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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만소리 Jul 07. 2021

[책방일기]비싼값을 치른 계절의 맛

그러게 책방은 왜 차려서는

[책방일기] 그러게 책방은 왜 차려서는
오늘의 일기: 비싼 값을 치른 계절의 맛 


책방을 꿈꾸는 사람들은 말한다. 치열하게 살아가던 삶을 잠시 내려놓고 나만의 취향이 가득한 책방을 꾸리며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고 싶다고. 해 좋은 날 문을 활짝 열고 청소를 하고, 비 오는 날에는 은은한 커피 한 잔을 음미하며 시집을 읽고,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덮인 날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으며 단골손님과 다정한 시간을 나눌 거라고. 책방의 하루는 정말 그랬다.

영화 '노팅힐'의 휴 그랜트처럼 책에 둘러싸여 소소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줄리아 로버츠는 아니지만 반갑게 이름을 부르며 서로를 기억하는 고마운 이들이 곁에 머물렀다. 특히 사계절 날씨를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1층 유리 전면 덕분에 우리 책방의 음악 선곡은 날씨를 유독 탔다. 덕분에 봄 벚꽃, 뜨거운 여름, 쓸쓸한 가을, 겨울의 캐럴이 풍경과 맞물렸다. 


사방이 하얀 벽으로 막혀있는 백화점에서 일하는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계절과 낮과 밤을 알 수 없는 곳에서 일한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야”이라고.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계절의 변주를 고스란히 목격할 수 있는 우리 책방이 더 좋았다. 책방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차림과 표정이 우리의 생생한 일력이라는 사실이 기뻤다.


빛이 잘 들어오는 출판스튜디오 <쓰는하루>


 계절은 무료였지만 책방에서 바라보는 풍경엔 비싼 값을 치러야 했다. 주택가와 역세권 사이 주차장 거리에 애매하게 위치한 출판스튜디오 <쓰는하루>. 하지만 월세는 애매하지 않았다. 오며 가며 지나가는 사람들은 많으나 대게 출근을 위해 지하철 역을 가거나 퇴근 후 집으로 가는 목적성이 뚜렷해 실제 소비 고객은 적은 구간. 그러나 건물주에게는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만 보일 뿐이었다.

단점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거의 하루 만에 계약을 했다. 1층 통유리 건물에 뒷마당까지 있는 매물은 정말 귀했으니까. 지금 고백하자면, 그때 우리 부부는 한국으로 귀국한 지 두어 달 됐을까. 약간 한국 시세에 적응을 못할 때였다. 게다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로스터리 카페로 꽤 흥했던 기억이 있었기에 이 정도 금액도 못 벌면 장사 접어야지!라는 자신감으로 차있었다. 흡사 군대 전역을 앞두고 뭐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었달까.

시간이 흐르고 비슷한 시기에 책방을 개업한 사장님과 대화를 하면서 깨달았다. 우리 책방의 월세가 말도 안 되는 가격이라는 것을. 책 한 권 팔면 얼마가 떨어지는지 아무것도 몰랐던 초짜의 실수였다. 위치, 평수, 번화가 조건 등 다양한 이유로 월세 차이는 날 수밖에 없었지만, 책방의 평균 월세보다 훨씬 웃도는 세가 맞았다. 그래도 공간이 크니까 다양한 걸 해보면서 채워나가면 될 거야. 그런 다짐도 장기화된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막을 내렸다.




ⓒ출판스튜디오 <쓰는하루> 

 

 매달 계절의 값을 치르는 15일이 되면 우리 부부는 조금 슬퍼진다. 허탈한 미소, 짠내 나는 통장.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여전히 제자리라는 현실. 송금 버튼을 누르고 갓 내린 아메리카노와 달콤한 디저트를 하나씩 들고 계절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자리에 앉는다. 요즘 책방 밖의 날씨는 요란스러운 소나기와 후끈한 여름 열기가 오간다. 아이스 컵에 가득 찬 얼음이 녹는 시간 동안 그 누구보다 부지런히 책방을 즐기는 손님이 되어본다. 땀 흘리며 걷는 또는 우산 속에 숨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여름의 변죽을 지켜보며 서로의 마음에 격려를 보낸다. 이 공간을 오랫동안 지키기 위한 힘을 가장 값비싼 자리에 앉아 길러본다.

자, 커피도 다 마셨으니 다시 일하러 가볼까.

- 이번 달도 열심히 살아내는 김한솔이 작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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