궂은날 빼고 거의 매일 앞산으로 산책을 간다. 운동삼아 앞산 간다고 하면 사람들이 대개 등산을 생각하는 것 같아 굳이 산책을 강조한다. 정상 근처는 얼씬도 않는다.
30대 때 산악회에 몇 년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대절 버스를 타고 좋다고 소문난 산을 타러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오래전이라 기억에 남는 산이름은 몇 없지만 청량산, 사량도 지리산은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다. 너무 힘들었지만 정상에서 받은 그 보상은 차고도 넘쳐서.
헐떡이는 숨을 몰아쉬며 정상만 생각하면서 올랐다. 발끝만 내려다보며 천근 같은 발만 겨우 번갈아 내디뎠다. 이윽고 다다른 정상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경치는 몇 시간의 고생을 상쇄하고도 한참 남을 만큼 멋졌고, 포기하지 않고 정상을 밟았다는 대견함도 무척 컸지만, 산을 오르는 동안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등산로 옆 나무와 계곡을 바라볼 여유를 갖지 못하고 그저 정해진 일정에 맞춰 정상을 찍고 내려와 하산주를 벌컥이고 늦기 전에 대구로 돌아올 생각만 했었다.
목적 등산이었다고나 할까.
그 목적이 정상이었는지 하산주였는지 나 그산 올랐다는 자랑인지는 아직도 헷갈리지만.
가끔, 그때처럼 높고 험한 산을 오르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현실의 내가 무엇을 이루어 만족하기는 쉽지 않으므로 산이라도 올라 나의 불굴(?)의 의지를 확인하고 정상에서만 볼 수 있는 풍광으로 성취감을 충족하고 싶은 것 같다.
오만가지 핑계로 미루고 또 미룰 확률이 매우 높다.
그래도 언젠가, 몇 번은 도전하지 않을까.
내 산책은 귀에 이어폰 꽂고 비트를 들으며 느긋하게 오르락내리락 산로(山路)를 한 시간 남짓 걷는 것이 다이다. 숨이 꼴딱 넘어갈 일도, 땀에 흠뻑 젖을 일도 잘 없다(한여름은 어쩔 수 없이 젖는다). 그저 산을 가까이 느끼고 그즈음의 화두를 생각하며 느릿하게 걷는다. 장비를 갖출 필요도, 장거리 이동도 필요 없다. 그냥 운동화 갈아 신고 쓱 나서면 되는 일이다. 그렇게 아무 때나 마음 내키는 대로 걷는 시간이 나를 유지한다고 생각한다. 산책은 그런 시간이다. 산책은 생각을 정리하는 도구이며 근육을 조금씩 늘리는 수단이다.
이 글의 제목은 변호사이자 작가인 정지우의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에서 빌려왔다. 글쓰기 초짜 시절 읽었던 책인데 문득 생각나서 몇 꼭지 다시 읽었다. 글쓰기 책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그냥 써라, 당장 써라, 매일 써라'다. 써보고 일았다. 그 말이 진리라는 것을. 그리고 생각했다. 우리는 어쩌면 글쓰기만큼 독서를 너무 거창하고 심각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그냥 아무 책이나 매일 오 분, 십 분 읽으면 너무 가벼운 일인 걸까.
산은 산이고 책은 책이다.
낮아도 산이고 쉬워도 책이다.
예전의 내 독서가 한 달의 한 번 명산 오르기 같은 것이었다면, 요즘의 책 읽기는 앞산 산책과 같다.
부담 없이 가볍게, 마음 가는 대로, 손 가는 대로 그날그날 기분 따라 하는 일상의 행위다. 그래야 자주 한다. 내 체력과 의지로 매일 정상을 찍는 등산을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잊지는 않고 있다. 아니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높은 산을 올랐을 때의 그 쾌감을.
매일 걸어서 허벅지가 더 튼실해지고 엉덩이가 더 단단해지면 팔공산 동봉과 한라산을 다시 오를 날도 올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