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네의 소란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뜨내기 생활을 하시는 분들은 아실 거예요. 정처 없이 떠돌다 보면 나름의 생활살이 습관이 생기곤 하잖아요. 가령 집 근처에 나만 아는 단골 술집을 만든다든지, 어떤 방이든 애착 조명을 놓아 내 입맛에 맞게 꾸민다든지, 아니면 집에 돌아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을 찾아낸다든지. 분명 낯선 공간을 내 생활에 들이는 요령일 거예요. 새 학기 새로운 친구들을 맞이했을 때 친구 이름이 입과 귀에 익도록 그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르는 것처럼 말이에요.
저는 동네를 샅샅이 파헤쳐보는 편이에요. 동네 경험치가 없으니 벼락치기로 공부하는 거죠. 어떤 곳이었는지,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근처엔 어떤 공간이 있는지, 의식적으로 궁금해해요. 친구들의 작은 습관이나 속사정을 알아채면 조금은 더 애정이 가는 법이잖아요. 관계는 관심과 시간이 만들어주곤 하니까요.
2년 전 이맘때 신림동 쑥고개에 이사를 왔어요. 복작복작한 신림역 술집거리를 지나 도림천을 따라서 내려오면 등장하는 언덕. 족히 60 º 는 돼 보이는 사악한 이 언덕 사이사이로 빌라와 구옥들이 숲처럼 오밀조밀 모여있어요. 원래 신림동은 원룸만큼이나 소나무가 많았다고 해요. 이 마을이 관악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어, '수풀이 우거진 동네'라는 이름을 지어준 거겠죠.
'쑥고개'라는 이름도 '신림'과 짝을 이뤄요. 쑥고개에도 역시 소나무가 울창했었는데요. 그래서인지 숯을 굽던 가마가 있었대요. 처음엔 숯가마가 있는 고개, 숯고개라고 불렸어요. 그런데 치읓 발음이 불편했던 것인지, 아니면 된 발음이 편해서 인지 숯고개에서 쑥고개로 이름이 변했다고 합니다. 언덕이 '쑥'하곤 솟아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생각했는데, 오해였죠. 신림동과 서울대입구역을 잇는, 초록색 5517번 버스가 오르기 힘들어할 정도로 경사가 무시무시하거든요.
신림동 쑥고개의 하루는 여느 동네만큼이나 분주해요. 아침이면 벽돌만 한 법전을 들고 대학동으로 떠나는 고시생들, 허겁지겁 나온 듯 반쯤 말린 머리카락을 그대로 둔 직장인들, 갖은 나물을 바구니에 가득 채워 떠나시는 할머님들, 밤새 놀았는지 눈에 피로가 가득한 사람들까지. 다채로운 사람들이 산채비빔밥처럼 버스에 뒤섞여 2호선 신림역으로 향해요. 침묵이 흐르는 아침 버스는 각자의 사정이 가득해 시끌벅적하죠.
밤이면 경쾌한 소리들이 랩소디처럼 펼쳐져요. 술집 사이로 쩌렁쩌렁 울리는 EDM 음악과 쉴 틈 없이 나타나는 배달 오토바이 배기음이 악장을 나누듯 순서대로 들려오죠. 쑥고개 아래 도림천엔 날렵한 몸놀림으로 하프코트를 뛰고 있는 신림 마이클 조던, 오와 열을 맞춰 숨 가쁘게 뛰는 관악 우샤인 볼트가 땀을 흘리고 있고요. 괜히 배산임수가 중요하다곤 말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앞으론 어른들 말씀을 유의 깊게 들어보려 합니다.
출퇴근했던 1년 반, 신림에 대한 단상은 이렇게 아침과 밤뿐이었어요. 최근 백수가 되고 나니, 신림의 나머지 9시간을 겪을 수 있었어요. 아침 9시 반이면 주민센터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우르르 나오셔요. 한 손엔 집게와 다른 한 손엔 쓰레기봉투를 씌운 손수레를 끌곤 출발하시죠. 노란 조끼를 입고 골목 여기저기를 살피시는데요. 쾌적하진 않지만 동네가 망가지지 않는 건 이런 작은 움직임들 덕분일 거예요.
집 앞 주차장엔 할아버님들의 매일같이 만나는 모임터가 있었어요. 한 번은 소리가 벽에 울려 대화를 엿들은 적이 있는데요. 국정을 서슴없이 논하시는 이야기를 들으니, 연륜이란 거침없는 모습에서 드러나는 것인가 싶었어요. 부득이하게 낮에 쓰레기를 버릴라 치면, 저녁에 버리라며 서부 보안관처럼 날카로운 눈치를 주시곤 하셨거든요. 한 나라의 질서는 쓰레기 버리는 시간을 지키는 것에서 세워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에요.
곧 신림을 떠나요. 언제나 그랬듯 2년은 순식간이더라고요. 정을 붙이려, 애착이 가려하면 계약 만료일이 다가와요. 당최 표준 계약기간 2년은 어떻게 정해진 것인지. 불평을 하려면 한 세기는 더 일찍 태어났어야 했는데 말이죠. 아쉬운 마음에 이렇게라도 신림의 소란을 남깁니다. 꽤 괜찮은 동네였어요. 신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