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오늘질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범 Aug 19. 2022

혹시 운동 좋아하세요?

저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기로 했거든요.

“혹시 운동 좋아하세요?”


언젠가부터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 단골질문이 나타났습니다. 운동이죠. 


운동을 좋아하냐곤 여럿이 묻습니다.

여기서 ‘좋아한다’에 대한 감도는 모두가 달라요. 축구로 예를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매주 새벽 밤잠을 설쳐가며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챙겨보는 경우, 축구를 사랑해서 주말마다 조기축구 모임을 나가는 경우. 더 나아가면, 축구 봉사나 사회인 리그에 뛰어드는 경우까지. 그밖에 헬스장을 꾸준히 나가는 경우, 집 앞 호수 공원을 매일 뛰어다니는 경우, 미라클 모닝을 실천한다는 명목하에 백색소음을 틀어놓고 요가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양한 운동 생활들이 자리하는 것이죠. 만약 앞선 경우들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운동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대체로 ‘그렇다’라고 답하지 않을까요.


언젠가부터 운동을 좋아하냐는 질문의 행간에 숨은 의도가 자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운동 생활을 묻는 건 ‘근면성실한 생활을 보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겠다는 작은 의심입니다. 질문 하나로 상대를 판단하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지요. 운동을 좋아하냐는 질문은 ‘당신은 꾸준하게 무언가를 하고 계신가요.’ 또는 “당신은 자신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나요.”로 바꿔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운동 질문에 긍정하는 사람의 입가엔 미묘한 자신감이 서린 미소가 보이기도 합니다. 조금은 거친 해석일까요. 과도하게 비판적인 시각일까요. 


이러한 배배꼬인 사고를 지니게 된 이유는 운동이 취향의 영역에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취향의 감도를 울부짖는 사회에서 운동은 꽤나 매력적인 소재입니다. 아파트 불빛이 비치는 어둑한 한강 공원에서 러닝을 하는 모습이나 운동 어플리케이션에서 부여하는 목표 달성 뱃지를 자랑하는 모습처럼 운동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어느 문화평론가가 말했듯,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는 법이죠. 


만남 어플리케이션에서는 운동은 아예 큰 카테고리 중 하나로 빠져나왔습니다. 

기존에는 퇴근 후 또는 주말 취미 중 하나로 ‘운동’이라는 선택지 하나가 있었다면, 이제는 운동 중에서도 여러 갈래를 선택할 수 있게끔 카테고리를 확장했죠. 방금 둘러보니, 요즘에는 등산, 테니스, 골프, 클라이밍, 필라테스, 요가가 유행이네요. 취향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서비스인만큼 역시 발빠르게 움직였습니다. 


“네 좋아해요.”

“아 정말요? 무슨 운동하세요?”


“헬스장을 다녀보려곤 했는데, 실패했어요. 대신에 밤에 도림천을 뜁니다. 운동을 한다기 보다는 그냥 무작정 뛰어요. 메탈리카나 AC/DC 노래처럼 기타로 세상을 부셔버리는 그런 노래를 들으면서요. 스트레스가 풀리더라고요. 00님은 스트레스 받을 때 어떻게 하세요?”


운동을 좋아한다고 대답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말로 뱉는 것만큼이나 가벼우면서도 쉬운게 있을까 싶을 정도예요. 저의 운동에 대한 감도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도림천을 뛰는 수준입니다. 취향을 통해 매력을 발산하기엔 미약하죠. 그래서 황급히 화제를 돌립니다. 누구보다 신속하게 더 이상 운동에 대한 대화가 이어지지 않도록 싹을 잘라버리죠. 물론 운동을 좋아한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그 말이 입 밖으로 부단히 나오지 않는 까닭은 앞서 주저리주저리 적었던 생각들 때문일겁니다. 좋아하지 않는 걸,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는게 참 부끄러웠어요.


언젠가 만났던 친구가 생각이 납니다. 

운동이 ‘맛있다’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게 맛있는 건 감자탕과 기네스, 던힐 뿐인데 말이죠. 운동의 맛을 맛보고 싶었어요. 그 친구에게 점수를 따기 위해서였죠. 미라클모닝을 실천하며 사진도 보내고, 오늘의 운동에 대한 후기, 중량을 소위 ‘치는 방법’에 대한 토의도 서슴없이 했습니다. 하체 운동을 하고 고라니처럼 걸어 다니는 경험, 보다 더 무거운 덤벨을 들기 위해 처절히 사투하는 경험도 모두 그 친구 덕에 겪어봤습니다. 돌이켜보면 진심이 아니었어요. 감자탕, 기네스, 던힐 이후에 4번째 맛 리스트에 운동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작위적인 취향은 그렇게 아득한 추억이 돼 버렸습니다. 


팬토마임을 잘 하는 방법은 눈 앞에 무언가가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려야 한다고 합니다.

영화 <버닝>에 나오는 대사죠. 영화에서는 귤을 두고 팬토마임을 하는데요. 코끼리를 생각하면 코끼리가 생각나는 것처럼, 귤이 없다는 걸 인식하는 순간 그 귤이 나타나는 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운동을 좋아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운동을 의식하는 순간, 더 이상 운동은 운동이 아니게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또 모르잖아요. 언젠가 정신을 차려보니 숨을 쉬듯이 몸을 움직이고 있을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