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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어 Aug 24. 2021

2020년 10월. <더 셜리 클럽>의 멜버른

#월간안전가옥#그곳에가고싶다

*회사에서 한 달에 한 번, 한 달을 돌아보는 글을 써서 공개했다. 여기에 다시 포스팅하면서 눈에 거슬리는 표현들은 조금 수정했다.
*헤더 사진: 
Photo by Seb Reivers on Unsplash



http://www.yes24.com/Product/Goods/91915609


지난 추석 연휴에 박서련 작가님의 신간 <더 셜리 클럽>을 읽었습니다. 주인공이 ‘셜리'라는 영어 이름을 가졌고, ‘셜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클럽 ‘더 셜리 클럽'을 만난다(?) 정도의 정보만 가진 채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배경이 오스트레일리아더라고요.


오스트레일리아에 딱 한 번 가 본 적이 있습니다. 2008년이었는데 가톨릭 신자인 2-30대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World Youth Day라는 행사에 참가하러 갔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아주 성실한 신자는 아니었/기에.. 이것을 핑계로 이 나라에 한 번 가보자, 가서 운 좋으면 교황님도 볼 수 있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떠났습니다. 본 행사 전에 멜버른에서 1주, 본 행사 때 시드니에서 1주 해서 총 2주 정도 지낸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얼마나 준비 없이 떠났냐 하면, 그때가 8월이었는데 오스트레일리아는 남반구라서 날씨가 반대라지? 그런데 그래도 남반구니까? 왠지 그렇게 춥지는 않을 것 같다는 이상한 생각으로? 여름-가을 옷만 챙겨서 갔었어요. 멜버른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가장 남쪽 그러니까 남극이랑 가장 가까운 지역.. 인데도 말이죠. 아마 떠나기 전에 지도도 한 번 안 봤을 거예요. 멜버른에서는 홈스테이를 한 며칠을 제외하곤 학교 교실 같은 곳에서 침낭을 깔고 자기도 했는데.. 같이 다니던 주변 사람들이 저를 볼 때마다 항상 긴 팔 옷이나 머플러 등등을 던져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사진을 보면 저는 항상 어울리지 않는 무언가를 잔뜩 입거나 두르고 있어요.


얼지 않고 살아남으려고 정신없이 지냈지만, 몇몇 순간들은 또렷이 기억이 납니다. 하나는 멜버른에서 지나가던 사람에게 길을 물었는데 정말 하나도 못 알아들었던 순간이에요. 또렷한 오스트레일리아 악센트를 쓰던 그분은 저희에게 엄청 길고 자세하게 설명을 해 줬는데, 정말로 영어가 아닌 말처럼 들려서 어느 순간부터는 듣기를 포기하고 그분의 얼굴을 보면서 목'소리’만 들었거든요. 그때 정말로 해가 지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 소리는 따뜻하고 흐린 오렌지색이었어요.


다른 기억에 남는 사건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우리말로 ‘도와주세요 길 찾아주세요'라고 큰 소리로 말하면서 돌아다녔더니 5분도 지나지 않아 정말로 한국인 분이 나타나 길을 알려주셨던 순간입니다. 여기엔 워킹 홀리데이를 오는 사람들이 많대, 시드니에는 정말 많대, 같은 이야기를 하던 참이었고 마침 저녁 식사를 하러 갈 식당을 찾아야 해서, 일행이 장난 삼아해 보자고 한 것이었는데. 정말로 어떤 여자분이 나타나서 상세하게 가는 길을 알려주셨고, 기억에 남는 저녁식사를 했어요. 그분의 목소리는.. 새카맣지만 빛이 나는 보라색이었습니다.


사실 <더 셜리 클럽>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사랑스럽고 다정한 이야기구나 하는 느낌과 동시에 왠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졌거든요. 왜 그런 마음이 들까, 설희는 20대고 나는 30대(그것도 곧 빼박 중반)이어서, 그래서 이런 사랑과 다정함과 연대와 Fun Food Friend로부터 멀어져서 그런가, 아니면 가뜩이나 재미없는데 코로나까지 끼얹어진 2020년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셜리와 비슷한 나이에 멜버른에서 오들오들 떨었던 저를 생각해보니, 그때 천둥벌거숭이에 가까웠던 저를 보살펴 준 언니들도 생각나고, 뭐라도 도와주려던 주변 사람들이 자꾸 생각나더라고요. 그리고 다시 소설 속 셜리 할머니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더 셜리 클럽>은 표지의 곱고 따뜻한 분홍색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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