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화 Mar 25. 2024

이거 정말 장관이다! 가관이다?

말귀가 어두운 당신을 위한 처방전

얼마 전 재미있는 숏폼 콘텐츠를 보았습니다.

과거 <무한도전> 영상인데요.

<무한도전>에서 멤버들이 높은 건물에 올라갑니다.

엘리베이터에서 투명창으로 보이는 야경이 정말 멋집니다.




*길: 와~ 정말 가관이다!


*유재석: 아니, 장관, 장관!


*정형돈: 진짜, 가관이다!


*길: 제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표현하면 안 돼요?

      저만의 세상이 있어요.





아주 짧지만 의미 있는 장면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길'의 어록이라고 부르며 짧은 편집 영상을 돌려 봅니다. 우선 '이 영상이 왜 재미있는가?', 이 부분을 생각해야 합니다. 왜 길이 다른 출연자들에게 갈굼을 당하는지, 어느 지점이 웃기는지 모르겠는 분도 있을 거예요. 보면 길도 당당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외국 방송을 볼 때, 조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함께 웃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웃는 사람들의 배경음이 깔려 있는데, 왜 웃기는지 잘 모르겠는 상황입니다.


유머 영상으로 올라와 있는 것을 보면, 많은 모국어 능력자들이 유재석에 빙의해서, 길의 순수함(?)을 바라볼 거예요. 조금 유식하신 분들은 '가관'은 비웃을 때 쓰는 말이고, 여기서는 '장관'이라는 표현을 써야지! 하며 훈장 역할도 가능합니다. 옆에서 정형돈이 "진짜 가관이다!"라며 거들기도 하니까요. 심지어 어휘력 부족, 무식함 등등의 댓글이 달리기도 합니다. 요즘 핫한 문해력 이슈와도 연결되죠. 길의 다른 어록(?)이 많기에 실수가 아니라 실력이라는 의견에 신빙성이 있습니다. 


그럼 길의 어휘력은 정말 문제인 것인가? 네이버 국어사전(표준국어대사전)에 검색해 보겠습니다.


가관(觀)

1. 경치 따위가  볼만함.

(예) 내장산의 단풍은 참으로 가관이지.


2. 꼴이 볼만하다는 뜻으로남의 언행이나 어떤 상태를 비웃는 뜻으로 이르는 .

(예) 잘난 체하는 꼴이 정말 가관이다.


장관(壯觀)

1. 훌륭하고 장대한 광경.

(예) 장관 이루다.


2. 크게 구경거리가  만하다거나 매우  보기 좋다는 뜻으로남의 행동이나 어떤 상태를 비웃는 .

(예) 술에 취해 아무렇게나 곯아떨어져 자고 있는 그의 모습은 가관이다 못해 장관이었다.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가관'에도 '장관'과 비슷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문에 있는 "내장산의 단풍은 참 가관이지~"는 "여기 야경이 정말 가관이지~"로 바꾸어 쓸 수 있을 정도로 맥락이 비슷해요. 심지어 '장관'과 '가관'은 유의어로 연결되어 있기도 해요. 팩트체크를 하자면, 굳이 따지고 들자면 ~ 길은 무죄(?)입니다. 


그럼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왜 웃는지, 이것이 틀렸다고 생각하는지 짚어봐야겠죠. 그것은 어감에 있습니다. 이 '감'이란 것이 객관적 근거보다는 주관적인 판단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하지만 모국어는 생활 속에서 노출된 언어를 중심으로 배경지식이 쌓이기 때문에 이 '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정확히 문법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뭔가 어색한데...? 이런 감을 통해서 '장관'은 훌륭한 광경이고, '가관'은 비웃는 말이라는 판단을 한 것이죠. 


실제 사전에 객관적 근거가 있으니까, 우리 모두 '가관'을 자유롭게 써도 될까요? 또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언어 사용에서 이런 뉘앙스는 무시할 수 없어요. 결국 사람과 사람이 대화하는 상황에서 의도한 내용과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이야~ 너 진짜 가관이다!"라고 했을 때, 화자가 칭찬으로 한 말이라도, 청자는 기분이 상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 가관은 사전적 의미로 이러이러한 뜻이야~ 설명해도 이미 상한 감정을 되돌리기 쉽지 않아요. 


그럼 이런 감을 기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선 책을 많이 읽으면 좋습니다. 문어체로 쓰인 책은, 구어체인 대화보다 고급 어휘가 많아요. 그리고 완전한 문장 구조로 작성되어 있습니다. 대화할 때 많은 부분을 생략하는 것과 차이가 있어요. 이렇게 갖추어진 문장들을 꼼꼼하게 정독하고, 이해하면서 읽으면 나중에 빈칸이 생겨도 스스로 채울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생략된 대화에서, 스스로 완전한 문장을 만들 수 있는 추론 능력이 생기는 것이죠. 그 안에서 미묘한 뉘앙스도 좀 더 잘 이해됩니다. 


책을 많이 읽을 수 없다면, 한 권이라도 소리 내어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소리 내어 읽다 보면 눈으로 읽는 것보다 속도도 조절되고, 귀로도 되새기게 됩니다. 이렇게 글자를 소리로도 반복 인식하면, 듣기 환경에서도 더 익숙해질 수 있어요. 그리고 억양이 또 포인트입니다. 같은 글자도 억양에 따라 뉘앙스가 다르죠? 스스로 의미를 이해하며 억양까지 흉내 내면 더 좋아요.


예를 들어, "자?" 한 글자도 다양한 의미가 있습니다!

(눈 감고 있는 친구에게) 자?, 궁금해서 묻고요.

(청소도 안 하고, 벌써) 자?, 꾸짖는 의미도 있고요.

(뭔가 아쉽고 애타서) 자...?, 그리워하는 의미도 있고요.

(졸린데 주변이 시끄러우니 얼른) 자!!!,라고 지시하는 의미도 있고요.


그리고 대화를 많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절대적인 언어 노출량을 늘리는 것입니다. 내가 혼자 생각하고 있으면 그 언어의 세계가 좁아집니다. 그 언어를 활용해서 상대방과 상호작용을 할 때, 언어를 고르게 되고 적용하게 되고 피드백도 받게 되죠. 그래서 아이들은 어른들과 대화를 많이 할 때, 고퀄리티의 언어 자극을 계속 받으면서 언어 능력이 급상승하기도 해요. 방송에서 보면 어른처럼 대화하는 아이들을 종종 볼 수 있죠. 인생 2 회차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다 상호작용 덕분입니다. 어떤 뉘앙스로 활용되는지 직접 느낄 수도 있으니까요. 대화 속에 '가관, 장관' 같은 고급 어휘들이 들어가 있을수록 내 안에 있는 언어의 세계가 넓어지기도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서모임에 가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