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을기억해 Sep 21. 2022

하루키처럼 씁니다


화들짝, 하고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은 그런 문장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쩜 이렇게 내 마음을 잘 알았지?'라는 생각이 든다. '이 사람은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갔나?' 아닌 줄 알면서도 떠올리게 되는 진부한 상상. 사실 그런 문장을 만나게 되었을 때는 생각이고 자시고 할 겨를이 없다. 불현듯 눈길이 가고, 눈으로 문장을 훑는 그 찰나의 순간에 심장에 콕 박히듯 내 안으로 그 문장이 스며들고 마는 것이다.


최근 만난 "하루키처럼 씁니다"라는 문장이 바로 그랬다. 이 문장은 글 쓰는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의 이름이었다. 하루키가 누군가. 철저한 자기 관리와 꾸준함으로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공고히 다져온  것으로 널리 알려진 그 무라카미 하루키 아닌가? 글 쓰는 것에 진심인, 아니 진심이고 싶은 나에게 '하루키처럼'이라는 말은 롤 모델인 하루키처럼 되고 싶은 나의 욕망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그 모임의 소개글에는 내 인생의 책으로 손꼽는 책 중 하나인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책 표지가 함께 걸려있었다. 하루키는 이 책에서 달리기를 빗대어 꾸준함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글쓰기도 그렇다. 꾸준히 글을 써야 할 이유보다는 꾸준히 글을 쓰기 어렵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들이 더 많다. 그럼에도 그 소중한 이유들을 상기하며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이 하루키라는 점에서 '하루키처럼 씁니다'라는 말은 어떤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꾸준하게 쓰는 일을 소중히 여기겠다는 굳은 다짐의 표현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모임의 문을 두드렸고, 모임의 구성원이 되었으며, 이를 계기 삼아 글쓰기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글 쓰는 일을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해보면서 말이다.


그렇게 느슨해졌던 마음을 고쳐먹음과 동시에 제일 처음 한 일은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것이었다. 6주 가까이 미루고 미루어두었던 뉴스레터의 첫걸음. 발행한 첫 뉴스레터가 영 마음에 차지는 않았지만 시작하고 보니 속이 다 시원하다. 뉴스레터를 운영해보자고 마음먹은 건 적어도 일주일에 한 개 정도는 내 생각이나 감정이 담긴 글을 완결해보자는 취지였다. 언젠가 '하루키처럼' 매일 글을 쓰는 것이 목표지만, 내 마음에 차는 글을 빚어내기 위해서는 일주일에 하나도 결코 쉬운 목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일주일에 글 하나. 꾸준한 마감을 동력 삼아 글 쓰는 일에 조금씩이라도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훗날, 언젠가는 저 문장을 확신에 찬 어조로 담담히 말할 수 있을 날이 왔으면 좋겠다. "하루키처럼 씁니다"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기억, 그리고 기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