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주변을 서성이던 그 녀석의 이름이 궁금했다.
베란다에 오래 놔둔 듯한 오렌지 빛 털, 며칠은 먹이를 찾아 헤맨 듯한 꾀죄죄한 몰골, 아이러니하게도 그 몰골에 반하는 육중한 몸매. ‘그 녀석’은 신출귀몰한 행적, 시니컬한 눈빛으로 동료들을 놀라게 한다. 표정만 두고 보면, 녀석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속 주인공 고양이를 떠오르게 한다.
어두컴컴하고 축축한 곳에서 야옹야옹 울던 기억만 녀석에게 남아, 그는 차가운 시선만 내비치는 것일까. 마치 손 아래의 존재로 취급하는 듯한 그 시선에 지고 싶지 않았다. 녀석이 루팽처럼 이름도 흔적도 남기지 않을 작정이라면, 나는 그 의도에 대항하고 싶은 나쁜 마음이 들었다. 물론 무더운 날씨와 출근길에 거치는 가파른 오르막길 때문에 기분이 상해서만은 아니다.
점차 날카로워지는 감정을 무디게 만들려면 적어도, 그의 이름만은 알아내야 했다. 작은 승리를 꿰차, 기분을 반전시키고 싶은 느낌. 그래서 이번 작전을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작전명 : 너의 이름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자. 힌트는 첫 발자국에 남아있는 법이다. 녀석이 처음으로 조직 내 공식석상에 언급된 시기는 지난해 12월 22일 늦은 오후다. 철면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도, 사옥 푸드 스튜디오에서 스밀스밀 올라오는 고기 내음에 마음이 기우는 표정은 감출 수 없었나 보다. 이 짧은 사진으로 힌트를 얻었다. 그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출중한 후각을 무기로 삼아, 우리의 시야 밖에서 우리를 관찰하고 있었다. 음흉하다.
탐정 반경을 넓히기로 했다. 위로는 정갈한 카페, 아래로는 사람들이 붐비는 카페까지 감찰 범위를 확장했다. 의식적으로 주변의 화분 뒤, 쓰레기통 옆, 차량 아래를 들췄다. 드럼통 같은 몸을 감추기 어려울 텐데, 녀석은 꼬리를 밟히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약 3개월이 지난 4월 22일 금요일 늦은 밤. 지하 1층에서 올라오는 계단 난간 틈에 매달려 있는 녀석을 발견했다. 스튜디오는 요리를 멈췄으니, 음식 때문은 아니다. 무슨 일 일까. 내 의심에 대해 그는 강남거리의 회색빛을 닮은 무채색 시선으로 받아쳤다. 동물의 시선을 흘리면 안된다는 강형욱의 조언을 떠올려, 나 역시 눈빛을 고정시켰다. 영화 <타짜> 속 고니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싸늘한 기운을 닮은 분위기가 천천히 둘 사이를 채웠다.
내 눈은 녀석의 발보다 빨랐다. 녀석이 뒷발을 말고 허벅지 근육을 응축시켰다. 도약의 신호다. 함께 달렸다. 다만, 4천 년 전 이집트인들이 키운 고양이 ‘마우’처럼, 그의 달리기 실력은 날랬다. 그의 꼬리를 편의점 앞에서 놓쳤다. 편의점? 수사 선상에서 편의점은 배제했었다. 그렇다. 그간 나는 편의점을 놓치고 있었다.
40번지에 자리 잡은 편의점은 안경 쓴 아르바이트 생과 점장(으로 추정되는) 여사님이 운영한다. 여사님은 평일 오전에 주로 자리를 지키지만, 최근에는 주말에도 카운터에서 계산을 한다. 아르바이트생들의 근무 태도에 농담 섞인 불만을 토로하시던 찰나, 궁금증을 찾지 못하고 먼저 물어봤다.
“여사님, 오렌지색 고양이 아세요? 여기 근처에서 보이던데”
여사님은 곧장 답해주셨다. “아 알죠.”
“혹시, 이름 아세요? 어디서 왔는지나?”
“아 하하, 잠시만요”
삑-삑. 카드를 뽑아주세요. 주문이 밀렸다. 여사님의 대답을 기다려야 했지만, 약속 시간이 다가와 편의점 문을 나섰다. 녀석의 눈빛처럼 서늘한 밤공기가 두툼한 맨투맨을 뚫고 들어왔다. 어디선가 바라보고 있으려나.
허무한 결말. 결국, 녀석의 이름을 찾아내지 못했다. 어쩌면, 그의 이름을 찾고 싶은 마음이 내겐 욕심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누군가에게 꽃이 될 수도 있는 소중한 이름을 단 며칠 만에 밝혀내려 했으니 말이다.
하긴, 나쓰메 소세키는 <나는 고양이소로이다>를 이렇게 시작했다.
“나는 고양이, 이름은 아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