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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나 Oct 03. 2020

인턴, 퇴사했습니다.

이번 미국은 세 번째였는데

한국을 떠날 때만 해도 한국에 있을 수 없어서 미국으로 떠났다.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어쩌다 보니 졸업 유예가 아닌 졸업을 하게 되었고 졸업식과 동시에 출국을 하게 되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생각이 든 건 내가 여기서 얻어가는 게 있을까 싶었다. 준비된 거 없이 온 주제에.. 도착하고 나서 한 일은 미국에서 살 집을 구하는 것과 여기에서 얻고 갈 목표를 세우는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배운 게 참 많다.

크게 보면 회사 일만 해도 그렇다. 진짜 회사를 다녔다. 나름 직장인이라는 그 사회에 푹 빠져 그 분위기와 사회에 취할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옷을 편하게 입고 다니기는 했지만 하하

2020년 9월 8일. 퇴사했다.

일 년이 짧게 느껴졌다. 코로나 때문인가 하하. 코로나 이전 6개월과 코로나 이후 6개월로 딱 나눌 수 있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입사할 때만 해도 슬랙스에, 단발머리에, 어색한 웃음에 그랬는데 하하

아침 7시 출근이라 5시 반에 기상했을 때에도

한국 회사의 느낌을 못 지워 약간 현타 왔을 때에도

영어를 못해서 커뮤니케이션이 문제가 있었을 때에도

개인 문제가 회사 일에 영향을 줄 때도

그리고 코로나가 터져서 모두가 멘붕일 때도 있었다. (어째 적다 보니 힘든 일이 많았네 흐흐)


하지만 6개월 텀으로 새로 들어오는 인턴들끼리 '인턴'이라는 직책 하에 동질감을 느끼며 형성된 유대감을 즐겼을 때에도

직장 일과 상사 문제로 힘들어할 때 자기도 그랬다며 조언을 아낌없이 해준 직장 동료들과의 시간도

새로운 프로젝트에 들어갈 때 그리고 그 프로젝트가 시장에 출시되었을 때, Unpacked를 실시간으로 보면서 희열감을 느꼈을 때에도

대기업 협력사에 다니면서 배울 수 있는 대기업의 문화와

미국이라서 배울 수 있는 미국의 기업문화까지

생각보다 얻어 갈 수 있는 게 많았다.


솔직히 시원섭섭할 줄 알았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갔던 오피스라 그런지 그냥 느낌이 그랬다. 하지만 다시 한국에 돌아가고 코로나가 끝난 후 "코로나 때 어땠지~"라며 이야기를 꺼낼 때면 이때가 정말 그리울 거라고 확신한다.



미국도 그랬다.

이때 이랬지라며 지난 미국 여행의 기억을 더듬으며 나 홀로 추억 여행을 할 수 있었고

함께 추억 여행을 하고자 실시간 사진을 공유하며 "우리 이때 여기 함께했잖아!" 라며 오랜만에 연락을 하기도 했고

기억에 있던 뉴욕의 음식점과 박물관, 필라델피아의 치즈 스테이크를 먹으며 '아 이랬지. 아 이렇게 변했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1년이라는 물리적인 시간은 참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하더라.

새로운 습관을 들일 수 있고

사람이 바뀔 수 있고

많은 사람들 진득하니 오래 만날 수 있고

그래서 가볍게 4개월이면 한 두 사람만 알았을 텐데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까지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1년이라는 시간 덕이 아닐까 싶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3년 같은 반을 하면서 느낀 건 어떠한 물건을 볼 때 '아 이거 민정이 스타일인데' '아 나영이가 만두 못 먹었는데'와 같이 그 사람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참 깊이도 느낄 수 있었다.



나를 많이 돌아봤다.

25살,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난 생각보다 한국음식을 좋아하고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게 힘들지 않지만 혼자 사는 게 쉽지 않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울기만 하고 잘 해결하기 어려울 만큼 어리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고

요리를 잘하고 

빨래를 정말 자주 하고

꼼꼼한 성격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더 사랑하게 된 계기라기보다,  스스로를 미워하는 시간이   길었다. 그게 나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내게는 귀한 시간이었다.




한인교회가 교회라기보다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 특색이 강하다는 것

미국은 결혼하는 평균 연령이 정말 낮다는 것

학생과 직장인 사이에는 나이가 같아도 대화가 어렵다는 것

영어를 잘해도 그 문화와 은어까지 따라잡기 힘들다는 것

경상도 남자 인턴들의 특징도 알게 되고

친했다고 생각했는데 연락이 멀어진 혹은 예상치 못하게 더 친해진 관계들이 생긴 것

미국인 메리 할머니와 인도인 난다니와도 영어로 대화하며 농담할 수 있게 된 것


새로이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퍼듀를 다녀왔을 때도 브런치에 쓴 말이지만 모른 체로 시작했기 때문에 이만큼 얻었지 않았나 싶다. 겁 없이 도전했고 모든 것을 쉽게 흡수할  있었다. 지금 상태로 미국을 떠날 때로 돌아가고 싶냐고 한다면, (글쎄 더 잘 살았을 수도 있겠지만) 아니. 그러기 싫다. 많이 놀고 시간을 때우며 보내긴 했지만 열심히 버텼고 열심히 살았다.


한국을 돌아갈 생각을 하니 솔직히 너무 두렵다. 게으르고 생각 많고 엉덩이 무겁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많은 나이인 이십 대 중반인 내가, 더 열심히 살 수 있을까.

미국에서 시작하고 끝을 못 맺은 일들이 자꾸 생각나, 나를 더 힘들게 한다.

앞선 두 번은 돌아갈 학생이라는 신분이 있었는데 이제는 백수만이 내게 남은 것 같다.

앞만 보고 가야 하는데 자꾸 돌아보기도 하고 하하.


끝을 맺었다.

하지만 곧 끝이 보이지 않는 취준의 시작이라 한국 가기가 참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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