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향기를 찾아서
바쁜 현대인들에게 과연 자신만의 향기가 있을까...
서울의 겨울 새벽, 쌍문역 근처 한 아파트에서 알람이 울린다. 한태윤 이사는 습관처럼 알람을 끄고 일어난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 8시 첫 미팅을 위해 서둘러야 한다.
"오늘은 본사 미팅외 고객사 미팅까지 두 건, 오후에는 신규 프로젝트 검토회의... 저녁에는 고객사와 식사..."
매일 반복되는 일정을 확인하며 한이사는 깊은 한숨을 내쉰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의 일상은 미팅과 회의, 그리고 끝없는 저녁 약속들로 채워져 있었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오는 생활이 그의 일상이었다.
지하철과 버스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직장인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피곤에 지친 얼굴들, 노트북을 펼쳐 놓고 야근 준비를 하는 사람들... 그들 모두 자신만의 향기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나마 주말 새벽의 조기축구는 그에게 작은 위안이 되어주었다. 축구장의 푸른 잔디 위에서 동호회 사람들과 함께 뛰며 흘리는 땀방울은 한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가끔은 경기 후 들르는 순대국밥집에서 나누는 이야기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솔직한 대화였을지도 모른다.
"아빠, 이번 주말에는 집에 있는 거예요?"
중학생이 된 딸의 물음에 한이사는 잠시 머뭇거렸다. 주말마다 새벽축구를 핑계로 가족과의 시간을 미뤄왔던 게 떠올랐다. 그래도 생일이나 기념일에는 꼭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려 노력했다. 롯데월드에서 찍은 사진, 북촌한옥마을 나들이, 남산타워에서의 저녁... 그런 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과연 어떤 향기를 가지고 있을까..."
회식자리에서 던진 동료의 질문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동안 자신은 향기 없는 삶을 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매주 토요일 새벽, 축구장의 이슬을 맞으며 느끼는 상쾌함. 미팅 사이 잠깐 마시는 아메리카노의 향. 딸의 방과후 발표회에서 느끼는 뿌듯함. 아내와 주말 저녁 마트를 장보며 나누는 소소한 대화...
최근 본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그의 마음을 크게 흔들어놓았다. 도쿄의 공중화장실 청소부가 일상의 작은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모습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자신만의 향기를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평범한 일상도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 바쁜 삶 속에서도 자신만의 향기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날 퇴근길 버스에서 우연히 들린 노래가 그의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줄 알았어요...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그래, 어쩌면 자신의 향기는 이미 여기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매일 아침 깨어나 최선을 다하는 것, 동료들과 진심으로 소통하려 노력하는 것, 가족들과의 소소한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것. 그것이 바로 자신만의 향기였다.
앞으로의 10년을 생각하며 한이사는 미소 지었다. 더 큰 성공이나 화려한 타이틀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을 더 깊이 느끼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향기로운 삶이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서울의 밤거리를 걸으며 한이사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내일도 여전히 바쁜 하루가 그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이제는 그 속에서도 자신만의 향기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강남역 인파 속에서, 회의실 안에서, 축구장의 잔디 위에서,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저녁 식탁에서...
그의 향기는 이미 거기 있었다. 단지 그동안 그것을 향기라 생각하지 못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