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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만소리 Oct 17. 2020

그 어디에도 완벽한 장소는 없다.

가득 채운 모든 것을 비워내고 싶은 기분

오늘의 기분

가득 채운 모든 것을 비워내고 싶은 기분


 추석 연휴부터 쉬지 않고 일한 탓에 화면만 겨우 켜진 휴대폰처럼 방전 상태다. 급속 충전이 간절하다. 밀린 업무들을 일찌감치 끝내놓고 강화도로 향했다. 도로 위 빡빡하게 세워진 차들은 저마다 일의 무게를 싣고 도심 속으로 빠졌고, 우리는 월요일의 한산함을 누리며 대교 위로 올라탔다. 오랜만에 누리는 휴일이기에 그 어떤 누구보다 완벽하게 보내고 싶었다. 지친 마음을 보상받고 싶었다. 뚜렷한 목적지 없이 그저 홍수의 불안을 마음 속에 담고 계속해서 도로 위를 달렸다.


 도착한 강화도에는 예쁜 카페가 즐비한 해수욕장도 있었고, 파도 소리가 차분하게 들리는 선착장도 있었다. 잘 익은 벼들이 춤을 추며 일렁이는 황금빛 물결을 만들어냈다. 멋진 명소가 분명했지만, ‘여기보다 더 완벽한곳’을 외치며 멈추고 떠나기를 반복했다. 일박도 아닌 당일치기 계획에 남은 시간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정처 없이 도로 위에서 부유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완벽한 장소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내 마음 용량 문제가 아닐까. 이미 근심과 걱정이 머리 끝까지 채워진 나는 배터리만 없는 게 아니라, 그 어떤 것도 받아드릴 여유 조차 없던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채움이 아니라 비움이었다.
     

 

 단박에 어딘지도 모를 길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해변도 멋진 카페도 없는 텅 빈 주차장이었다. 섬 바람 풍파를 겪어낸 모진 컨테이너 박스와 스쳐가는 자동차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완벽과 거리가 먼 그 곳에서 트렁크를 열고 차크닉을 시작했다. 따뜻한 오후 햇살을 받으며 낮잠을 잠깐 자기도 하고, 눈을 감고 거친 섬 바람을 느끼기도 했다. 우쿠렐레를 꺼내서 조율도 하고 조용히 음악을 듣기도 했다. 우리가 찾던 완벽한 장소는 아니었지만 썰물처럼 비워진 내 마음에 조금씩 풍경이 차오르고 있었다. 강화도의 하늘이 작렬하는 노을을 꺼내주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 행복해.” 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오늘. 망했다고 생각했던 휴일의 순간. 욕심의 무게를 비워내자 비로소 차올랐다.


 완벽한 장소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불행을 만드는 장소는 내 마음이 아니었을까. 지는 태양을 뒤로한 채 우리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대교 위로 향했다. 창문 너머로 바라본 강화도 갯벌엔 빠졌던 밀물이 찬찬히 몰려들고 있었다. 




키만소리 (김한솔이)

2년간 남편과 세계 여행을 하다가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곳 출판 스튜디오 <쓰는 하루>를 만들었다.

여행자에서 이제는 작가와 글방 에디터, 출판사 대표를 맡고 있다.

제3회 브런치 출간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를 출간했다.

세계 여행하면서 받은 엄마의 메일을 엮어 「55년생 우리 엄마 현자씨」를 출간했다.

다수의 작품을 그리고 쓰며 활발히 연재 중이다.

인스타그램 @ki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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