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트레이너의 운동 영상을 열심히 따라 하던 중, 현대인은 어쩌다 이렇게 운동을 해야만 할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생각의 꼬리가 이어졌다.
과거에 인간이 신체를 사용해서 일을 하던 시절에는 운동을 따로 할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업종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인간은 자원이 있는 곳으로 직접 이동을 했고, 육체노동을 하여 재화를 얻어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우수한 두뇌로 신체의 한계를 넘은 역사가 유구하다.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이 없는 대신 뾰족한 사냥도구를 만들었고, 불을 다루어 맹수들을 쫒고 철기를 만들었다. 직접 밭을 가는 대신 소의 힘을 이용하고, 먼 곳을 빠르게 갈 때는 말의 다리를 이용했다. 사람의 신체능력에 한계가 있으니 가축에게 위탁(아웃소싱)한 거다.
과거에는 도구나 가축을 이용해서 인간의 신체능력을 보완했다.
이렇게 인간의 능력을 외부로 위탁한다는 관점에서 현대인을 보면, 뇌의 기능을 컴퓨터에게 위탁했다고 보인다. 컴퓨터는 인간 대신 복잡한 계산을 해주고, 다 기억하지 못할 분량의 정보를 대신 기억해 준다. 게다가 AI의 발전으로 창작까지 해내고 있다. 인간은 뇌가 하는 일을 더 많이 컴퓨터에게 위탁하고 있으며, 이 추세로 보면 컴퓨터가 인간 뇌의 작동원리를 완전히 파악하여 뇌 기능의 전체를 뛰어넘을지도 모른다.
인간 뇌의 능력은 컴퓨터에게 아웃소싱하고 있다.
이렇게 인간의 신체 전부를 위탁해 버리면 인간에게 남는 건 무엇일까? 신체적(physical)인 것을 모두 베껴버리고 나면 정신적(mental)인 것만 남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이 가진 정신, 심리, 감정, 도덕, 윤리 이런 것들 말이다.
인간의 정신은 신체를 조종한다. 단단해지기 위해 일부러 힘든 길을 선택하는 것, 사랑하는 이를 위해 가진 것을 포기하는 것, 손해를 입더라도 남을 돕는 것, 고인을 기리기 위해 무덤을 만들고 곁을 떠나지 않는 것 등 어찌 보면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모두 정신이 신체를 지배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행동을 ‘인간적’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정신적인 요소야 말로 인간을 나타내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은 신체적, 정신적인 것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신체의 대부분을 다른 것에 아웃소싱해버린 이 시대는 인간의 정신을 강화할 때다.
머지않은 미래에 컴퓨터가 이성적으로 판단을 하고 화려한 기술을 뽐내는 동안 인간은 이성을 뛰어넘는 정신을 갈고닦아야 한다. 그래야 인간이 손쓸 수 없을 수준으로 기술이 폭주할 때, 우리가 기술에 윤리의 잣대를 들이밀어 기술을 컨트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하드 스킬(hard skills), 즉 암기를 잘하고 계산을 잘 해내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데 힘을 쏟을 게 아니라 인간의 감정, 정신, 윤리, 도덕 등의 소프트 스킬(soft skills)을 강화시켜야 할 것이다. 이미 거대 테크 기업은 윤리 담당부서를 상당수 운영하고 있다. 윤리 부서, 형평성 부서 등을 강화하며 인간적인 기술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기술이 윤리의 제약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대다수의 인간이 정신의 수준을 높여 사회적으로 압박을 주어야 한다. 따라오지 못할 수준의 심오한 정신이야말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 요즘 인간성이 사라진 인간들의 뉴스를 자주 접하다 보니, 이게 다 컴퓨터에게 위탁해버리면 그만일 기술을 쫓느라고 정신은 없이 빈껍데기만 남은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 아이를 낳고 나서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감정과 인간성만큼은 제대로 아는 사람으로 기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 기회에 그 생각이 더 공고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