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부샤부는 요리하지 않는다.

첫 번째 끼니

by 초삐


_샤부샤부는 유난히 말이 적다. 고기를 굽는 지글거림도 팬을 뒤집는 바쁜 손길도 없다. 그저 조용히 국물이 끓기를 기다리다 재료를 넣고 다시 숨을 고를 뿐이다. 싱싱하던 채소가 뜨거운 육수 속에서 투명해지고 고기의 붉은빛이 서서히 하얘질 즈음 가만히 젓가락을 들면 그만이다. 요리를 하지 않아도 훌륭한 요리가 되는 음식. 샤부샤부다.


샤부샤부에는 움직임이 있다. 누군가 먼저 고기를 담그면 다른 사람도 따라 고기를 데친다. 조용한 식탁 위에는 묘한 온기가 흐른다. 샤부샤부는 냄비를 사이에 둔 사람들을 자연스레 조용하게 만든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음식은 ‘완성’이라는 말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끊임없이 행동하는 과정이 반복되고 계속해서 일어나는 변주를 너그럽게 허락한다. 널따란 전골냄비는 들어오는 무엇이든 환영한다.


그래서인지 샤부샤부 앞에서는 손이 움직이는 만큼 마음이 느긋해진다. 모든 재료가 테이블에 나와 있어도 누구 하나 서두르라 재촉하지 않는다. 각자 젓가락을 들어 자기 템포대로 국물에 담근다. 고기를 먼저 넣는 사람이 있고 채소부터 넣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맑은 국물을 먼저 뜬다.


샤부샤부를 먹는 동안에는 정답도 완성도 없다. 각자의 방식으로 식사를 만들어 가며 즐기면 된다. 냄비를 둘러싼 모두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이상하리만큼 어그러지지 않는다. 누구도 지휘하지 않는데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룬다.


삶도 이런 식으로 익어 가면 좋겠다. 누군가는 빠르게 앞서 나가고 누군가는 잠시 머뭇거린다. 그래도 결국 같은 냄비 앞에서 비슷한 온도의 무언가를 함께 나눠 먹고 싶다.



_샤부샤부를 먹을 때 타이밍을 신경 쓰면 좋다. 고기를 너무 오래 데치면 질겨지고 너무 빨리 꺼내면 덜 익는다. 샤부샤부에서 유일하게 집중이 필요한 순간이다. 푹 익은 고기를 좋아한다면 한꺼번에 넣어 충분히 두어도 좋다. 반대로 샤부샤부만의 섬세함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한 점 한 점 조심스럽게 넣고 초를 세며 살살 흔들어 먹는 편이 어울린다.


같은 냄비를 마주하고 앉았다고 해서 꼭 같은 리듬으로 움직일 필요는 없다. 저마다의 속도와 방식이 있다. 둘 모두 분주해지는 건 싫다. 한 사람의 손이 때로 바쁘면 다른 사람은 그 움직임을 정성스레 지켜보자. 한쪽의 분주함을 다른 쪽의 여유가 감싸 줄 때 식탁은 더 조화롭다. 우리는 그렇게 과정을 함께 쌓고 식사를 완성해 간다. 서둘러도 좋고 느려도 좋다. 결국 모두가 같은 온기 속에서 자기만의 한 끼이자 서로를 위한 냄비를 만들어 갈 테니까.



_샤부샤부를 먹다 보면 마주 앉은 그 사람을 조금 더 알게 된다. 한 냄비를 공유하니 뭘 가져가는지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 자연스레 보인다. 그 작은 습관들이 묘하게 그 사람다워 보인다. 냄비 앞에서 드러나는 모습이 평소의 성격과 닮아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사람을 안다는 일은 언제나 재미있다. 무의미해 보이던 시간이 문득 의미를 얻을 때가 있다. 그런 시간이 쌓이며 관계도 익어 간다. 옆 테이블 누군가가 어떻게 먹는지는 상관없다. 굳이 서둘러 다 알 필요도 없다. 상황과 사람에 맞는 속도가 있는 법이다. 물론 시간을 너무 오래 끌면 맥이 빠진다.


‘언제’와 ‘어떻게’를 함께 알려 주는 존재, 다름 아닌 샤부샤부 국물 속 얇은 고기 한 점이다.



_샤부샤부로 다정함을 표현해 보자. 여느 전골요리가 그러하듯 여기에도 나눔의 미학이 있다. 채소 틈에 숨어 있는 고기를 찾아 상대의 접시에 덜어 보자. 맛있는 고기를 살짝 건네는 그 마음. 상대가 채소를 자르고 냄비에 새로 넣는 동안 잠시 먹던 젓가락을 멈추는 일. 당연한 배려를 소홀히 하지 말자. 너를 관찰하고 거기에 맞게 네게 좋을 행동을 해라. 따스해지자. 샤부샤부 국물처럼. 고기를 빠르게 익힐 만큼 온기를 머금은 육수와 같이. 뜨겁기 직전의 온기를 마음에 머금자. 온기를 키우고 나누느라 즐거운. 그렇게 서로가 말없이 알아주는 시간이 지난다.


함께 밥을 먹는 일은 대단한 사건이 아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우리는 가볍고도 묵직한 무언가를 나눈다. 서로의 시간을 조금씩 허락하고, 각자의 템포를 조금씩 조절하며 같은 냄비를 함께 돌본다. 끓는 국물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으면 이상하게 말도 부드러워진다. 처음엔 별 얘기가 없던 자리도 국물이 진해질수록 대화도 깊어진다. 샤부샤부는 결국 시간을 데치는 음식이다. 음식이 익는 만큼 서로를 알아 가는 마음이 깊어진다.


완성을 향해 급히 달려가지 않으니 얼마든지 시간을 두어도 좋다. 고기를 데치고 채소를 담그고 죽을 익히고. 같이 해야 할 단계가 제법 많은 식탁이다. 한 가지씩 넣다 보면 어느 순간 국물의 빛깔이 달라진다. 처음엔 맑기만 하던 육수가 고깃기름과 채소의 단맛을 머금으며 천천히 진해진다.


완성은 정해진 시각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반복되는 동작과 함께한 시간 속에서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무언가가 바뀐다.


그 국물처럼.



_마지막엔 국물이 죽이 된다. 더 넣을 재료도 없고 배도 제법 찼다. 고기와 채소는 국물에 스며들어 형체가 희미해졌다. 거기에 밥과 조금의 채소 건더기를 넣고 국물이 졸아들길 기다리다 달걀을 풀고 참기름으로 마무리하면 끝. 샤부샤부의 진짜 마무리는 언제나 죽이다. 그렇게 한참 음식을 나눈 뒤 그제야 우리는 바닥을 본다.


샤부샤부는 조용히 알려 준다. 완성은 끝을 향해 달려가는 일이 아니라 시간이 스며들고 마음이 천천히 녹는 그 흐름 속에서 문득 스쳐 간다는 것을. 죽까지 싹싹 긁어먹느라 국물조차 남지 않은 바닥이 그것을 말해 준다. 식사가 끝난 뒤. 우리가 정말 나눈 건 고기도 채소도 아니었다는 것을 안다. 함께 있었던 시간. 조용히 오간 온기.


샤부샤부는 요리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소중한 것들을 익혀 둔다.



모던샤브하우스_광화문 D타워점_2025년 7월 14일 저녁_버섯육수 시그니쳐_2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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