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김에 독서모임
'독서모임' 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있나요? 몇몇 분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독서모임에 대한 고품격(?) 환상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알쓸신잡>의 영향 같기도 한데, 책을 두고 불꽃 튀는 지적 대화의 향연을 생각하곤 합니다. 굉장히 좋은 오해라고 생각하지만, 이 부분이 누군가에게는 장애물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몇 가지 오해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 독서내공 만렙인 사람들만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것이다!?
물론 일부 맞습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습니까. 저같이 책을 어마어마하게 좋아하는 분들이 독서모임에 참여하며 지적 유희를 즐기기도 합니다. 한 달에 10권씩 읽으며 두 세 개의 모임을 소화하는 분들도 있죠. 너~무 많이 먹으면 어떻게든 밖으로 빼내야 하는 것처럼, 입력한 지식을 출력하기 위해 모임에 참여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빼내지 않으면 근질근질하니까, 이해합니다. 저또한 그럴 때가 있고요. 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알쓸신잡>에서 전문 지식을 설파하는 교수님들이 있는가 하면 유희열이나 장항준처럼 잘 들어주고 적절히 반응해주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적어도 책을 많이 읽어야만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정된 책을 읽고 올 수 있는 의지만 있으면 돼요. 의지라고 표현한 것은, 능력이 뛰어나도 의지가 없으면 시간을 내기 힘들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의지가 있으면 시간을 내서 읽고 이해하고 탐색할 수 있습니다. 그럼 독서모임에서 나누는 대화에서 소외되지 않고 즐겁게 참여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의 독서내공보다 앞으로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꼭 챙겨 주세요.
오히려 이 의지를 자극하기 위해서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분들도 많아요. 1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모임원도 그나마 독서모임을 해야 한 달에 한 권이라도 읽는다고 참여 이유를 말합니다. 아주 당당하게 말해요. 그분에겐 독서모임이 하나의 챌린지 같은 것이죠. 그만큼 독서내공 만렙만 오는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각장 모인 이유는 다양하고, 그 다양성이 모임의 매력이니까요.
여러분이 독서전문가일 필요는 없어요. 작가만큼 그 책에 대해서 많이 알 수도 없죠. 하지만 여러분은 자신의 삶에 대한 전문가입니다. 그 경험과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꺼내면 돼요. 모두가 논문을 읽고 비평가가 되어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면 그것 또한 너무 퍽퍽할 겁니다. 오히려 모임원들의 살아 있는 목소리, 통통튀는 감상이 더 매력적인 이야기로 들리기도 합니다. 따지고 보면... 생각보다 책 이야기만 하지도 않아요. 여러 인생 이야기가 뒤섞입니다. 그러니 과한 자기검열은 하지 마시고, 자신감 있게 독서모임에 참여하세요!
책은 부담인데, 지적인 대화는 해보고 싶다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요. 하지만 지적인 대화는 살면서 꼭 경험해보고 싶어요. 그때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지적인 대화는 독서모임에서만 가능한가...?'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죠. 대화의 주제는 다양하니까요.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며 유연한 모임들이 많이 생기고 있어요.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 넷플릭스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 신문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 등등 다양합니다. 우선 독서모임 앞단계로 이런 모임들을 경험해 보세요.
제가 10년 전에 영화 모임을 연다고 했을 때 들었던 말이 있어요. 영화를 보고 도대체 1시간 넘게 무슨 이야기를 나누냐는 겁니다. 영화는 가십거리, 시간 때우기, 웃고 즐기면 그만인 미디어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반응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영화도 읽을거리가 많고, 나눌 생각거리가 많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해요. 하나의 예술이니까요.
그 이후에 웹툰 모임도 만들어 봤어요. 그때도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웹툰도 다양한 생각거리를 담고 있고, 우리는 그 부분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리고 <죽음에 관하여>, <데이빗> 등 철학적 가치를 담은 웹툰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지금은 다양한 커뮤니티 플랫폼에서 유튜브 영상, 넷플릭스 영상, 게임, 음악, 술, 운동 등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모임의 종류가 많아지면서 사람들의 선택 폭도 넓어졌어요. 무엇이든 읽을거리고, 무엇이든 대화거리라는 사실을 기억해 주세요.
그래도 저는 독서모임을 지지합니다. 그래서 앞단계라고 말씀드렸어요. 이런 모임을 거친 후에 독서모임에 입성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거든요. 하지만 독서가 절대적이지는 않습니다. 무지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요. 그런 면에서 책이 걸림돌이 된다면 여러 가지 대안이 있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