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결혼파티를 다녀와서 결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다
지난 3월 함께 대학원을 다닌 친구가 결혼을 했다. 한국인이 아닌 친구의 결혼에 초대된 건 처음이라 기대가 되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내게 가장 크게 다가온 건 그 친구의 행복이었다. 결혼 전에 그 친구의 배우자를 만난 건 한 번 뿐이지만 정말 예쁜 커플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도 계속 친구가 얼마나 마음 가득 애인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초대장을 받았을 때, 결혼파티에서 그 커플을 만났을 때, 그리고 나중에 결혼사진을 확인할 때도 내 감정은 하나같이 '너무 감격스러워. 정말 예쁜 커플이야, 친구가 행복해 보여서 나도 너무너무 행복해'였다. 너무 감격에 겨워 눈물도 났을 정도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인의 결혼에 이렇게 감격하고 행복해했던 적이 있었던가?’
결혼은 언젠가부터 별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게 되었다.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합의된 나이가 되었거나, 오래 만난 애인이 있으면 치러야 하는 인생 과제가 되었다. 결혼을 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양가의 집안을 비교하고 경제적 수준을 비교하고 재물을 거래한다. 거래가 성사되지 않으면 결혼이 어렵다. 힘겨운 거래 과정을 거치고 나서도 결국 같은 이유로 행복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래서 그동안 한국의 친구들의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 사람이랑 결국 결혼하는구나. 잘됐다” “아 그 친구도 이제 하는구나” 정도의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 치러야 할 일을 했고, 당연한 수순을 밟았구나.
결혼제도는 사랑하는 관계를 가족과 같이 대우하여 법으로 보호받으려고 만든 제도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결혼을 대하는 태도는 사랑만큼 순수하지 않다. 우리에게(이성애자에게) 주어진 결혼제도는 당연한 것이지만 동성애자에게는 특권이다. 특권을 원래부터 지닌 사람들은 그게 특권인 줄도 모른다. 당연한 권리인 줄 알고, 누려야 하는 줄 알고, 그래서 남용하기도 한다.
내 친구는 동성애자다. 그리고 동성결혼 합법화 덕분에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감사하다. 내가 가진 특권을 친구도 누릴 수 있어서 너무나 기쁘다. 내가 남편과 가족으로서 비자를 발급받아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같이 살고 건강보험혜택을 같이 받듯이 내 친구도 이제 배우자와 많은 부분을 함께할 수 있다. 이토록 당연한 걸 왜 그렇게 오래도록 보호해주지 못한 걸까. 여전히 동성결혼에 반대하는 국가의 동성애자들은 제도에 아파하고 이별을 고하기도 할 것이다. 단지 이성애자로서 모를 뿐.
생각을 더 해보면, 이성애자들의 결혼은 생물학적 남성과 여성의 조합이기 때문에 자식을 만들고 길러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너희 둘이서 아이를 만들 수 있는데 왜 안 만들어?') 동성결혼이라면 아이를 만들 수 있는 나이가 다가와서, 혹은 이미 피를 나눈 아이가 생겨버려서 등 떠밀려 결혼하는 경우도 적지 않을까. 동성결혼이야말로 정말 순수하게 사랑해서 하는 결혼이 아닌가 싶다. (제발, 결혼을 하는 것과 부모가 되는 건 별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이든 입양을 하든 미혼부-미혼모로 살든 이건 이상한 게 아니라고요.)
언젠가 내가 느낀 감정과 생각을 남기고 싶었는데 오늘이 적절한 날인 것 같다. 오늘은 국제 성소수자 차별반대의 날이다. 많은 생각과 배움을 주는 친구야 고마워. 사랑해. #IDAHOT #LGBTQ
Orignially posted on FB, English version on Medium
추가. 브런치 키워드에 '동성결혼'이나 '동성애'가 없다. 성소수자가 내가 넣을 수 있는 유일한 단어였다.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