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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을기억해 Oct 17. 2022

잡지가 인생에 미치는 영향

수집했던 순간들을 돌아보며

어렸을 때 나의 기쁨 중 하나는 잡지를 수집하는 일이었다. 당시의 내게 잡지는 흥미진진한 세상으로 다가가기 위한 창구였다. 잡지 속의 글과 사진에는 나름대로의 질서와 리듬이 있었고, 문장들 사이사이로 시대의 현주소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으니 보물창고도 그런 보물창고가 없었다. 지금이야 잡지의 그런 역할을 대체할 것들이 많아졌지만 그때만 해도 잡지가 최신 문물을 접하는 정보의 집결지나 다름없었다. 그야말로 팔딱팔딱 살아있는 날 것 그대로의 정보들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 그만큼 거기에는 하나의 세계라고 해도 좋을 만큼의 생생한 이야기가 존재했다. 마치 나니아 연대기의 주인공들이 옷장 너머로 또 다른 세상에 들어섰던 것처럼 나는 잡지를 매개로 해서 새로운 세상을 접하고, 수많은 인물들을 만났다. 특히 아트디렉터 알렉세이 브로도비치를 만난 것은 내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했으니 잡지는 나름대로 내 인생에 대한 지분(?)이 꽤 있는 셈이다.


진지하게 잡지를 사모으기 시작한 건 사진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된 고3 때부터였다. 주로 모았던 잡지들은 월간사진, 포토넷과 같은 국내 잡지들이었다. 이후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게 되면서 월간디자인, 디자인정글, CA 같은 잡지들이 나의 컬렉션에 추가되었다. 물론, 여기에 말한 잡지들이 내가 모았던 잡지의 전부는 아니다. 가끔씩은 서점에서 불쑥 집어 들고 온 것들도 있었는데 씨네21 같은 영화잡지나 하퍼스 바자, 보그 같은 패션잡지 그리고 이따금씩 강렬한 표지로 눈길을 사로잡았던 여러 이름 모를 잡지들이 그 주인공들이었다. 그만큼 잡지를 탐독하는 것은 내 일상에 새로운 활력을 더하는 일이기도 했다. 오랜 시간 잡지와 함께한 인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편집디자이너로 취업하고 나서는 까사리빙, 에스콰이어라는 잡지의 지면 일부를 내 손으로 편집하는 날이 오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적고 보니 잡지가 내 10대와 20대 시절을 통틀어 큰 영향을 준 매체였구나 하는 실감이 난다.


잡지에 실린 글과 사진들을 대체로 마음에 들어 했지만, 새로운 잡지를 구입할 때마다 내가 제일 먼저 펼쳐 들었던 부분은 그 잡지의 편집장이 한 달치의 생각을 꾹꾹 눌러 담아 쓴 지면이었다. 잡지라는 공간으로 들어서는 이에게 보여지는 대자보 같은 느낌이랄까? 대개의 잡지에는 편집장에게 할애되는 지면이 있었고, 거기에는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가 아닌 생각하게 만드는 글들이 있었다. 때로는 변화하는 계절감이 그 안에 있었고, 잡지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치열함이 묻어 나오기도 했으며, 어떨 때는 시대가 던지는 질문에 우직하게 답하는 글도 있었다. 시대정신이 담긴 글, 시대와 함께 살아가는 그 글들에서 ‘진짜’만이 가지는 반짝거림이 느껴졌다. 그만큼 빛나는 글들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그때를 돌이켜보면 잡지들의 편집장이 남기는 글에 대한 나의 감정은 동경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사로잡는 글에 대한 부러움, 언젠가는 나도 저런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 그들 같은 어른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갈망이 그 안에 있었다.


시간이 흘러 뉴스레터를 만들게 된 지금, 뉴스레터를 발행하기 위해 한 자 한 자 글을 쓸 때마다 그때 보았던 편집장의 글을 생각한다. 글쓴이를 동경하던 소년은 결국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내 글도 누군가에게 그런 동경을 품게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그 시절의 그들처럼 시대가 던지는 질문에 답하는 이가 될 자신은 없지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 글도 읽는 이의 마음에 가닿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이 글은 <봄을기억해> 뉴스레터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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