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리즘에 빠진 독서모임 구하기
요즘 회의실에서 음성을 텍스트로 변화해 주는 네이버 클로바 노트를 자주 활용합니다. 따로 기록하는 서기 없이 클로바 노트로 녹음을 한 후에, 텍스트로 변환한 회의 내용을 공유하는 식입니다.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필요한 부분을 찾아 읽을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전담 서기 역할이 있었다면, 지금은 기술이 그 역할을 해줍니다.
이런 역할이 필요한 이유는 대화의 휘발성 때문입니다. 따로 잡아두지 않으면 대화는 스치듯이 사라집니다. 독서토론과 글쓰기의 차이로도 이어지는데, 이 휘발성을 극복하는 과정이 꼼꼼한 후기입니다. 독서모임에서 녹음까지 하는 방법은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앞에서 간단한 기록법을 나누었다면 이번엔 좀 더 체계적인 후기 정리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미리 나눌 질문을 바탕으로 틀 정하기
즐겁게 모임을 하면서 기록도 동시에 할 수 있을까요? 어떤 분들은 기록과 메모가 대화에 오롯이 집중하는데 방해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모임 중간에는 상대방의 목소리, 분위기에 집중하고 손에서 펜을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또 다른 분들은 기록과 메모를 하면 집중도가 올라가고 더 잘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스스로 중요도를 판별하고, 우선순위를 생각하며 정리하는 것이라 몰입도가 높다는 거죠. 들으면서 기록하는 모습이 말하는 사람에게 경청의 신호를 전달하는 장점도 있다고 합니다.
저는 후자를 지지합니다. 기록과 메모를 하면서 들으면 더 집중도도 올라가고 알찬 내용도 간직할 수 있습니다. 대신 이 과정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필사하는 마음으로 듣고 다 받아 적으면 소리를 따라잡을 수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이야기를 높이게 됩니다. 대화 중간에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정리하고, 다음에 내용을 떠올리며 살을 붙이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듣고 남기려면,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는 기준에 따라 상대적이기 때문입니다. 독서모임에서는 책의 내용과 이를 바탕으로 한 질문이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리 준비된 질문이 있다면 이 질문이 중요한 틀이 됩니다. 이 틀을 미리 구성하고 그 안에서 멤버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취할 것과 버릴 것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행에 대한 책을 읽고 여행 전과 여행 후가 달라진 경험을 이야기하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럼 멤버들은 여행을 가기 전에 갈등부터,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여행 후의 피로와 여운 등등을 이야기할 겁니다. 이런 내용을 들으면서 그분의 여행에세이를 적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 적을 필요가 없습니다.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서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그 나라의 발달한 모습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는 내용을 들으면서 간단히 ‘베트남 여행’, ‘베트남에 대한 편견이 사라짐’ 정도만 적어도 됩니다. 나중에 다시 정리할 때 살을 붙여도 좋지만 들으면서는 나중에 연상될 정도로 간단히 기록하면 됩니다.
질문의 의도,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틀을 잡고 키워드를 뽑는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말하는 사람이 길을 잃고 샛길로 빠져도, 집중해서 듣고 있으면 그것을 감지하고 다시 돌아오게끔 유도할 수 있습니다.
나의 생각과 상대방의 생각을 구분하기
독서모임 관련 논문을 쓰기 위해 동의하에 독서모임 대화를 녹음하고 기록한 적이 있습니다. 열심히 정리해서 쓴 후기와 녹음한 내용이 다른 순간이 있었습니다. 결국 요약하는 과정에서 정리하는 사람의 주관성이 개입되었던 거죠. 완벽하게 중립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 차이나는 상황을 직면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의 생각과 비슷한 것들을 위주로 적거나, 낯선 의견을 덜 중요한 것으로 치부하고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뉘앙스를 살짝 오해해서 내가 이해하기 쉬운 방향으로 옮기기도 했습니다. 인간은 정말 편향적으로 사고하는구나,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 이후로 주관과 객관을 분리하는 기록법을 구상했습니다.
새로운 기록법의 이름은 아이유(I & You) 기록법입니다. 가수 이름과 같지만, 의미는 나와 너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나와 너를 합쳐서 우리가 되기 전에, 분리에서 기록을 우선 하겠다는 의지입니다. 이후에 우리(We)로 합치는 과정은 나누어서 전개합니다.
노트를 반으로 나누어 왼쪽은 I, 오른쪽은 You 코너로 만듭니다. 그리고 왼쪽에는 미리 준비된 질문에 대한 ‘나’의 생각을 모임 전에 한번 정리합니다. 이 과정이 굉장히 의미 있습니다. 머릿속으로 간단히 떠올리는 것과 언어로 구체화해서 표현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애매하게 떠올린 생각은 다른 멤버들의 생각을 들으면서 섞이기도 하고, 밀어내기도 하며 방향을 잡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멤버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한번 정리해 두면 좀 더 명료한 생각과 메시지로 정리됩니다. 독서모임 중간에는 오른쪽에 다른 멤버들의 이야기를 키워드 중심으로 정리합니다. 왼쪽에 나의 생각을 분리해 두었기 때문에, 쉽게 침범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롯이 상대방의 메시지를 듣습니다. 그리고 모임이 끝난 후에 나와 상대방의 생각을 함께 후기에 정리합니다. 모두 나와 동기화되지 않은 여러 이야기들이 생각의 다양성을 잘 표현해 줍니다.
화자와 텍스트를 연결하여 정리하기
앞에서 이야기한 나와 상대방을 분리하는 것의 다음 단계는 상대방을 개별 화자로서 다시 한번 정리하는 과정입니다. I & You (A, B, C, D, E)처럼 구분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또 장점도 있습니다. 멤버들의 성향, 결에 따라서 발언이 연결되는 것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캐릭터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디지털 독서플랫폼 밀리의서재에서 ‘톡후감’ 콘텐츠를 2년간 제작했습니다. 독후감을 넘어 모임(Talk) 후 감상을 채팅형 콘텐츠로 구성하는 기획인데, 20회 이상의 모임을 콘텐츠화했습니다. 생생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 카카오톡 채팅처럼 구성을 하며 후기를 남기는데, 쉽지는 않았습니다. 앞에서 나와 다른 사람을 구별하는 과정에서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또 개별적으로 구별해서 발화자와 메시지를 또 연결해야 했습니다. 누가 – 무슨 말을 했는지, 나누어 정리하다 보니까 캐릭터가 분명해지는 장점은 있었습니다.
고정된 멤버와 모임을 오래 했다면 멤버별 캐릭터가 어느 정도 파악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플랫폼형 모임에서 매번 다른 사람들과 모임을 한다면 파악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름의 팁을 생각했습니다. 처음 자기소개할 때, 앉은 위치를 그림으로 표현합니다. 모임장을 중심으로 누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떠올릴 수 있도록 나타내는 겁니다. 교실이나 사무실에 있는 배치도와 같은 방식입니다. 그리고 제 위치를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A, B, C, D, E 처럼 기호를 정합니다. 그리고 그 기호에 맞는 분들이 발언을 할 때 기호를 포함해서 기록하면 발화자와 메시지가 연결됩니다. 처음에는 복잡하다고 생각했는데, 콘텐츠 제작을 위해 집중해서 기록하다 보니까 익숙해졌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메시지를 누가 말했는지는 중요한 요소니까요. 채팅형으로 후기를 기록하며 멤버들의 캐릭터성도 분명해지고, 좀 더 생생한 형태의 기록이 되었습니다. 앞에서 내용을 충실히 담은 독서모임 후기에 대한 많은 평가가 ‘독서모임에서 어떤 내용이 오고 갔는지 이해가 잘 된다’는 식이었다면 톡후감에 대한 평가는 ‘실제 모임에 참여하는 느낌이 들었다’는 식입니다. 둘의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지금까지 독서모임 기록을 난이도별로 정리해서 알려드리고 있습니다. 체급에 맞게, 상황에 맞게 골라서 기록하시면 됩니다. 후기가 부담이 되어서 모임을 하지 않는, 주객전도 현상은 절대 생기면 안 됩니다. 대신 후기가 모임을 지속하는데 큰 자산이 된다는 것은 명심해야 합니다.
이미지와 영상 남기기-> 기본 정보 글로 남기기-> 감상 더하기-> 틀을 정해 내용 충실히 정리하기-> 나와 상대방 생각 구분하여 정리하기-> 채팅형으로 생생하게 정리하기
- 이렇게 하세요.
1. 미리 나눌 질문 바탕으로 틀 정하기
2. 나의 생각과 상대방의 생각을 구분하기
3. 화자와 텍스트를 연결하여 정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