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봐도 외국인 vs 딱 보지 말 것
Sorry?
지난 1년 동안 학교 밖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을 꼽으라면 이거 아닐까 싶다. Sorry? 혹은 So sorry, I don’t speak Swedish.
이번이 스톡홀름에 처음 온 것은 아니다. 2016년에 유럽만 세 달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이 곳에 사는 친구를 만날 겸 왔었다. 나름 1주일 넘게 있었는데, 최고로 지친 (거의)번아웃 상태 그대로 왔었기 때문에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을 정도로 르게 있다가 갔다. 아마 술이나 마시고 멍이나 때린 것 같은데, 그리고 10월 초 였으니까 아마 날도 춥고 그랬을거다. 기억나는 건 도착한 알란다 공항에서 화장실을 쓰면서 ‘아 이제 여행하는 동안은 불법 촬영 카메라 신경 안 써도 되겠네' 하는 생각을 했던 내가 기억난다. 아무튼.
작년에 여기 오자마자 며칠 동안 가장 강렬하게 남은 인상이 아무도 나에게 영어로 말을 걸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스웨덴 사람들 대부분은 어느 정도의 영어를 구사한다고 한다. 어학 교육 기업인 EF가 조사하는 EF English Proficiency Index는 Non-native 국가들의 영어 구사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인데 스웨덴은 2011년 이래로 5위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가 2021년에 8위에 랭크됐다). 그러니 영어만 해도, 특히 스톡홀름에서는 사는데 별 문제가 없고, 오히려 영어가 너무 잘 통해서 스웨덴어를 연습할 수가 없다는 하소연을 듣는 수준이다. 실제로 지난 1년 동안 스웨덴어를 못해서 당황했던 경험은 딱 한 번 아주아주 연로하신 할머니가 버스 정류장에서 계속 뭔가를 물어보셨을 때 말고는 없었다. (아직도 가끔 궁금하다 뭘 물어보신건지..)
5년 전에 여행 왔을 때도 이랬던가? 별 특별한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코로나 1년이 지나면서 도시에 관광객이 씨가 말라서 대충 아시안이어도 여기 사는 애(=스웨덴어 하는 애)겠거니 하는걸까? 아니면 내가 벌써 로컬 같아 보이나요? 나는 참 적응을 잘 해? 아니면 스웨덴 왔으니까 스웨덴 말 하라는 패시브 어그레시브 스킬인가?
이에 대한 친구의 설명은 최근 스웨덴 사회에서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인종 차별 주의적인 행동'이라는 데에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진 것 같다는 것이었다. 정부 주도의 캠페인도 있었고, 무엇보다 여기 살면서 ‘피부'로 ‘체감'하고 있는 영역이라고 했다. 아니 스웨덴어로 말 거는 거랑 얼평이랑 무슨 상관인가? 싶을 수도 있는데 그러니까 대강 이런 로직이다.
나를 보고 영어로 응대한다 → 내가 스웨덴어를 못할 거라고 짐작했다 → 입도 안 뗐는데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 내 외모 때문에 → 내가 아시안 인종의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
이 프로세스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아시안이면 스웨덴어를 못 할 것이라는 편견
뭐가 됐든 외견으로 그 사람의 능력이나 내면을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
그러니까 일단 누구든 스웨덴어로 응대하고, 만약 이 사람이 영어로 소통해달라고 요청하면 그 때 영어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사실 되게 맞는 말이다. 그리고 대다수에게 노력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우리 반에는 ‘아시안' 인종으로 구분될 수 있는 사람이 나 포함 7명 정도 있는데 국적과 민족과 '어쩌다 여기에'가 모두 다르다. 나처럼 성인이 된 후에 자의적으로 넘어온 사람들이 반, 부모님이 1세대 이민자고 본인은 여기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나머지 반, 그리고 입양된 사람. 학기 초에 이 ‘겉은 아시안이지만 속이 스웨덴 사람’인 친구 중 한 명이 나랑 자주 어울렸는데, 그래서 같은 반의 스웨덴 애들 중 일부가 얘를 나와 같은 인터내셔널로 오해했다(**우리 학교는 지원하는 트랙 기준으로 학생을 구분하는데, 등록금을 내지 않는 Nordic, 등록금을 왕창 내는 International로 구분한다. 주로 International 트랙에 지원하는 사람은 스웨덴 밖에서 지원해서 이 학교 때문에 스웨덴으로 이주하기 때문에, 스웨덴어를 1도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래서 그 애에게 친절히 스웨덴어 공지를 영어로 번역해 준 일이 있었다. 뭐 이건 그나마 외모만 보고 그런 건 아니고 거기에 오해할 만한 정황도 있었지만.. 아무튼 오해한 본인은 굉장히 ‘부끄러워한' 실수였다.
한편, 학교의 E는 나를 처음 만난 날 통성명을 하면서 아주 명랑한 톤으로 이렇게 물었다. — ‘너는 스톡홀름 출신이니?’ E는 아이슬란드에서 태어나서 미국과 유럽 여기저기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다고 했는데, 어쩌면 그래서 이렇게 묻는 게 더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생겼든 간에, 스톡홀름 출신일 수 있으니까. 나의 미국인 친구 M과 나는 훗날 이런 E의 태도가 ‘so inclusive’ 하다고 극찬하며 짝짝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E는 귀엽다.. 나는 귀여움에 쪼금 더 박수를 보냈다)
한편 그저 ‘효율’을 인생의 최고의 가치로 알고 살아온 나. 솔직히 처음에는 ‘그러면 좀 모든 것이 느려지지 않나,’ 란 생각부터 했다. 그냥 사람 만나서 노는 거야 그렇다고 해도, 예를 들면 관공서에서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데 그냥 눈치로 보고 판단해서 샥샥 진행할 것을 하나하나 안 보이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확인해야 하는 게 좀 ‘비효율'이지 않나 하는 거다. 그 생각에 바로 뒤이어 스스로 답을 찾았다. 그 ‘효율'보다 외모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중요한 거구나.
지난 달에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를 봤다. 양자경 선생님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의 이야기는 주인공 이블린과 이블린의 딸 조이의 갈등에서 시작한다. 이블린은 젊은 시절 남편과 함께 홍콩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계속 일만 하고 있고, 조이는 미국에서 태어난 Third culture kid이자 성 소수자로 둘의 간극은 너무나 먼 것이다.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씬에서, 엄마인 이블린의 대사는 이렇다. 상처받고 떠나는 조이에게 뭔가 사과 비슷한 중요한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You look fat.”
지난 1년 동안 스웨덴에서 내가 체감하는 나의 변화 중 제일 큰 부분, 그리고 마음에 드는 부분은 이것이다. 남이 어떻게 생겼든, 심지어 내가 어떻게 생겼든 ‘I don’t give a f***’ 하는 태도. 아직도 페이스톡하면 아이구 요새 운동은 하냐 살쪘다를 듣는, “You look fat.”의 나라에서 온 내가, 불과 1년 만에 서울에서 였다면 절대 사지 않았을 나의 ‘몸매'의 ‘단점'을 ‘부각'하는 귀엽고 짧은 조끼를 샀다. 어쩌면 나는 스웨덴에 좀 남고 싶은 것도 같다.
*다음 편은 웃기는 일화를 웃기게 쓰고 싶다. 오랜만에 모국어로 긴 글을 쓰니 웃기고 싶은 본능이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