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5월 17일 토요일 / 넷 째 날 / 로마 → 레체
로마에 간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추천받은 세 가지가 있다. 에스프레소, 피자, 바티칸 투어. 이 세 가지는 누구도 실패하지 않았다는데, 마지막 목록은 결국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여행 일주일 전까지도 승일이와 나는 투어를 할지 말지 정하지 못했다. 족집게 과외처럼 콕콕 집어주는 것만 보고 오는 게 나을지 미리 공부를 해서 보고 싶은 것만 천천히 보고 오는 게 나을지 고민하다 그만, 패스트 트랙 표가 매진이 된 것이다. (일반 입장 표와 패스트트랙 표는 대기 시간과 구매 방법이 다르다.) 로마에 짧게 있으니 오래 기다릴 여유는 없고, 투어를 하자니 전날까지 썩 내키진 않아서 ‘일단 가보자!’하고 바티칸으로 출발했다. 누구에게나 개방된 광장 구석구석에 조각된 상징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다 갈 것 같은 예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좁고 예쁜 길을 거쳐 모든 사람들이 향하는 곳으로 따라 가자, 성 베드로 성당의 돔이 보였다. 가슴에 쿵! 하고 진동이 퍼졌다. 멀리서 보니 솔방울 같기도 하고 신의 머리 꼭대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올해는 희년이기 때문에 전 세계 가톨릭 순례자들이 이 곳에 줄지어 모여들었다.
바티칸으로 가는 길은 왼쪽, 중앙, 오른쪽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일반인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양 쪽의 길과 미리 예약한 순례자들이 기도문을 외며 걸어가는 중앙 길. 오른쪽 길에서 걸으며 보라색 옷을 입은 순례자들, 할머니, 할아버지들로만 모인 순례자들, 검은 옷을 입은 순례자들, 수녀님들, 노란색 옷을 입은 순례자들, 청소년들의 기도를 들을 수 있었다. (머글 세상에 있던 마법사들이 호그와트로 몰려드는 것 같았다!)
성 베드로 광장은 온갖 다른 세계들이 모여드는 정거장 같았다. 광장을 둘러싸고 하늘 높이 세워져 있는 조각상들은 말을 하고 있었다. 140명 성인의 모습이라는데, 그 분들이 한 데 모여 있으니 조각상의 크기와 무게만큼 기운에 압도되었다. 잔 로렌초 베르니니는 이 광장을 모든 이를 포용한다는 의미를 담아 만들었다고 한다. 교황님이 모습을 보이는 광장 중앙 건물에서 보면, 정말로 왼팔과 오른팔이 뻗어나가는 것 같은 모양이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성 베드로 성당에서 광장까지 열쇠 모양을 하고 있다. 이것은 하늘로 가는 열쇠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것 외에도 중앙의 아벨리스크, 좌우의 분수대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조각, 건물, 광장,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어느 하나 신성한 의도를 담지 않은 것이 없어서 내가 본 것 중 가장 진실에 가까운 건물이었다. 어제 본 천사의 조각상에서 천사들이 빠져나와 모든 사람에게 축복을 내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공상에 푹- 젖어들기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기다려서 입장해볼까도 싶었지만 성벽을 둘러 늘어진 줄은 마음을 깨끗히 접게 해주었다. 짧게 기도를 올리고 밖으로 나왔다. 레체로 이동하는 기차를 타기 전, 간단히 점심을 해결할 겸 마트에 들르러 갔다. 바티칸에서 조금만 나와도 가로수에 숨은 새의 지저귐이 잘 들렸다.
오래된 골목길 구석의 공원. 한 중년의 여인은 휠체어를 탄 노인을 그녀의 맞은편에 앉혀두고 조용히 햇볕을 쬐고 있다. 그 할머니는 지나가는 나에게 윙크를 한다. 황금색 털옷을 입은 리트리버들은 주인과 나란히 걸으며 친구를 만난다. 부온 조르노! 챠오! 오늘도 인간과 동물은 함께 서로의 안녕을 확인한다. (이것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까?) 몸 전체에 타투를 한 젊은 청년은 드넓은 거리의 쓰레기통을 전부 비운다. 그의 젊음처럼 활기차게. 광장의 조각상들이 따라온 걸까? 뒷골목에서 자꾸만 세상의 천사들과 마추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