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3/29
등원을 도와 주시던 이모님의 집안에 사정이 생겼다.
그 바람에 새로운 분을 모시기 위해
주말 동안 네 분의 후보자를 만났다.
맨 처음 등원 이모님을 구하던 2년 전쯤,
그때는 아이를 사랑으로 살펴주시는 것이 제 1원칙.
그 다음, 오래해 주실 분을 2원칙으로 두고
아이에게 잘 맞을 것 같은 이모님들을 찾아 헤맸더랬지.
첫 번째 이모님께서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그만 두어야겠다고 하셨을 때 나는 몹시도 당황했다.
과연 아이가 새로운 사람과 잘 지낼 수 있을까?
혹여 이상한 사람이면 어떡하지? 라는
현실적인 걱정으로 시작했으나,
그 끝엔 ‘이모님이 아이를 납치하는’
내용의 영화를 떠올리며 불안에 떨기도 했다.
그렇게 모신 두 번째 이모님은
첫 번째 이모님보다 아이에게 살가운 느낌은 덜 했지만
베테랑의 면모를 보여주셨다.
첫 번째 이모님은 살갑게 책을 잘 읽어주시는 반면,
아이가 울 때 어쩔 줄 몰라
아이의 컨디션을 최대한 맞춰 주려 하셨다면,
두 번째 이모님은 아이에게 다정~하게 말을 하는 건 덜했지만,
아이가 울어도 동요하시지 않고
스스로 감정을 추스릴 수 있도록 덤덤히 기다려 주셨다.
각자의 장점을 떠올리며,
'그래 다양한 분들을 만나 뵙는게 또 그 나름의 의미가 있지~
한 번쯤 이런 일 다 겪는거지~'
짐짓 의연한 모습으로 지낸 지 반년이 흐른 어느 날.
시골에 계신 이모님의 노모께서
갑작스럽게 치료를 받아야 할 일이 생기셨다.
아흔이 넘어 거동이 불편하시니
돌봄의 딸의 몫이 되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관계에 종지부가 찍어졌다.
이런 사정으로 모시게 된 세 번째 이모님의 첫 출근 날.
아이가 낯선 이의 등장에 울고불고 매달리며,
'엄마 (회사) 가지마 ㅠㅠㅠㅠ' 통곡하면 어쩌나,
이 새로운 분이 나 없는 사이 애를 들고 도망가면 어쩌나
염려의 마음으로 전날 밤을 설쳤다.
나의 어지러운 밤이 무색하게,
아이는 '엄마~ 이제 가도 돼!' 베시시 웃으며 나를 보내고,
이모님도' 아이가 똑똑해서 스스로 다 설명해 줄 것 같아요~' 하며
나의 인수인계마저 고사하시는 게 아닌가.
참 다행인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게 다행인게 맞지? 하는 당혹스러움을 안고 출근하며
설치해둔 홈캠(CCTV)을 훔쳐 본다.
카메라에 대해 미리 고지 드렸으므로
당당하게 보면 되는 것임에도,
괜히 보는 걸 들키면 안될 것 같은 마음에
‘훔쳐본다’는 단어가 먼저 나오는구나.
아무튼 지간에 새로운 이모님은 ‘선생님’으로 부르기로 했다.
첫 번째 이모님이 ‘살가운 서울 깍쟁이’라면,
두 번째 이모님은 ‘수더분한 시골 할머니’셨고,
이번에 모시는 분은 ‘우아한 선생님’ 같달까.
배려를 해주시되, 상대에게 배려를 요구하는 것도 당연한,
말투와 행동이 우아하신 분.
나는 아이에게 ‘맞는’ 선생님을 찾아주고 싶었으나,
이쯤 되니 ‘아이를 아껴주는 따뜻한 마음’이 계신 분이라면,
아이가 맞춰보는 것도 한편 좋은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이 생각 또한 지금의 상황에 맞추어
내가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뭐.. 모든 것은 사후의 해석이 아니던가.
어쨌거나 저쨌거나 오늘은 무사히 등원을 마쳤다.
앞으로 일주일 간 나는 긴장 속에 CCTV를 바라보고,
어린이집에서 오는 등원 알림에 안도하는 생활을 하겠지?
그래도 이렇게 별일 없이 새로운 분을 모신 게 어딘가.
오늘은 오늘 몫의 걱정을 다 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나머지 시간을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