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살고 있다 스톡홀름
2021년 7월, 나름대로 쌓아 온 (것 같은)커리어와 뭔가 가지지 못했지만 가질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을 내팽개치는 듯한 웅대하고 벅찬 기분으로 스웨덴에 올 때만 해도, 앞으로의 나의 삶을 잘 아카이브 하여 성공적인 퍼스널 브랜딩과 온라인 인지도를 구축하겠다는 꿈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블로거가 아니었는데 스웨덴 와서 갑자기 블로거가 되려면 새는 바가지를 막든지 아니면 멀쩡한 바가지에 구멍을 내야 하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했다. 나름 이모저모 노력해봤지만, 습관으로 만드는 데는 난관이 많았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학교는 생각보다 바빴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었으며 얻을 수 있는 도움은 생각보다 적었고, 서울에서 혼자 사는 것과 스톡홀름에서 혼자 사는 것은 1부터 100까지 다른 것이었으며, 아주 사소하지만 필수적인 일상의 어떤 일들은 처음부터 - "from scratch" 라고들 하는 - 다시 배워야 했다. (from scratch도 여기 와서 처음 쓰게 된 표현인 것 같다)
예를 들면 다음 한 주 동안 먹을 것을 준비한다고 치자. 서울에서의 나라면 대충 시켜먹을 날, 해 먹을 날을 정하고 특별히 저녁에 시간이 나는 날 해먹을 것들의 식재료를 구입했을 것이다. 좀 생소한 재료가 필요하면 마켓컬리에서 시키고, 당장 오늘 먹어야 되는데 없는 게 있으면 배민상회에서 시키고(배민상회 매니아였다), 꼭 보고 사야 하는 신선 해산물 같은 게 필요하면 동네 큰 슈퍼를 가고, 그런 식으로 로직이 서 있었다. 여기에선 일단 점심을 사 먹기가 애매하니 점심 도시락을 쌀 메뉴를 따로 생각해야 했는데 그것부터 난관이었다. 도시락을 먹어도 시켜 먹었고, 다이어트를 해도 샐러드를 시켜 먹었는데 갑자기 도시락을 매일 싸야 한다니. 무슨 메뉴를 만들어야 할 지 그건 어디서 사야 할지, 단무지가 필요하면 한중일태국까지 커버하는 아시안 마트에 가서 일본 단무지를 살 지 저 멀리 독일 한인마트에서 더 싸게, 하지만 배송료를 내고 오는 단무지+우엉 셋트 상품을 사야 할지, 다 귀찮고 한국 음식을 다 포기해야 할지, 중요하면서 별 것 아닌(?) 것에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많이 쓰였다.
그로부터 어느 덧 거의 1년이 지나,
이제 저런 잔고민은 좀 줄었고, 여기서도 뭘 사려면 대충 어딜 봐야 하는지, 좋아하는 거리와 좋아하는 커피를 파는 가게도 생겼다. 그러는 새에 약속된 학생으로의 시간은 어느 덧 2/3이 지났다. 왜 하이퍼 아일랜드 재학 혹은 졸업생들의 블로그를 살펴보면 초반 한 두 모듈 정도 회고가 올라오다가 뚝 끊기고 졸업으로 이어지는지 알게 되었다(진재님 제외).
앞으로 한 달은 정말 정해진 일 없는 '여름 방학'을 보내게 된다. 밥도 잘 해 먹고 수영도 하고 잠도 많이 자면서 지내겠지만, 그와중에 지난 1년 동안 보고 생각했던 스톡홀름의 이모저모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그에 걸맞게 매거진의 제목도 바꿨다. 우당탕탕 내돈내산 스웨덴 고생기. 많관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