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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금요일 Jul 10. 2018

물건에 관하여-2

- 잘 보이지 않는 돋보기안경을 찾습니다.  

새로 맞춘 안경도, 돋보기도 늘 노모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이렇게 세상이 뿌옇기만 하느냐고, 날마다 먼지가 둥실둥실 떠다니는 것만 같다고 불평을 하기 시작하더니, 안경의 초점이 안 맞아 어지럽다, 테가 머리를 꽉 조여 아프다, 코 받침이 무겁다, 등등의 컴플레인 사유가 칠씩 번갈아 등장했다. 몇 차례 안경점을 찾아 애프터서비스를 받았지만 노모의 불만은 잠들지 않았다. 더 난감한 것은, 그녀가 내놓는 문제해결 방법에 있다. 아주, 아주 옛날에 다녔던 안경점 이야기를 슬쩍 꺼내는 것이다.  

“그때 그 양반이 안경을 딱 맞게 해줬어. 딱 쓰니까 막 시원하고 환하더라고.”

나는 짐짓 못들은 척 한다. 그래도 자꾸 이야기가 쌓이다보면 미간에 주름이 잡힐 때도 있다.

“거길 어떻게 가요?”

“얘는, 누가 거길 가쟀냐? 거기가 그렇게 잘했다는 거지.”

거기가 그렇게 잘했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노모의 말을 백 프로 신뢰하여 그곳에 가고 싶어도, 우선은 서울행 비행기 티켓부터 구매해야 한다. 공항에 내려서는 리무진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쯤을 가서 다시 또 마을버스에 올라야 하는데,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그 안경점이 현재도 영업을 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그렇다. 벌써 10년도 더 전에 그곳에서 노모는 외출용 안경과 돋보기를 하나씩 장만했고, 간간히 관리를 받곤 했다. 안경점 주인장께서 나름대로 정성을 다하였다는 것을 알지만, 오로지 그 안경점만이 노모에게 맞는 해법을 갖고 있지는 않을 터이다. 원한다면 서울 유람하는 셈치고 하루 날 잡아 다녀올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런데 꼭 안경의 문제인지에 대해서 나는 확신이 없다. 우선 그녀는 벌써 4년 전에 양쪽 눈 모두 백내장 수술을 했다. 십년 전에도 여전히 노인이긴 했지만, 지금보다는 조금 더 성한 곳이 많은 할매였다. 노모의 관절처럼 노모의 눈 역시 회복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이 들고 있다는 게 이모든 불평과 불만의 근원적인 문제일 것이다. 나는 속 시원하게 그 원인을 제거할 수가 없다. 누구라도 그럴 수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바람이 잘 들지 않는 날이었던 것 같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장롱 저 깊은 곳으로 손을 뻗어 무엇인가를 한참 뒤지던 노모가 돋보기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미 15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것이었다. 말하자면 유품인 셈인데, 나는 그것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노모가 그걸 쓰더니, 내게 큰 소리로 감탄을 한다.

“야~, 잘 보인다. 정말 시원시원하게 잘 보여!”  

그러고 나서는 덮어두었던 성경도 펼쳐서는 몇 줄 큰 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사정이 어찌되었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애써 이 상황의 신파적 요소를 찾아내려 하지도 않았다. 노모의 방문을 닫은 뒤, 하던 설거지를 마저 하고, 커피를 한 잔 마시려던 순간이었다.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경은 오래 읽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이제 더 이상은 세상에 없는 남편의 돋보기안경을 쓴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거울 앞에서 뜯어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말했다.  

“얘, 근데, 이걸 끼고 거울을 봤더니 내가 왜 이렇게 주름이 많고 폭삭 늙었냐?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내가 이렇게까지 늙은 걸, 너도 알고 있었어?”

아뇨, 엄마, 몰랐어요. 내가 나중에 그 돋보기를 쓰게 되면, 그래서 알게 되면, 그때 얘기해 줄게요. 엄마, 그거 쓰지 말아요. 그냥 먼지가 많은 세상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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