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ink Glove Aug 31. 2019

우선 살부터 빼고 오겠습니다

5-2 체지방 38%

선호와의 대화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호텔에서 웃으며 헤어졌고 또 보자는 인사를 하며 발렛 파킹 직원이 건네준 키를 받았고 손을 흔들며 차에 탔다.

신호를 기다리는데 눈물이 핑 돌더니 금세 차올라 빰을 타고 내렸다.

헛구역질이 난다. 억지로 삼켰던 스테이크와 디저트가 역류하는 느낌이다.

몇년간 감추어 두었던 상처를 괜히 꺼내어 한번더 후벼팠다. 그래. 내가 살을 조금 뺀다고 선호가 갑자기 나를 좋아하게 될 수 는 없다. 머리로는 그것을 빤히 알고있으면서 괜한 기대를 하고 괜한 상처를 입었다.

전부다 괜한 짓 이었어.


집에 도착해, 갑갑한 옷을 벗어 던지고 침대에 누웠다. 속옷을 비집고 나온 내 뱃살과 허벅지 살이 보인다. 더 비참했다. 그렇게 노력을 했어도 이게 전부구나. 인스타의 여자들은 어떻게 그렇게 날씬하고 예쁜 걸까. 선호의 마음을 사로잡은 장쯔이 닮은 그 여자는 어쩜 그렇게 예쁠 수 있지. 결국 나란 존재는 그런 여자들을 더 빛나게 해주는 들러리정도밖에는 되지않는 것이다.또 다시 상대방은 알지도 못하는 실연을 또 받고 말았다. 한참을 울고나도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다음날, 동원이의 연락에 집근처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어두운 표정이 티가 많이 났는지 무슨 일 이냐고 묻는다. 솔직히 말했다. 선호가 좋아하는 여자가 있대. 정말 예쁘더라. 그 말을 내뱉으면서도 스스로 심장을 후벼파는 듯이 마음이 아팠다. 동원이는 잠시 할 말을 잃었는지 침묵을 지키다, 그래도 둘이 사귀는 것도 아닌데 그 정도로 상처받지말라고 그 나름대로의 위로를 해주었다.

'그래서...다 포기할 거야?'

'뭐...그렇게 해봐야 난 결국 이정도 밖에는 되지않는거니까...'

동원이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진심을 담은 충고를 해주었다.

'아니야. 넌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어. 아깝지않아? 이제 겨우 좋아지기 시작했는데 벌써 포기하는거?'

그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았다. 생글 웃으며 동원이가 말을 잇는다. 지금껏 해온게 아깝지않냐고. 너 지금 건강해지고 예뻐지고 있는데 이정도로 그만두지 말라고.

'네 말이 맞네...'

우선 선호를 잊으려면 마음을 쏟을 다른 무언가가 필요한 것은 확실했다. 동원이가 잠시 자기와 가자며 차에 타라고 한다.


[Weight Loss Challenge]

동원이가 데려온 곳은 건강식품이나 운동기구를 파는 헬스 샾이다. 매장 곳곳에 챌린지 광고가 붙어있다.

'젬마, 나랑 이거 참가하자. 여기서 1등하면 현금으로 7000달러를 준대.'

'7천?'

그래. 이제 연애는 물건너 갔고, 돈이나 제대로 벌어볼까?

상냥한 미소를 띈, 금발의 근육질 직원이 궁금한 것이 있느냐며 다가왔다. 나는 의지가득한 눈빛으로 나도 저 대회에 참가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직원은 친절하게 좋은 생각이라며 이쪽으로 와보라고 한다. 신발을 벗고 기계 위로 올라가니 몸무게가 화면에 뜬다. 어제 속상하다고 밤늦게 와인을 좀 마셨더니 숫자가 또 올라갔다. 곧이어 그는 프린트를 가져오더니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몸에 근육이 없고 지방이 많으시네요. 체지방률 38%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우선 살부터 빼고 오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