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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범 Sep 27. 2022

인연을 말할 때 우리가 마주하는 향기

1990년.

유럽에서는 독일민주공화국과 독일연방공화국 사이 평화의 물결이 일어날 조짐을 보였습니다. 영국의 과학기술자 팀 버너스 리 박사는 월드 와이드 웹(WWW)을 준비하고 있었고요. 이후 그는 인터넷 세상을 바꾼 웹의 아버지라 불렸죠. 그 해 한국에선 장마전선이 활성화되고 있었습니다. 전례가 없던 큰 폭우였어요.


한편, 태평양 너머 미국에서는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NASA 관계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어요. 명왕성 부근을 지나고 있던 보이저 1호의 카메라를 반대로 돌려 지구를 촬영하자는 게 그의 제안이었죠. 1990년 밸런타인데이, 보이저 1호는 태양계를 벗어나기 직전 자신이 떠났던 고향을 향해 돌아보고는 사진을 찍었습니다.

1990년 2월 14일, 태양계를 벗어나기 전, 보이저 1호가 지구에 보내온 사진. 주황빛 채광 사이 빛나는 점이 지구다. 사진 = NASA

페일블루닷(Pale Blue Dot). 보이저 1호가 보내온 밸런타인데이 선물에는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별명이 붙었어요. 그 모습은 티끌처럼 보이는 지구였습니다. 64억km 정도 떨어져 바라본 지구는 푸른색의 창백한 점에 불과했죠. 칼 세이건은 이 사진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것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봤을 모든 사람들.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저곳에서 삶을 영위했다. (중략) 여기,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칼 세이건은 이 사진을 통해서 우리가 지녀야 할 겸허함과 책임감을 역설했습니다. 우리의 오만함을 경계하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들을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고 설명했어요. 다만, 저는 사진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읽었어요. 무수한 인연들이 저 작은 점 속에서 이어지고 일궈진다는 생각, 이 낯섦이 마음속에서 일었습니다.  




수원 행궁동, 페일블루닷. 자세히 봐야 찾을 수 있다.

수원 화성행궁에서 창백한 푸른 점을 다시 만났어요. 시멘트 철골이 드러나있던, 어느 카페의 향이 인상 깊었는데요. 그 향을 따라가다 보니 라이프 프레그런스 브랜드, ‘페일블루닷’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됐어요. 우연히도 카페 근처에 매장이 있었죠. 짙은 청록색 기와를 얹은 새하얀 구옥. 건물 2층을 향해 놓인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다채로운 향들이 먼저 마중을 나왔습니다.


페일블루닷은 여행의 순간을 향으로 기록하는 브랜드였어요. 조향사님이 여행지에서 겪은 감각, 느낀 영감, 스친 순간들을 향으로 풀어냅니다. 가령 ‘양양’은 양양 서피비치의 시원하면서도 청량한 느낌과 서퍼들의 매혹적인 맵씨를, ‘산겐자야’는 일본 산겐자야의 어느 커피거리를 메운 짙은 커피 내음을 표현해내죠. 원두를 탈 듯이 볶는 고배전 방식으로 로스팅해, 그 거리의 커피 향이 뇌리 속에 더욱 깊게 박혀있다고 덧붙였어요.


아름다운 향을 전하고 싶다는 조향사님의 마음이 병에 담겼다.


조향사님은 그 모든 감각과 영감, 순간들이 하나의 인연이라며, 그 인연을 기록해 소개하고 싶었다는 마음이었다고 해요. 그의 이름이 향기 ‘향’, 아름다울 ‘미’, 그래서 '향미'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미묘한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마도 너무 절묘해 보였기 때문이었겠지요. 본명이라며 덧붙인 그의 농담에 빠져, 디퓨저 한 병을 손에 쥐고 말았습니다. 비자나무 숲의 향이었어요. 이 향을 만난 것 또한 인연이라면, 인연이겠죠. 언제나 그랬듯, 인연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어지는 법이니까요. 


인연을 말할 때, 우리가 마주하는 향기


인연을 말할 때, 우리는 우연과 필연을 동시에 떠올리곤 해요.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우연과 필연에 대해 이야기하며, 인연이 이뤄질 가능성을 유쾌하게 풀어냈어요. 프랑스 파리에서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는 비행기에서 '사랑에 빠지게 될' 클로이를 옆자리에서 만날 확률을 계산했죠. 


그렇게 하면 클로이와 내가 12월의 어느 아침 영국 해협을 날아가는 브리티시 항공 보잉 767기에서 만날 최종 확률이 나오는데, 그 수치는 989,727분의 1이다.


숫자는 명확함을 선사하곤 해요. 글을 수로 바꿀 때면, 단어가 지녔던 의미가 날카롭거나 명백하게 다가오곤 하죠. 989,727분의 1. 우리는 인연을 다룰 때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약한 가능성을 뚫고, 당위적으로 만나게 될 것이었다며 호소해요. 아무런 인과 관계없이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됐다며 운명론적인 주장을 펼치기도 합니다. 


책장에 올려놓은 비자림 향 디퓨저. 스틱은 한 달에 한 번 갈아야 하며, 100ml 기준 약 3달 동안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때론 인연이 아니라는 말을, 쉬이 삼키기 어렵기도 해요. 인연의 가능성에 대해 마치 종교와 비등한 믿음을 지니고 있다면, 인연을 부정하는 말은 더 거북하게 다가오기도 하죠. 아무래도 가능성에 대한 얄팍한 믿음 때문일 거예요. 우연을 부정당하면, 확률을 계산하는 이성적인 주장들로 내세워요. 그렇게 실낱같은 가능성으로 상대에게 납득시키고 싶은 마음이 앞서죠. 또 서로가 퍼즐처럼 맞지 않는다고 해도 그저 이어졌다는 사실 하나에 기대며, 가능성 하나에 운운하는 모습입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우연에 연연한다든가, 필연에 미련을 가진다고 말하곤 해요.


인연을 말할 때,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마주하게 돼요. 작은 점에서 벌어지는 우연과 필연, 그리고 이어지는 미련과 연연. 이 무수한 이야기들이 창백한 푸른 점, 우리 주변에서 오르고 내립니다. 그 이야기들이 때로는 무겁게 다가오기도, 때로는 가볍게 다가와요. 어떨 때는 그 스스로를 빛나게 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깊은 상처로 남기기도 합니다. 보편적이면서도 낯선, 인연은 참 다양한 모습을 지녔죠. 


인연은 수많은 모습으로 우리 도처에 흘러 들어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대체로 놓치곤 했어요. 우연히 만난 디퓨저 한 병을 손에 쥔 건, 그간 흘려보낸 인연들을 붙잡았어야 한다는 자책이었을 거예요. 칼 세이건의 말처럼, 공간의 광막함과 시간의 영겁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공유하는 기쁨, 이 기쁨이 인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인연을 말할 때 우리가 마주하는 향기가 있다면, 그 기쁨이지 않을까요. 아직은 그 향을 만나지 못했어요. 그 때까지는 제 방을 가득 채운 비자림향을 붙잡아두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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