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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범 May 02. 2020

시골에선 생일을 음력으로 지냅니다

"어째, 벌써 올라가려고 그래 아들"


샤워를 하다, 문득 내일 자취방으로 돌아가야겠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엄마를 만나러 경상도 김천에 내려온 지 불과 5시간 만입니다.




엄마와 집밥을 먹은 지도, 어느새 미용실을 네 번 정도 다녀올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 여사님은 올해 초와 비교해  살이 조금 오르셨습니다. 고향집으로 내려오신지는 일 년이 채 안되셨습니다. 불빛 없는 산골로 오셨습니다. 엄마 고향집입니다. 할아버지 수발을 드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참 엄마와 많이 붙으셨습니다.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 다니시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싸움을 자주 붙으셨습니다. 그만큼 잔소리가 잦으셨던 기억입니다. 엄마도 한마디 안지는 성격이니, 정겨운 고함이 이리저리 투포환처럼 날아다녔습니다.


할아버지 잔소리는 작년 겨울 끊어졌습니다. 엄마는 아직 시골집에서 지내십니다. 도시 아줌마는 시골 아지매가 됐습니다. 새치 염색을 일주일에 한 번씩 하시던 분이, 희끗한 머리를 이틀은 감지 않으십니다. 화장품은 기초가 중요하시다면서 밭 매러 나가실 땐 모자를 쓰지 않으십니다. 밭이라고 해봐야, 깻잎이나 상추 몇을 심은 한 평정도 땅입니다. 은은하게 그을린 피부가 엄마 아가씨 때 모습과 닮았습니다. 검은색 중고 모닝 운전석에서 내리는 엄마 모습을 오래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손을 흔드시기에 같은 템포로 흔들었습니다. 그게 답니다.


농협에서 돼지고기를 끊어다, 수육을 먹었습니다. 집밥이라고 하죠. 오래간만입니다. 김장김치에 고기반찬입니다. 김장 김치 맛이 꽤 그럴싸합니다. 엄마는 분명 김장에 약했는데 말입니다. 고향 생활 때문일까요. 김치가 아삭아삭하면서 은은하게 삭힌 맛도 납니다. 잘 익었습니다. 언젠가 이번 김장김치에 대해서 높은 평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고든램지를 떠올리는 자신감을 엄마의 어깨에서 봤습니다. 김장김치는 엄마 손으로 담겼습니다. 김치는 엄마가 엄마일 수 있는 지점이지 않을까요. 엄마는 분명 자취방 냉장고에 언제나 있었습니다.


아들, 언제 올라가려고 그래

엄마는 열에 여덟 번은 밥 먹은 뒤 일정을 물어보십니다. 이틀은 있다가 갈 생각이라,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연휴가 길어서 조금 여유 있게 내려왔다가 올라갈 예정이었습니다. 자취방은 칙칙하고 외롭기도 했던 거죠. 시골집은 어둡고 고요하긴 해도, 엄마가 있으니까요. 따뜻하고 아늑하기도 하죠. 불편한 구석이 있어도, 다른 부분들이 이를 상쇄시킵니다. 무엇보다 조금 지치기도 해서, 며칠 쉬어 가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고스톱을 몇 판 치고 샤워했습니다. 네, 내일 자취방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이때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오후 2시 50분 버스를 타고, 여기에 6시에 도착했습니다. 샤워는 밤 11시쯤 했을 겁니다. 귀소본능이 발휘될 때까지 얼추 5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면서 귀가 의사를 밝혔습니다. 드라이기 바람에 날려 말했습니다. 스스로도 말하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오죽했을까요. 거듭 물어보십니다. 드라이기 전원을 끄고, 말했습니다. 왜 벌써 올라가려고 하냐는 질문이 날아왔습니다. 답 못했습니다. 거창한 이유를 만들다 관뒀습니다. 몰라서 모르겠다고 답했습니다. 엄마는 알았답니다.




새벽 두 시입니다. 촌이라 그런지, 노트북 화면에 작은 좁쌀벌래들이 달라붙습니다. 내일 아침은 소고기 미역국입니다. 엄마 생일은 4월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시골은 아직 생일을 음력으로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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