일찍 잤다.
일요일 새벽 4시다. 체크아웃하고 로비 문 앞에 도착한 우버를 타고 일요일 새벽공기를 가르며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빠져나왔다. 공항에 도착하니 4시 20분, 너무 일찍 도착했다. 하와이안항공 직원들도 아직 나오지 않아 조금 기다렸다. 10분쯤 후에 체크인이 시작됐다. 보딩패스를 끊고 짐을 부쳤다. 시큐리티도 일찍 통과했다. 일찍 나오니 복잡하지 않아 여유롭다. 공항 내 문을 연 가게가 한 곳뿐이다. 그곳에서 커피를 픽업하고 자리에 앉아 잠시 후에 떠나는 하와이안 항공 보딩시간을 기다렸다. 2023년의 여행이 끝나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