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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은 Oct 03. 2016

스페인 토마토 축제

노력 없는 즐거움은 없다

2003년, 유럽은 유례없던 폭염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뜨거웠던 여름, 나에게 가장 핫했던 하루는 8월의 마지막 수요일이었다. 바로 스페인 발렌시아 지방의 작은 마을 부뇰에서 토마토 축제가 열렸던 날이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그 날에 맞춰 일정을 조정할 정도로 꼭 가보고 싶은 축제였다.
축제가 시작될 때쯤 발렌시아 지방은 축제에 참여하기 위한 젊은이들로 북적이고, 숙소를 구하지 못한 일부 여행객들은 역 주변에서 노숙을 하며 축제를 기다리는 장관을 연출한다. 아침 일찍 근교의 숙소를 나서 토마토 축제가 열리는 부뇰로 가는 길은 지도가 필요 없다. 끝없는 사람들의 행렬을 따라 가다보니 어느덧 축제의 장에 도착한다.

발 디딜 틈도 없는 광장, 모두가 이날만을 기다린 듯 투지들이 대단하다. 물안경, 수영복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토마토 트럭은 오지 않고, 앞쪽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 방송이 나온다. 그리고 보니 아까부터 사람들이 나무 위를 오르려고 애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시도하지만, 계속해서 미끄러진다. 나무 위에 매달린 뭔가를 따려고 하지만, 쉽지가 않다.

토마토축제 @ 부뇰/스페인, 2003


혼자 힘으로는 부족해 인간 사다리도 만들어 보지만 여의치 않다. 뜨거운 햇빛 아래 몸은 지쳐가지만, 분위기는 점점 더 고조되고, 한순간에 누군가가 모두가 바라던 그것을 낚아채자, 여기저기서 함성이 들려오고, 저 멀리서 토마토를 가득 싫은 트럭들의 행렬이 입장한다. 이제 토마토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곧이어 트럭에서 엄청난 양의 토마토들이 쏟아져 나온다. 딱딱한 토마토가 아니라 잘 뭉개서 물러진 토마토들이다. 생각해보니 딱딱한 토마토면 부상자 여럿 나올 듯하다. 사실 토마토를 맞아서는 아프지 않은데, 전쟁이 시작되고 신이 난 사람들이 옷을 벗어던지고, 그 옷에 물기가 적셔져 날아오면 딱 죽지 않을 정도로 아프다. 세상의 모든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기세로 토마토를 던지고, 고함을 지르고 웃다 보면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샤워 하러 가는 길 모두 서로의 모습을 보며 또 웃고, 사진 찍고, 남아있는 토마토즙에 허우적거리고... 마을 주민들은 창문으로 물을 뿌려 간단히 샤워도 시켜주고, 샤라락 청소를 시작한다.
 

토마토축제 @ 부뇰/스페인, 2003


간이 샤워장이 마련된 곳에서 샤워하고, 간단히 요기를 하고 돌아오는 길,
벌써 깨끗해진 마을. 역시 50년의 노하우
그리고, 혈투 끝에 옷, 신발들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해 입을 수 있는 헌 옷들을 문 앞에 내어두는 친절함까지...
이렇게 짧지만 강렬한 나의 핫한 2003년의 여름날이 지나갔다.
 
 
10년이 흘러 한 다큐를 통해 안 것이지만, 토마토 축제는 기름을 바른 기둥 맨꼭대기에 하몽을 매달아놓고, 누군가 기어올라가 그 하몽을 따야지 축제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토마토 축제를 생각하면 토마토를 서로에게 던지는 귀여운 전쟁만 생각하지만, 그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반드시 한 여름 땡볕 아래 기름 바른 기둥을 맨손으로 타고 올라 하몽을 따내야지만 한다는 것이다. 노력 없는 즐거움은 없는 것이다.
 
 
셰프가 꿈이 친구가 있다. 하얀 주방장 가운을 입고, 모자를 쓰고, 멋지게 요리하는 모습을 상상했으리라. 그리고 종종 홀로 불려 나가 자신의 요리에 찬사를 보내는 고객을 응대하는 자신을... 그런데 현실은 하루 종일 주방에서 양파를 까고, 설거지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배우고 익혀서 주방장이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껏 양파나 깔려고 내가 이곳에 있나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꿈을 포기한다. 기업의 신입사원들도 마찬가지다. 넥타이를 매고, 미팅 룸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예리한 질문을 던지는 자신을 상상하지만, 현실은 복사와의 전쟁이다. 그런데 그런 시간이 있어야 별을 따는 순간이 온다.




Trip Outsight

인사이트를 얻기 위한 여행을 보통 "인사이트 트립"이라고 칭하는데, 인사이트를 목적으로 여행을 한것이 아니라 여행 후 느낀 것이라 적당한 말을 찾다보니, 인시아드의 허미니아 아이바라 교수의 "아웃사이트 : 밖으로부터의 통찰력"을 차용하여,  "트립 아웃사이트 : 여행을 통해 얻게 되는 통찰력"으로 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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