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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나 Mar 31. 2022

이기적인 직원이 되고 싶다

대표님 말씀, 잘 알겠고 무시할게요.

토요일 오후 2시였나 3시였나. 낮잠 자려고 침대에 누워서 뒹굴거리던 중 정말 오랜만에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안부 인사를 묻고, '저 곧 퇴사해요.'라고 말하기도 하며 즐겁게 통화하다가

"너 왜 퇴사했어? 앞으로 무슨 직무를 하려고? 네가 꿈꾸는 건 뭔데?"

갑자기 등에 땀이 쫘악 나고,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세워 긴장한 채로 전화 면접을 봤다. 그래, 이야기 나누는 게 아니라 면접 보는 분위기였다.


미국 J1 인턴 중에 알고 지냈던, 그분은 1, 2년 전에 형과 함께 창업을 했고 최근 투자를 받아 인재영입 중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회사의 복지를 말씀해주는데, 그게 가능한가? 싶은 복지였다.


이직하기로 했다.

끔찍하던 회사에 퇴사 의사를 밝히고 며칠 가시방석으로 회사를 다니던 중 오퍼를 받았다. 타이밍도 너무 좋았다. 퇴사하자마자, 조금 놀다가 입사할 수 있었다. 퇴사하지 못하는, 남아야 하는 이유들 중 가장 큰 '경제적인 문제'와 '취준생 신분'이 해결되었다.



대표님은 유명한 엔지니어이자 저자였다. 그래? 쓰신 책이 있다고? 그럼 읽어봐야지.

전화 면접과 화상 면접 때 들은 말도 안 되는 복지, 엄청 빨리(애자일) 진행되는 업무들, 그리고 역할 조직. 모든 단어들이 새로웠고 충격적이었다. 감이 전혀 안 잡혔다.

이기적 직원들이 만드는 최고의 회사에 다닌 지 4개월 차. 브런치 쓴다고 다시 책을 보니, 책이 참 회사 경영의 지침서이자 가이드북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서 강조하고 좋다고 하는 부분이 어떻게 회사 문화에 녹아져 있는지 한 번 정리해봤다.



회사는 내게

1. 회사에 나오지 말라고 했다. 네?!!

헐! 재택이라니!

대표님은 미국 서부에, 부대표님은 미국 동부에 거주하고 있는 게 가장 큰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본인이 편한 공간과 편한 시간에 근무하기에는 역시 회사라는 공간이 아닌 다른 곳이기만 하면 되지 않겠는가. 코로나 이전부터 오피스가 없었고, 지금도 여전히 100% 재택을 유지하고 있다.


2. 원하는 시간에 일하라고 했다.

아 물론, 집중 회의시간이 있긴 하다. 하지만 회의 시간 외에는 자율이다, 일주일에 40시간만 채운다면! (근데 40시간 채웠는지 확인도 안 함.. 헤헤)

회의하다가 지쳐서 오후 3시부터 쭉 잔 적도 있고, 느긋하게 점심시간 2시간을 즐기다가 일한 적도 있고, 새벽에 갑자기 삘 받아서 밤새 달려본 적도 있다.


3.  나만 생각하라고 했다.

그래도 되나요? 아니, 제가 을이긴 한데... 감히 갑을 걱정하게 되네요. 회사 운영이 되나요?

면접을 볼 때도 그랬다. '스스로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냐고. 그 미래에 우리 회사가 어떻게 도와주면 되냐고.'

그래서 나는 내 성장과 커리어를 말하고, 그걸 이루기 위해 회사에 어떤 걸 해보고 싶다고 답했다.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가장 큰 원동력은 뭘까? 회사의 성장? 회사 CEO의 인터뷰 개수? 아니, 내가 여기서 커리어를 쌓아 시장에서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우리 회사는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일하라고 한다. 그리고 다른 회사로 떠나도 된다고. 그러면 임원들이 붙잡기 위해 더 많은 보상을 이야기할 거라고.


회사가 아무리 보상을 챙겨줘도, 100% 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이번 주 이렇게 열심히 일해줬는데, 나한테 이것밖에 안 줘? 휴가도 못 쓰게 해?'와 같은 것 말이다. 연차와 반차가 무제한으로 자유롭다. 회사가 아닌, 내가 나를 챙길 수 있는 방안이다.

'저 이번 주 너무 고생해서 금요일은 하루 쉬어갑니다!', '은행 정리하고 싶어서 반차 냅니다!', '고양이가 아파서 병원 가봐야 합니다. 급한 안건은 전화로 말씀해주세요.'와 같은 문화가 너무 자연스럽다.

'날이 너무 좋아서 하루 쉴게요'라며 연차를 써보는 게 내 작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다. 곧 봄이니까 써볼 수 있을지도.



상사는 내게

1. "전문가는 뉴나님이니까, 뉴나님의 결정에 따를게요."라고 매번 말한다. 

심지어 대표님마저.. 아니, 대표님은 오히려 '저는 그렇게 가는 방향이 별론데.. 그래도 이 분야 전문가는 뉴나님이니까, 뉴나님의 판단력을 믿어요.'라고 한다.

근데! 만약! 제가 저를 못 믿으면..

역할 조직이란 그런 것이라고 한다. 한 명 한 명이 모두 전문가이기에, CEO가 다 결정할 필요도 없고, 결정할 수도 없는 조직.


2. 프로젝트를 리드할 권한을 줬다.

애자일하고도 애자일한 스타트업은,  여러 프로젝트들이 동시에 진행된다. 우리 회사는 역할 조직이라 신입사원도 전문가이다. 고로, 새로운 프로젝트와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생기면 누구든 프로젝트를 리드할  있다. 디자이너든, 개발자든, QA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입사하고 바로 프로젝트를 리드할 때는 정말 뚝딱거렸다. 웹/앱 배포 일정에 맞춰 프로젝트 일정 관리를 하는 것부터 작업자들을 섭외하고... 무엇보다 발표하는 거... 정말 쉽지 않았다.

나는 주현영 기자가 싫다.. 왜냐면 나한테는 유머가 아니기 때문이다.. 거의 실화임

"지난 킥오프 회의 때 나왔던 아젠다들을 정리해봤는데요! 혹시 추가 의견? 생각? 뭐 그런 거 있으신 분 있으신가욥?"

뚝딱거리는 전문가인  여전하지만, 프로젝트 리딩 덕에 회사 전반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 전 직원과 커뮤니케이션이 늘고 있으니 아주 좋은 기회이자 경험이라 생각한다. 지난번 글처럼, 이런 기회를 누가 신입에게 주겠는가. 하하.


3. 동료들로부터 피드백을 받게 했다.

수습 기간이 끝나고 재계약할 쯤에 몇몇 동료들에게 피드백을 받는다. 피드백 내용은 '이 사람 잘했음?'의 평가가 아니라 '지금 어떤 레벨로 보여? 이다음 레벨로 가려면 뭘 하면 좋을까?'와 같은 질문이 중점이다. 그래서 동료들의 피드백을 통해 '내가 이랬구나...'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랬으니까, 앞으로 이런 부분에 더 신경 써서 일해야겠다'라는 방향성이 명확해진다.



그래서 회사는

나를 이기적인 직원이 되게 한다. 내 삶과 내 커리어만 신경 쓰는, 그런 직원이 꼭 되어야 한다고 한다. 

뉴나님! 회사를 위해 뭘 할까 가 아니라, 회사가 나한테 뭐 해줄 수 있을지 생각하세요!

이기적인 게 미워보이지 않기 위해 그만큼 내 업무와 내 역할에 대해 당당하고 자신이 있어야 하니까. 뽀시래기는 '뉴나님 = 하나의 전문가'라고 부를 때 심장이 떨린다. 일을 많이 해도, 내가 감히 전문가인가? 내가 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연차와 휴가에 망설이게 된다. (그래 놓고 꼬박꼬박 잘 씀)

CEO의 말도 하나의 의견이라는데, 하나의 의견에 밑줄이 쳐지는 게 아니라 CEO에 밑줄이 쳐지는, 나는 아직 '한국 기업문화'가 익숙한 사람이다.


p.146 겸손한 일꾼 vs. 자신감 넘치는 전문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겸손하게 이렇게 대답한다. (중략) 전문가로서 엄청나게 무책임한 발언이 되어버린다. (중략)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 역시 이러한 자세로 면접을 보는 것이 당연하며, 그들을 전문가로서 활용하는 조직에 입사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루에 자소서 2개씩 쓰던 때에는, 얼마나 내가 조직에 빨리 융화되어 습득할 수 있는지, 그래서 내가 다양한 경험을 해봤고, 새로운 걸 시키면 빨리 적응할 수 있다고, 마치 도화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많이도 강조했다. 하지만 이 회사에서는 내가 무슨 색인지 묻는다. 그리고 자신의 색에 맞는 일을 찾아서 하라고 한다.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 쉽지 않다. 내 일에 당당하게 의견을 표출하고, 단호하게 일하는 게 쉽지는 않다. 그러나 이런 조직 문화 속에서 감히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드니 더 노력하고 싶다. 더 당당하게, 더 전문가답게, 더 이기적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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