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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은 Oct 14. 2016

좋아하는 일 혹은 잘하는 일

망한 카페에서

오늘 우연히, 그것도 버스에서 망한 카페의 단골손님을 마주했다.

"어머 어떻게 지내요? 근데 얼굴이 더 좋아, 광이 나네. 역시 맘이 편한 게 최고야."

"그러게요. 사람들이 망하였는지 모르고 프리미엄 받고 판 줄 알아요."


이름하여 인생 프리미엄.


그렇다. 나는 대한민국 많은 직장인들의 워너비 카페 주인이었다.

얼떨결에 시작한 카페는 장장 14개월 하고도 15일 만에 매각되었고, 지금은 새로운 주인을 만나 새로운 이름으로 영업 중이다. 6개월이 지난 지금도 나는 카페를 마주하기 고통스럽고,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 짧은 길을 두고 먼 길로 돌아다닌다. 은유법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그 카페는 나의 집과 1분 거리이고 난 밖으로 나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보거나 지나야 만 하는데, 그 상황을 피하기 위해 무던히 애쓰고 있다.

그만큼 자신의 실패를 마주하는 일은 상당히 곤혹스럽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첫째, 당시 내 주변에는 의욕에 차거나 정말 잘 나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난 무엇인가 좀 더 열심히 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둘째, 당시 나는 상당히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고, 그 아이디어를 실험해 볼 장소를 원했다.

셋째, 곧 사십을 앞두고, 고정 수입을 좀 더 늘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넷째, 그때 동네 단골 카페가 새 주인을 기다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섯째, 나는 사무실을 새로 마련하는 것보다 카페를 인수하는 것이 훨씬 이익일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러한 결정은 고민 시작 후 5일 만에 계약까지 마무리되었다.

첫째, 이 계약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고, 아는 사람들(심지어 나도 포함되는)도 카페 비즈니스와 무관하니, 내가 전 카페 주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모두 그대로 혹은 조금은 양보하고 믿었다(심지어 권리금은 단 한 푼도 깍지 않았고, 월세는 계약 당일 10만 원이 인상되었지만, 난 그냥 도장을 찍었다).

둘째, 계약 전 그 카페를 와본 유일한 친구는 전 주인이 말하는 수익이 나오려면 계산이 맞지 않다며 정 하고 싶으면 다른 곳을 찾아봐주겠다고 했다. 10분 정도 그곳을 둘러본 그 친구의 충고는 100% 맞았다(난 지금은 그를 존경한다). 하지만 이미 난 결정했으니, 그때 그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셋째, 결론적으로 난 약간 사기를 당했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아직 살만해서다.


그리하여 나는 카페를 경영하게 되었다. 아니 떠안게 되었다.

그리고 14개월 15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일했지만(심지어 나는 또 다른 직업이 있지않는가?), 가장 생산성이 없는 시간으로 기억된다.


카페의 시작은 전혀 몰랐지만, 정리했다는 소식은 아주 빨리 듣게 된 아빠께서 딱 한마디 하셨다.

"다음부터는 이런 실수하지 마라."


이것은 실패도 아니고 실수인가?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실패는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거나 뜻하는 대로 되지 않고 그르침'을 뜻하고, 실수는 '부주의로 잘못을 저지름'이라고 한다. 이것이 실패가 아니고 실수라면 이것은 그 시작이 잘못되었음을 이야기한다.


나는 이번 경험으로 세상의 난제 하나를 해결했다.

좋아하는 일을 할 것인가? 아니면 잘하는 일을 할 것인가?


이 카페를 시작하면서 다양한 생각을 했는데, 이 엄청난 일을 겁 없이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는 장사를 하면 아주 잘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하는 것을 하면 당연히 성공은 따라온다고 생각했다.

거기서 실수가 시작된 것이다.


좋아하는 일과 잘 하는 일의 논란은

그 전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고(대체로 좋아하는 일은 뜬 구름인 경우가 많으니까),

잘하는 일은 성공할 확률이 높다(대체로 안정적이고 현실적인 직업인 경우가 많으니까)에 두고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나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거꾸로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되었다.

잘하는 일을 실패하는 확률에 대한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잘하는 데 좋아하는 일이 아닌 것을 했을 때 실패를 경험하게 되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는가를 몸소 느껴보았다.

이 경우는 정말... Hell이다.

하루하루가 지옥이고, 그 일이 마무리되고 난 뒤에도 실패가 아닌 실수에 대한 한탄이 이어진다.

온몸은 녹초가 되고, 정신은 스트레스로 혼미하고, 마음은 쓰라리다. 경제적인 타격은 말할 것도 없다.


실패를 하면 교훈이 있는데, 실수를 하면 다시는 안 해야지라고 하는 다짐이 이어질 뿐이다.


망한 카페는 나에게 이 표 하나를 남겼다...


준비 과정에서의 시장분석, 마케팅, 직원관리와 재투자 등등 모든 것이 미숙하다 못해 엉망진창이었던 것은 인정하는 바이고, 이런 바보같은 이야기를 털어놓은 이유는 그 선택에 영향을 주는 가치판단에 대한 깨달음을 공유하고자 함이다. 만약 다른 준비가 완벽했다고 해도 내가 단지 이 일을 잘해서 나에게 부를 가져다 줄 것이다라는 전제를 두고 일을 시작했다면, 그 끝은 성공은 했지만 행복은 없을 것이다.


경험에 비추어 보건데,

못 해내든 잘 해내든 좋아하는 일을 하는 행운을 얻는 것 혹은 선택하는 것은 참 다행이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도대체 내가 좋아하는 일이 심지어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우리는 잘 모른다는 것이다. 이 또 다른 난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다양한 도전을 통한 경험 밖에는 없다. 내가 카페를 해보지 않았다면 나는 결코 내가 이 일의 어떤 부분을 정말 싫어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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