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읽고
지구가 목적, 사업은 수단
책 표지에 쓰여있는 문구. 너무 멋진 말이다. 누구나 저렇게 멋진 말을 할 수는 있지만, 그 말을 증명하는 행동을 한결같이 지속적으로는 누구나 할 수 없다. 철학의 비즈니스화는 가능하더라도 유의미한 매출과 이익 그리고 지속적인 성장을 철학을 지키면서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데, 그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 파타고니아. 알면 알수록 궁금해지는 기업이다. 아마 이본 쉬나드는 엄청 고집쟁이 일듯(좋은 의미로) :D 홈페이지에도 참 볼거리가 많다. https://www.patagonia.com/stories/
아주 예전에 프릳츠의 대표님이 하는 브랜딩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프릳츠가 로고나 패키지 디자인도 특이해서 거기에 담긴 브랜딩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하고 갔는데, 강연 3시간 중 2시간 반을 원두 이야기만 하셨다. 원두의 산지는 어쩌고, 운송 방법은 저쩌고, 원두를 볶고 내리는 방법은 이렇고....
브랜딩을 들으러 왔지 원두 공부를 하러 온 게 아니어서 브랜딩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고 물었는데, 바로 이 원두에 대한 이야기 그 자체가 프릳츠의 브랜딩이라고 하셨다. 디자인 물론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원두와 커피에 대한 퀄리티와 자부심 그 자체였던 것. 업의 본질과 가장 중요한 것이 원두와 커피에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중요한 이야기이지만, 실제로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가장 중요한 원칙을 알고도 지나치게 만드는 유혹이 너무나도 많은 것 같다. 특히 초기에는 창업주와 초기 멤버들이 가장 중요한 가치 아래 똘똘 뭉쳐야 하고, 그것을 전사적으로 알리고 따라오게끔 하는 활동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비즈니스가 커지다 보면 분명 그 가치가 위협받는 순간이 오는데,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단기적으로 눈에 보이는 명확한 손해를 감수해내지 않는다면 그 칼날은 날카로워지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분명 최소 한번은 겪게 된다.
파타고니아는 자연이 준 선물을 익스트림하게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옷과 장비를 판매하는 기업이다. 제품의 압도적인 퀄리티는 기본이며, 그것을 만들면서 자연을 지켜내기 위한 처절한 노력들. 자연스러운 성장을 추구하며 천천히 가더라도, 이미 출시한 제품을 폐기 처분하더라도 파타고니아 창업자 이본 쉬나드와 그 팀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환경 담당 임원이 별도로 있으며 매출의 1%를 꾸준히 계속 기부하고 있고 1973년 설립부터 지금까지 약 900억원을 환경 보호 위해 기부하고 있다고 한다. 월가나 실리콘벨리에서 파타고니아의 플리스가 대유행을 했지만, 환경보호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는 기업에는 팔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몇십 년간 그들이 보여준 일관된 모습은 시장에 아주 탄탄하게 자리를 잡았고 후발주자들이 따라오기 쉽지 않은 레거시를 쌓았다.
과거 우리 조직도 매출의 1/3을 날려버리는 수수료 폐지 선언 등을 통해 시장에서 진정성을 인정받고 살아남아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1인 가구 증가, 코로나 등의 이슈로 시장이 무지막지하게 커지면서 각종 IT 회사들이 배달사업으로 빠르게 진출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우리 조직은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유혹을 물리치고 사업 본연의 가치를 지켜내고 그 중심에 있는 고객을 위해 중심을 꽉 잡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아직 갈길이 멀다.
좋은 일은 좋은 일대로 하고 그에 따른 홍보효과나 사업적 성과는 못 거두는 상황은 참 마음이 아픈데, 국내에서는 뚜렷하게 잘한다고 생각되는 기업이 쉽게 확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미디어에서 자극적인 이슈를 좋아하지 좋은 미담은 잘 언급 안 해주는 부분도 있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듯 ㅠ)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은 파타고니아는 좋은 일도 많이 하지만 그만큼 광팔기를 참 잘하고 사업적인 성과로도 잘 이어졌던 것 같다. 타협하지 않는 제품의 퀄리티, 환경과 관련된 일관적인 브랜딩과 PR 등이 모두 잘 조합된 결과겠지만 실제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이렇게 만들어가기가 매우 어렵기에 대단해 보였다. 사실 제대로 홍보가 안되면 돈과 에너지는 쓴다고 쓰는데 성과가 없으니 안팎으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 같다.
현재 내가 속한 조직은 과거에는 이 부분을 참 잘했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소상공인 및 라이더 이슈 등에 물리면서 이 부분에서 고민과 개선이 많이 필요한 것 같다. 사실 최근 몇 년간 대한민국에서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상대로 돈을 버는 비즈니스 모델은 대외적으로 좋은 평판을 듣기도 제대로 된 수익을 창출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이 부분을 어떻게 해쳐나가는지가 해당 조직이 살아남는지 죽는지를 결정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도 대표님은 국감에 나가셨고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그들의 궤변에 고생하셨는데 앞으로 갈길이 아주 멀다.
파타고니아 의류의 가격대는 절대 싸지 않다. 하지만 그 가격대를 지지하는 다양한 요소들(고퀄리티, 디자인, 환경을 감안하는 소재 및 생산공정 등)이 고객들에게 충분하게 인지되어 있기 때문에 고객들은 충분히 그 가격대에도 파타고니아 의류를 구매한다.
프라이탁이나 러쉬와 같이 환경, 비건, 평등, 공정 무역, 동물보호, 인권보호 등 가치들을 전면으로 내세워서 브랜드 윤리 철학이 구매를 유도하게 끔 하는 브랜드들이 빠르게 생겨나고 있다. 그들은 아무래도 해당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추가적으로 투입되는 비용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당연히 고퀄리티 / 높은 가격 전략으로 가야만 승산이 있다. 산업에 상관 없이 제품을 낮은 가격으로 포지셔닝 잡는 순간 가격 경쟁에 휘말리게 된다. 다소 가격이 비싸더라도 충분히 살만한 이유를 잘 만들어주면 되는 것이고, 그래야만 회사는 충분한 마진을 얻을 수 있고 돈이 있어야 철학이고 가치도 지켜낼 수 있는 것이다.(비상장이라 공개된 자료가 거의 없음)
이책에서 창업주인 이본 쉬나드는 일보다는 서핑이나 암벽등반을 좋아하는 사람처럼 표현이 되어 있지만, 이 정도 기업을 일궈낸 사람으로써 굉장히 사업가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을 것이며 내부에 사업의 손익과 전략을 담당하는 유능한 팀이 존재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일관된 전략으로 꾸준히 손익을 만들 수 없다. 이 책과 파타고니아를 보면서 우리 조직과 굉장히 비슷하다고 느꼈는데, 밖에서 보는 우리 조직은 밝고 창의적이고 항상 웃음이 끊이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지만 실상은 소상공인을 상대하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엄숙하고 조심스러우며 나와 같이 손익을 보며 안살림을 챙기는 팀은 그 어떤 회사의 어떤 팀보다 더 빡세다..
이 회사가 상장사가 아닌 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주요한 요인이였다고 생각한다. 요즘이야 브랜드 윤리 철학을 부르짓는 브랜드가 많지만 20~30년 전에는 그 어떤 브랜드도 윤리와 철학은 뒷전이였다. 기업의 지배구조가 온전히 창업주의 철학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과연 상장사였거나 대규모 금융자본에게 투자를 받았다면 지금의 파타고니아가 가능했을까?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