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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등린이 14화

등린이가 드디어 산악회 산악대장이 되다

기분 좋게 또 오고 싶어지는

by 꽃돼지 후니

처음 산에 올랐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새 등산화가 발에 잘 맞지 않아 물집이 생겼고, 숨은 턱까지 차올랐지만, 능선 위에서 맞이한 바람은 모든 고생을 잊게 해주었다. 그때부터였다. ‘산’이라는 존재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나에게 위로와 영감을 주는 공간이라는 것을 깨달은 건.


그리고 이제, 그 등린이였던 내가 ‘산악회 산악대장’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스스로도 놀랍고, 책임감에 어깨가 무겁다. 그저 혼자 걷는 게 좋았고, 가끔 누군가와 함께 걸으며 나누는 대화가 좋아서 산에 올랐던 나였다. 그런 내가 이제는 누군가의 산행을 설계하고, 인솔하며, 책임지는 사람이 되었다.


초보에서 리더로, 변화의 시작

산을 오르며 많은 걸 배웠다. 준비물의 중요성, 기상 변화의 두려움, 체력 조절의 요령, 그리고 함께 걷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 그 모든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특히 산악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한 시간들은, ‘혼자’가 아닌 ‘함께’의 가치를 알려주었다.


산악대장이 되고 나니, 산행이 달라 보인다. 단순히 어느 산을 갈지가 아니라, 그 산이 지금 시기에 적절한지, 회원들의 체력은 어떤지, 날씨는 어떤 변수가 있을지, 버스 이동은 무리는 없는지 등 수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길을 고르는 것'이 아닌 '경험을 설계하는 일'이 바로 산악대장의 역할이라는 걸 실감한다.


힐링과 연결, 그리고 책임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산행은 ‘기분 좋게 또 오고 싶어지는’ 산행이다. 정상에 올랐다는 성취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내려올 때의 표정이다. 환하게 웃으며 “다음에도 또 오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회원을 볼 때마다, 나는 다시 한번 산행을 준비하는 마음을 다잡는다.


산악대장은 단순한 안내자가 아니다. 사람을 알고, 자연을 알고, 경험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누군가에겐 힐링이 되고, 누군가에겐 용기가 되며, 누군가에겐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순간을 함께 만드는 사람이다. 그만큼 준비가 필요하고, 책임도 크지만,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초록발의 다짐

이제부터 나의 산행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여정이다. 회원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기억하고, 모두가 안전하게 산행을 마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산에서 좋은 기운을 나눌 수 있도록 기획하는 것. 그것이 내가 맡은 역할이다.


아직 부족한 점도 많다. 더 배워야 하고, 더 살펴야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즐겁다. 왜냐하면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다시 등산을 시작한다면, 또 이 길을 선택할 거라는 걸.

등린이였던 초록발이 이제 산악회 산악대장이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누군가의 산행이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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