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카페 대책회의 창업기
아무리 아까워도, 언젠가 유용하게 쓸지 모르는 물건이라도, 당장 쓸 것 아니면 눈 질끈 감고 다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대거 폐기하는 선별 이사. 버리고 남기는 판단은 나를 대신해 줄 사람이 없다. 이러면 하루 만에 우다닥 해치우는 전문 용역 업체를 부르지 못한다. 혼자 쉬엄쉬엄 하는 수밖에. 기간은 일주일로 잡았다.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셋째 날은 사람을 불렀다. 우리 회사 지입차처럼 오랫동안 발주처 물류 센터까지 납품 운반을 도맡아준 단골 용달 기사와 유럽 여행을 목전에 두고 알바를 그만두고 놀고 있는 막내 그리고 나까지 셋이서 남산동으로 짐을 날랐다. 당장 필요한 원부자재들은 내가 이틀간 분류하고 박스에 담아둬서 속도가 빨랐다. 마지막 포장 기계까지, 트럭과 카니발에 가득 실어 세 번 왕복했다. 굳이 집밥을 고집하는 기사를 배웅하고 나와 막내 둘이 늦은 점심으로 설렁탕을 먹었다. 짜장면에 탕수육을 먹었어야 했나.
사 일째. 창고와 작업실의 앵글 선반과 팔레트 위에 켜켜이 쌓인 물건들 정리를 시작했다. 옛 브랜드 로고가 박힌 골판 박스부터 진즉에 납품을 멈춘 다이소 OPP 봉투까지 묵은 것들이 계속 나왔다. 매달 파지 내가는 고물상에는 트럭이 없다. 지도 검색으로 가까운 거리의 고물상 몇 군데 전화를 돌렸다. 일정 무게나 금액이 나오지 않으면 기름값과 인건비 때문에 차를 보내기 곤란하다고 했다. 주차장에 쌓았다가 한 번에 내보낼까 하다가 운전하는 동안이라도 허리와 다리도 쉴 겸 조금씩 내차로 옮기기로 했다. 그게 며칠씩이나 걸릴 줄은 몰랐다.
삭은 박스 더미에는 십 년 전, 이십 년 전 포장 자재가 들어있었다. 어떤 박스에선 옛날 옛적 경리 서류가 나오기도 했다. 하나씩 열어보고, 이게 언제 적 물건이야 혀를 끌끌 차다가 나도 모르게 담뱃갑에 손이 갔다. 믹스 커피 한 잔 타들고 주차장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 연기를 한숨처럼 길게 내뱉고서야 '그래, 까짓 거 버리자' 혼잣말을 하며 다리를 펴고 일어섰다. 마치, 지나간 세월과 당찼던 꿈의 유품 정리 같았다.
아침 일곱 시 언저리에 작업을 시작하면 대략 네 시쯤 심신이 지치기 시작했다. 불편하다고 마스크도 끼지 않고 종일 먼지를 들이마시니 연신 콧물과 기침도 났다. 제일 마지막에 정리하려고 손도 대지 않은 공장 안 내 방에 들어가 눈 잠깐 붙이면 대여섯 시. 곧장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마음과는 달리 내 발은 동네 슈퍼로 향했고 소주 한 병을 사고 있었다.
이사는 11월 6일에 시작해서 21일에 돼서야 끝이 났다. 물론 중간에 회사일과 출장도 있었지만, 일주일은 무슨, 보름이나 걸렸다. 공장 폐업 매물이 하도 많아서 중개상도 매입을 거절했던 5톤짜리 재단기는 끝내 매수자를 찾지 못해 kg당 250원 헐값에 고물상이 가져갔고, 앵글과 목재 선반은 폐기물 처리차를 불러서 내보냈다. 22일 토요일이었던 어제 아침, 두 시간여 비질을 하고 잔정리를 마쳤다. 저녁에는 글쓰기 모임에 갔다가 밥에 반주로 소주 한 병만 마시고 일찍 빠져나왔다.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았다. 오한기가 있었는데 진원지가 몸인지 마음인지는 모르겠다. 판피린 한 병을 마시고 여덟 시 반에 침대에 누워서 아침 일곱 시 반까지, 내리 11시간을 잤다.
업체 불러서 하루 이틀 만에 끝냈다면 몸이 이렇게 피곤하지는 않았을 게다.
오래된 비닐봉지, 누렇게 변색된 마닐라 박스, 노끈도 풀지 않은 골판 박스 더미, 십수 년 전 거래명세서. 하나하나 눈 맞추고 담배 한 대를 향 피우듯 피우고서야 떠나보냈다.
그리고 이 글을 남긴다.
내 한 시절과의 천천한 작별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