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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을기억해 Oct 05. 2022

72시간의 첫 경험

살아온 세월이 어느 정도 있다 보니 이제는 이른바 첫 경험이라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점점 줄어가는 추세지만, 그래도 이것만큼은 내 삶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첫 경험이었음을 고백한다. 더욱이 72시간을 채워야만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은 흔치 않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72시간 단식을 안전하게 성공했다.


발단은 <타이탄의 도구들>이라는 책으로부터였다. 바로 '간헐적 단식' 또는 '케톤 식이요법'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영향력에 대한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간헐적 단식은 일정 시간 이상 공복 시간을 초래했을 때 케톤 식이요법과 같이 케토시스 상태에 몸이 돌입하도록 만드는데, 케토시스 상태란 케톤을 에너지로 쓰는 상태를 말한다. 탄수화물이 아니라 케톤을 에너지로 쓸 때 지구력이 향상되는 운동선수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당뇨병과 같은 성인병에 가까워지는 걸 막을 수 있는 점, 항산화 효과 및 암세포 기전을 예방하는 효과 등이 놀랍고 신기하게 느껴졌다. 얼핏 보기에 민간요법(?) 정도로 취급할 수도 있는 이 내용이 내게 신뢰를 가져다준 것은 권위자의 유명세와 효과를 증명하는 여러 가지 실험들이었다.


첫째로 인간기계인지연구소(IHMC)의 수석 연구 과학자 도미니크 다고스티노 박사가 이러한 식단을 삶 속에서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그는 무려 미국 해군연구소와 미국 국방부의 후원을 받으며 케톤을 통한 신진대사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과학자다. <타이탄의 도구들>의 저자인 팀 페리스 역시 이 사람을 인터뷰하면서 그 영향으로 케톤 식이요법을 습관화하고 있었다.


둘째로는 탄수화물을 에너지로 쓰는 상태보다 케톤을 에너지로 쓰고 있는 상태가 우리 몸에 가져다주는 이득을 증명해낸 여러 실험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제일 흥미로웠던 부분은 자가포식(autophagy)에 의한 자정효과라는 부분이었는데, 이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부분이어서 더욱 인상 깊었다. 자가포식 작용은 세포가 자신의 내부에서 불필요한 요소들을 분해/제거 재활용함으로써 세포 단위에서의 신체 건강을 촉진하는 과정으로, 책 <자가포식>에서는 110세까지 무병장수한 이들의 공통분모를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자가포식 작용이 우리 몸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케톤 식이요법은 우리나라에서도 한 때 열풍이 불었던 '저탄고지' 식단의 다른 이름이고, 어설프게 따라 했을 때 부작용도 큰 방법이다. 결정적으로 직장인의 삶을 사는 이상 식당의 밥을 피할 수 없는 내가 이를 실천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결국 간헐적 단식을 선택하기로 했다. 팀 페리스가 주장한 방법으로 72시간의 단식을 진행한 것이다.


72시간을 마지노선으로 정한 까닭은 이러했다. 많은 자료들을 찾아보았을 때, 전문가의 도움 없이 72시간 이상 단식을 진행하는 것은 몸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첫 번째. 그리고 공복 시간이 얼마나 지났느냐에 따라 몸에서 이루어지는 기전들이 다르다는 것이 두 번째였다. 우리의 몸이 케토시스 상태에 진입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공복이 시작된 지 12-18시간 정도 이후의 일이다. 케톤으로 변환되는 에너지인 지방의 감소가 활발히 시작되는 것은 18시간 이후이며, 24시간 이후부터 48시간까지는 자가포식 작용이 이루어지게 된다. 56시간부터 72시간 사이는 인슐린 민감도가 매우 높아지고 인슐린 수치는 가장 낮아진 상태로 전환되며 당뇨병으로부터 멀어지는 기전이 일어난다.


마지막으로 72시간 동안 내가 제대로 케토시스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위험한 건강 상태에 돌입하지 않는다는 것을 검증할 방법이 필요했다. 관련 내용을 찾아보니 놀랍게도 혈당 체크를 하는 기기처럼 우리 혈액 속에 케톤이 얼마나 포함되어있는지를 검사할 수 있는 기기가 존재했다. 이 기기를 주문해 내가 원하는 케톤 수치에 도달했는지를 확인해가면서 72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혈중 케톤 수치가 너무 많이 올라가도 위험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적정량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공복 24시간이 경과한 이후로는 물과 소금, BCAA를 섭취하면서 우리 몸에 필요한 필수요소들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팀 페리스가 얘기한 스케줄대로 목요일 저녁부터 시작해서 일요일 저녁까지 계획을 잡고 실천에 옮겼다.


지난해 12월에 첫 시도를 했다. 당시에 내가 측정했던 케톤 혈중 농도는 1.8밀리몰이었다. 일반적으로 1~3밀리몰 사이를 권장한다고 한다.


72시간을 공복으로 보내며 제일 신기했던 점은 안 먹는다고 몸에 힘이 없지는 않더라는 것이었다. 특별히 어지럽거나 힘이 부족하거나 일상생활을 할 수 없다고 느껴지는 요소가 전혀 없었다. 실천에 옮겨보기 전에는 '사람이 굶고 살 수가 있나?'라는 생각이 가득했었는데 3일간의 공복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내가 먼저 말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내가 3일째 공복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일상생활이 가능했다.


한 끼나 두 끼를 굶을 때는 다시 먹고 싶은 생각도 많이 들었는데 48시간이 경과한 시점에는 이렇다 할 식욕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먹지 않는 상태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건 꽤나 이상한 일이었다. 살면서 이토록 식사를 멀리해본 일이 있었던가?..


그렇게 72시간이 지나고 첫 식사로 죽을 선택한 것은 단식 이후에 갑작스럽게 기름진 음식이 들어가면 위험할 수 있다는 충고를 따른 것이다. 많은 이들이 단식 후 권장하는 메뉴인 죽, 그것도 보양식으로 적절한 전복죽을 택했다. 그날 먹은 전복죽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식욕을 촉진하는 것이 소금기의 짠맛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도 바로 이 때다. 식사가 나와는 상관없는 속세(?)의 일처럼 느껴지다가 입 속에 들어간 짠맛 하나로 언제 그랬냐는 듯 식욕이 돌아오는 것이 놀라웠다. 그렇게 차츰차츰 다시 돌아온 일상. 이것이 내가 체험한 72시간의 첫 경험이다.


위에 언급한 도미니크 박사는 동료인 보스턴 대학교의 토머스 사이프리드 박사와 함께 치료를 위한 '정화 단식(purge fast)'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도미니크 박사는 "1년에 1~3번 정도 치료 목적으로 단식을 하면,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체내의 세포들을 제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단기간의 단식이 암세포의 기전을 막아준다거나 항산화 효과가 있다거나, 세포 단위에서의 신체 건강을 도모한다는 것이 체감적으로 잘 와닿지는 않지만 과학적으로 증명된 부분이라 하니,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개인이 충분히 해볼 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S 1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72시간에 이르는 단식을 무작정 권하고 싶지는 않다. 자세히 알아보고 실천해봐도 좋을지 스스로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P.S 2

위 내용은 <타이탄의 도구들> "부록 1. 타이탄들의 케톤 식이요법"의 내용을 실천으로 옮기고 일부는 인용하여 작성하였다. 또한 "단식추적기"라는 어플에서 경과시간별 기전을 소개한 내용을 담았다. 추가로 자가포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래 책을 살펴보길 권한다.



[책 소개]

질병 없이 장수하는 비결이 있을까? 『자가포식』은 110세 이상 생존 장수인들의 공통분모를 통해 이 질문에 답한다. 저자 제임스 클레멘트에 따르면 그 비결은 스위치를 돌리는 것만큼이나 쉽다. ‘자가포식’으로 알려진 이 ‘건강 스위치’는 우리 몸을 ‘청소 모드’로 바꾼다. 자가포식은 우리가 먹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데, 이때 우리 몸은 손상된 단백질과 대사 폐기물을 재활용하고, 지방 연소를 시작하며, 스트레스로부터 세포를 보호한다. 이 복잡한 작용으로 노화 과정이 늦춰질 뿐만 아니라 당뇨병에서 치매, 암에 이르기까지 노화 관련 질병들이 예방된다. 많은 종교 전통에서 이미 알고 있던 사실, ‘동물은 왜 아프면 굶는지’ 그래서 ‘계획적 단식이 암과 대사 질환을 막는 최선의 예방책일 수 있다’는 것을 저자는 8만 편의 노화생물학 관련 논문으로부터 도출해 낸다. 21세기의 획기적인 항노화 연구 결과가 이 책 『자가포식』 한 권에 집대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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