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믜 Aug 01. 2023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면 퇴사를 해야 하는 삶에 대하여

워킹맘의 퇴사일기, 저출생 극복 정책 제안

지난 2월, 내가 하던 일과 일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고, 그동안 버티고 눌러왔던 것이 터져 나오며 결국 퇴사를 결정했다. 퇴사의 요인은 직장에서의 성장이나 비전, 동료 등 오직 일에 관련된 것이었다.


마지막 출근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내가 저연령 자녀를 둔 워킹맘이어서 유난히 힘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당시 내 머릿속에는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내 집에서, 그 누구도 상대하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나는 왜 그토록 격렬하게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아이가 태어나고 어쩔 수 없이 전업주부가 된 내게 집은 일터였다. 집에 있는 모든 것이 나의 할 일이었다. 육아를 도맡으며 혼자 화장실에 가지도, 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하며 기본적인 욕구조차 채울 수 없는 시간이 참으로 길었다. 그렇게 수년의 경력 보유 기간을 지나 집에서 1시간 30분이 걸리는 거리에 있는 회사에 재취업을 했을 때는 출퇴근시간, 곧 육아를 하지도 않고 회사에 있지도 않은 시간이 하루 3시간이나 생긴다는 것에 무척 기뻤다. (주변에서는 멀어서 힘들겠다고 했지만 그건 힘든 것도 아니었다. 긴 출퇴근시간이 그나마 트일 수 있는 숨통이 되어줄 정도면 전업맘의 삶이 얼마나 답답했을지 말 다했다.)


물론 그 생각도 오래가지 못했다. 1분이라도 빠르게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와 지하철을 3번씩 환승하는 시간마저 노트북을 펼치고 일을 더 하거나, 휴대폰으로 집안일 관련 정보를 찾거나 장을 봤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즉시 옷만 겨우 갈아입고 씻지도 못한 채 바로 육아모드에 돌입했고, 내 집은 일만 하다가 눈만 겨우 붙이는 곳이 되었다.


내가 다니던 직장은 코로나19 관련 외에는 재택근무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집에서 일했던 수많은 새벽과 주말은 초과근무나 휴가로 전환되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매년 15일씩 지급되는 연차는 아이의 여름방학, 겨울방학, 부모 참석 행사, 아이가 아플 때 긴급 대응하는 것으로 메꾸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아플 때 엄마아빠 대신 할머니가 와있는 것도 서러운 우리 집 아이는 매일 엄마와 노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11시를 훌쩍 넘겨서 잠이 들었고 나는 육퇴라는 것을 해본 게 손에 꼽는다. 항상 아이보다 먼저 잠들어버릴 정도로 너무나 지쳤었다. 아이와의 시간을 위해 연차를 아끼다 보니, 프로젝트가 끝나는 시점에 연차를 쓰는 직원들이 부러웠다.


상사: 성미 책임은 프로젝트 끝났는데 왜 휴가 안 썼어요?
나: 연차 아껴놔야 돼서요. 아이 방학이 아직 두 번이나 남은걸요...


그런 생활을 하다가 퇴사를 했고, 출근을 안 하는 첫날에 아이가 평소처럼 등원을 하고 나니 비로소 집에 혼자 있게 되었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혼자만의 시간이, 퇴사를 하고 나서야 찾아온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면 무려 퇴사를 해야 하는구나. 일하는 부모는 퇴사를 하지 않고서는 쉴 수가 없구나.'


그렇게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문득 이상한 거다.


아이는 방학이 있는데 아이의 부모는 왜 방학이 없는 걸까?

아이가 교육기관에 가지 않는데 부모가 일터에 가야 한다면 아이만 집에 남으라는 걸까?


방학이면 맞벌이 가정에서는 연차를 쪼개고 사교육을 찾고 돌봄을 해줄 도우미를 찾는데 온 힘을 다한다. 그렇게 많은 노력과 비용을 들여도 공백이 메꿔지기 어렵다.


나는 양육해야 할 자녀가 있는 가정이라면 국가가 정책 차원에서 연차를 추가로 제공하거나, 자녀의 방학에는 부모도 가정에 있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로자가 받는 연차는 근로 환경으로부터 떠나 재충전을 하기 위해 제공하는 것인데, 이를 온전히 가정에서 양육으로 쓰고 있으니 연차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이가 하나여도 이렇게 틈이 힘든데 둘 이상은 어떻게 기를까. 국가의 연차 지원이 있다면 직장과 가정 모두에 충실한 삶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대화를 상상해 본다.


“이 부장님 자리에 계시나요?”
“부장님 따님이 이번 주부터 방학이라네요.”
“아, 벌써 방학 시즌이네요. 그럼 방학 끝나고 뵈어야겠어요.”

이렇게 쓰고 보니 어쩐지 자연스럽...?!


직장에서는 이 부장님이지만 가정에서는 아이가 있는 아버지고, 그에게는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가질 권리가 있다. 직장에서 직원의 지속가능한 근로를 위해 복지제도를 마련하듯이, 각 가정이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국가가 복지를 제공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복지는 시간이다. 자라나는 자녀와의 관계는 적절한 시점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이는 돈이 해결해 줄 수 없다.


밖에서 신나게 뛰어 노는 아이는 보기만해도 삶의 활력소가 된다. 내 삶이 일로만 존재하지 않도록, 밖에서 치이고 들어와도 집에서는 웃을 수 있도록 하는 마법같은 존재다.



#인구2.0 #경기도아이원더 #저출생

*이 글은 소정의 원고료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설문지 하나로 포용성을 보여줄 수 있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