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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은 Mar 07. 2020

여행 가방

사이즈에 관한 고찰

처음 긴 여행을 시작했을 때, 나의 가방은 아주 작았다. 배낭여행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배낭을 준비했고, 내가 짊어지고 다닐 수 있을 만큼의 짐을 쌌다. 75일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다행히 여름과 가을을 관통하는 기간이라, 얇은 옷 몇 가지가 짐의 무게를 줄여주었다. 10kg 남짓의 짐에 의지한 여행은 다양한 만남과 좋은 추억을 나에게 주었다. 가방의 여건이 쇼핑을 불가능하게 했기 때문에, 최대한 순간을 즐기고 경험에 투자하게 했던 것 같다.

이후의 여행에서도 나의 가방 사이즈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지금은 배낭을 메고 여행하지 않지만, 보통 기내 사이즈 캐리어 하나면 충분하다. 그렇다고 여행지에서 나의 모습이 다채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패킹을 아주 잘하고, 또 다용도 아이템을 사용해서 짐을 줄이는 것이다. 작은 가방이라서 불편했던 적은 없었다.

짧은 여행이 늘어나면서, 이동이 줄어들고 쇼핑에 욕심이 생기니 가방 사이즈에 대한 불만이 살짝 생겼다. 새로운 가방이 생기고, 4박 5일의 짧은 상해 여행을 떠났다. 분명 필요한 것을 다 넣었는데, 공간이 남는다. 남는 공간을 보니 비워두기가 아깝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자꾸 생긴다. 이것저것 더 챙긴다. 돌아오는 날 보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 신발도 있다.

인생도 열심히  살았는데 공허해지는 순간이 있다. 남들처럼 해야지 하는 마음에, 큰 여행 가방을 필요 없는 것들로 채우는 것처럼, 나에게 무가치한 것들을 열심히 하고 때로는 나에게 해가 되는 사람을 만나고 또 상처받고 그런건 아닌지.  

나에게 맞는 여행가방 사이즈처럼, 인생도 남들과 비교하지말고 나의 사이즈에서 행복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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