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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근 Sep 06. 2024

지방대 교수의 하루(6)

토요일

오늘은 아내와 데이트 하러 서울에 간다. 천안아산 역에 주차하고 서울에 다녀온다. 집에서 역까지 오는데 택시비가 7천원쯤 드는데, 주차비가 만원이니 왕복한다고 하면 오히려 싸다. 친환경 할인 3천원을 받으면 택시비의 반값 정도에 올 수 있다.      

오전에는 독서모임이 있었다. 열 시부터 열두 시까지 홍대에서 독서모임이 있다. 이 독서모임은 벌써 5년 간이나 지속된 모임이다. 특별한 규칙은 없다.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나서 모임에 나온 뒤 자기가 읽은 책을 소개한다. 보통 한 명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15분 내외다. 그 시간 안에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하고 질문도 받아야 한다. 이 모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자영업자도 있고, 회사원도 있고, 보드게임사에 다니는 친구, 플로리스트, 아프리칸 댄서 등 다양한 사람들이 본인의 관심 주제에 대한 책을 읽고 온다. 서로 관심사도 다르고 정치적 지향이 다르니 자연스레 읽는 책도 다르다. ‘저런 책은 저렇게 읽는 것이구나.’하며 알게 되는 내용도 많다. 모임에서 알게 된 작가들도 많다. 소개해준 김초엽, 정세랑 작가의 책 모두 재밌게 읽었다. 이 모임의 또 다른 재밌는 점은 책을 안 읽고 와도 된다는 것이다. 이 모임의 호스트는 내 중학교 같은 반 친구인데, 본인이 호스트이면서 가장 책을 안 읽고 오는 웃긴 친구다. 하지만 이런 널널한 호스트가 있어야 게스트들도 부담없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유쾌하게 커피 마시며 떠들다가 두 시간이 흘렀다.     

오늘은 아내와 뮤지컬을 보러 가기로 한 날이다. 블루스퀘어에서 하는 <레베카>를 보러왔다. 너무 일찍 도착한 관계로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사진도 찍고 여기저기 둘러본다. 저녁 일곱시 공연인데 오후 한 시에 도착했으니 아무도 없는게 당연하다. 데이트 하던 때 기억을 살려 인근 식당으로 향한다.      

사실 거짓말이다.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이 아내가 스물 두 살이던 2012년 가을이었다. 나는 당시 스물 여섯 살의 대학원생이었는데, 그 신분에 걸맞게 돈이 하나도 없었다. 주로 학교 앞 식당 같은데 가거나, 학교 식당을 간 일도 많았다. 커피숍 갈 돈이 없어서 보온병에 카누를 타서 낙산 공원에 올라가서 마시기도 했다. 나는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내는 찌질해 보였다고 한다. 나중에 알았다. 결혼 후에도 나는 구두쇠처럼 돈을 안 쓰고 모았다. 그러다 아내가 아픈 뒤로 ‘돈이 많아도 아프면 다 무슨 소용이야’ 하면서 조금씩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늘처럼 인당 2만원 이상 하는 식사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용감한 사내가 된 것이다. 예쁘게 차려진 밥을 먹고, 와인에이드도 한 잔 마시고 맛있게 식사를 했다. 돈의 효용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인근 카페에 들러 차를 마시고 아내와 대화를 나누고, 인근의 옷가게 구경도 한다. 아내가 취업하면 사주겠다고 호언장담한 꼼데가르송 매장이 보인다. 티 한 장에 30만원이라니, 이걸 도대체 왜 사는가. 동묘에 가면 똑같은 티 만 삼천원에 살 수 있는데 라고 생각했다. 아내는 어이없어 했다.      

일곱시가 되어 뮤지컬을 보러간다. 오늘의 주인공은 옥주현이다. 레베카 옥주현이 그렇게 압도적이라는데 궁금했다. 극이 시작하고 우리는 완전히 극에 몰입했다. 옥주현 배우님의 발성이나 톤이 다르게 느껴졌다. 극 중에서 느껴지는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000부인의 모습이 실제 옥주현 배우님의 성격과 같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보니 더욱 실감 났다. 유명한 넘버인 ‘신이여 난 벗어날 수 없는 건가요’ 도 너무너무 좋았다. 무엇보다 이전에 봤던 뮤지컬들 보다 가사가 선명하게 잘 들렸다. 

작년에 천안 예술의 전당에서 봤던 <지킬 앤 하이드>는 음향이 안 좋았다. 지방 공연에서는 오케스트라 대신 mr을 쓴다는 것도 그 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시간과 돈을 좀 더 들이더라도 서울에 와서 공연을 본다. 

인터미션이 되고 아내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이야길 나눴다. 아내도 여태 본 뮤지컬 중에 가장 재밌는 뮤지컬이라고 했다. 공연장 앞에선 대본집과 망원경을 팔고 있었다. 아내는 망원경을 사고 싶다고 했고, 나는 돈이 아깝다고 했다. 그러나 왠지 망원경으로 배우들 표정을 보면 또 다를 것 같아서 3만원 거금을 주고 망원경을 샀다. 정확한 명칭은 오페라 글래스인데 뭐 그거나 그거나..

조금 일찍 들어와 오페라 글래스를 개봉해서 무대를 바라봤다. 이상했다. 전혀 잘 보이지가 않는다. 오히려 더 작게 보인다. 아내에게도 보여주자 아내도 이상하다고 한다.      

“것봐, 내가 뭐랬어. 돈 버렸네.”     

분명 나도 좋다고 계산해놓고 또 아내 탓을 하고 있다. 이리 저리 둘러보면서 “에이 안 되네.”만 연발하고 있었는데 옆에 앉아계시던 여자 분이 조용히 아내에게 귓속말을 해주셨다.     

“거꾸로 보고 계신 거에요. 뒤집어서 보세요.”     

응? 뒤집어서 보니 진짜 무대가 확 크게 보였다. 이럴수가.. 분명 어릴 때 썼던 망원경은 작은 쪽 구멍에 눈을 대고 봐야 사물이 크게 보였는데 오페라 글래스는 그 반대였다. 어떤 기술일까 너무 궁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쪽팔리고 부끄럽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여자분은 내가 교수인지 모를테지 하면서 안도가 되었다. 

레베카의 정체가 밝혀지고 아내와 나는 충격에 빠졌다. 끝나고 나서 아내와 레베카에 대해 이야기하며 집으로 가는 ktx를 탔다. 자리가 없어서 서로 다른 자리에 앉아서 내려왔다. 하루 종일 돌아다녔더니 25,000보나 걸었다. 씻고 누우니 웹툰 볼 힘도 없이 그냥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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