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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버거 Nov 11. 2024

꿈을 사는 삶

<작은 책방 집수리 / 이재정. 이정윤 저 / 이유출판>

2020년 2월 29일, 길담서원은 공주로 이사를 했다. 공주시 봉황동으로 옮긴 후, 1년은 쉬고 1년은 집수리를 했다. 코로나 시기와 겹쳤던 이 기간은 침잠하여 생각도 가다듬고 우리 몸도 점검하는 시기였다. 텅 빈 공간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형성되어 있는 사고방식과 형상을 해체하고 다시 정립하는 시간이었다. 기존의 모든 관계가 끊어진 상태에서 조용히 공주시 원도심을 산책하고, 가끔 원거리 여행을 하고, 오래된 집과 씨름하고 대화하는 시간도 나쁘지 않았다.
(중략)
무턱대고 시작한 공사를 작은 사고도 없이 마무리하고 2022년 2월 25일부터 비좁고 남루한 상태로 문을 열어가고 있다.  
-<작은 책방 집수리 / 이재성, 이정윤 저 / 이유출판>-


책 '작은 책방 집수리'는 2020년 2월 29일부터 2022년 2월 25일까지, 제목대로 초보 둘이 손수 공간을 고치고 꾸미는 만 2년의 기록이다. 책방 이전과 수리 기간이 코로나 시기와 겹친다. 계획할 없는 일이 맞아떨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기약 없이 놓고 어, 하던 시간. 결과적으로 책방지기들은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고 겠다.

  

저자는 그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고 말한다. '좋았다'가 아니라 '나쁘지 않았다'이다. 사람은 대개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을 시간이 흐른 후 덩어리로 묶어서 평가하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음을 감안하면, 고생 꽤나 했구나 싶다. 물론 독자의 시각이다.


나는 책에서 불안과 극복을 읽었다. 무엇을 시작하는 일은 불안한 일이다. 밥벌이와 연관이 있다면 불안은 더 커지고 절박해진다. 새로 하는 것과 다시 하는 것의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있다 해도 미미하다고 본다. 요즘 내 불안의 원천은 브랜드를 새로 만들고, 유통망에 다시 진입하고, 알 길 없는 소비자 반응을 예상하는 것이다. 새벽에 눈을 뜨는 날이 늘었다. 불안은 단지 내 몸이 겪는 무서움, 공포가 감정으로 변환된 신호임을 알아도  소용은 없다.  

불안이 기체처럼 내 몸을 채울 때, 나는 몸을 쓴다. 공장 청소, 정리, 산길 산책을 한다.  움직여 땀 흘리면 불안은 조금 가벼워지고 뇌도 육체란 사실에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든다.


주택을 사고 수리를 직접 하기로 한 결정은 경비 절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내 손으로 공간을 바꾸는 보람이 생기고, 그 시간 동안 애자랄 것을 알았을 테니까.

우리는 모를 때 더 많이 아프고 더 많이 무섭고 더 많이 두렵다. 하지만 어떻게 멍이 내 몸에 들어왔고 상처가 났는지를 알면 아픔이 덜했다. 다음에 조심하게 되고 아픈 몸에게 휴식을 주게 되었다. 이러한 멍과 상처들이 우리의 몸에 들어왔다 나갔다 하면서 흔적을 남기고 집은 수리되어가고 있었다.
-<작은 책방 집수리 / 이재정. 이정윤 / 이유출판>-


그들은 끝을 알 수 없던 시간, 만나지 못하고 나가지 못하던 시간, 사뭇 불안했을지도 모를 시간을 서툰 노동으로 견뎌냈다. 몸을 쓰는 시간에 비례해 조금씩 나아지는 공간의 모습과 도구와 일에 점점 익숙해지는 육체가 주는 기쁨이 막연한 미래의 불안을 덮어주지 않았을까.   


갱년기 의 更은 '다시 갱'으로도 읽고 '고칠 경'으로도 읽는다. 그럼, 갱년기는 다시 새로운 나날을 사는 시기라는 말인가? 경년기, 몸을 고쳐가면서 사는 시기라고도 읽어봤다.
(중략)
화장실과 부엌 사이에 조적을 하고 문틀을 세우고 미 장을 하면서 생각했다. 헌 집을 해체하고 수리하여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 듯이 내 몸도 가다듬으며 앞으로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그 삶은 '꿈꾸는 삶'이 아니라 '꿈을 사는 삶'이어야 한다고.
-<작은 책방 집수리 / 이재정. 이정윤 / 이유출판>-


어쩌면 불안과 등가일 '꿈'을 꾸는 삶에서, 손수 만든 '꿈' 속에서 사는 삶으로 나아가 바란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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