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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k Glove Sep 23. 2019

우선 살부터 빼고 오겠습니다.

체지방률이 38 퍼센트인 몸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되는걸까.

나름 한동안 꾸준한 운동과 건강한 저녁을 지속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나아진 수치가 이정도 인걸까.

괜찮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되니까. 스스로를 다독였다.

크게 바라는 것은 아니고 작년에 나름 큰 맘먹고산 앤 타일러의 재킷을 여유있게 소화할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오피스 룩 브랜드이건만 사이즈 14는 커녕 12도 찾기 힘들다. 너무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나와서 사이즈 10을 우선 사놓고 보았는데, 우선 사놓고 몸을 맞춰볼 계획이었는데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는 동안 동원이가 옆에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다.

'무슨 생각해?'

'아 아니야. 그냥 잘,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있었어.'

'그래. 그래서 말인데 우리 운동 코스를 좀 바꿔보자.'

'무슨 코스?'

'보니까 집근처에 가벼운 등산코스가 있더라고. 지난번에 혼자가서 걸었더니 한 5킬로 정도 되던데, 일주일에 두번 정도는 그곳에 가서 빠른 속도로 걷고, 최종적으로는 달릴 수 있도록 노력해 보자. 그리고 아파트 내 피트니스 센터에서 본격적으로 근력운동을 배워보는 건 어떻게 생각해?'

'배워보자고?'

'응 대학원 동기가 우리 아파트 근방으로 이사올 건데, 그 친구가 취미삼아 보디빌딩을 했대. 남 운동 가르쳐주는 것도 좋아해서 나를 본격적으로 가르쳐 주기로 했는데 너도 같이 부탁해볼게.'

'그래? 전문적으로 가르쳐 주는 거라면 비용을 지불해야하지 않을까? 너는 친구지만 난 남인데'

'그게 서로 편할 것 같기는 해. 그럼 비용관련해서도 물어보고 알려줄게.'

'그래. 알려줘. 근데 너는 이미...운동이 더 필요해?'

'아. 난 그 친구를 보고 좀 자극 받은게 있어서, 내년엔 보디빌딩에 한번 도전해 볼까해.'


동원이와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텅 빈 냉장고가 생각나서 장도 볼겸 프레시 마켓에 들렸다. 이왕 건강해지기로 결심한 거, 유기농으로 제대로 먹어보자.

보기만 해도 건강해질 것 같은, 유기농 야채칸으로 들어섰다. 서늘할 정도의 냉장칸에는 신선해 보이는 시금치, 물기 맺힌 보라색 가지, 비닐에 담기지 않은 채 낱개로 쌓여있는 주황색 당근들까지. 웅녀가 사람이 되기위해 마늘과 쑥만을 먹었듯이 나는 정상 체지방률을 갖기위해 이런 야채들을 먹어야하겠지. 이토록 먹음직스럽고 신선한 야채들이 집에 들어서기만하면 천덕꾸러기가 되어 냉장고 한켠을 차지하다가 음식쓰레기가 되기 직전에나 눈에 띄는 것이 참 의문스럽다.    

당근과 버섯, 그리고 싱싱한 파 한단을 집어 카트에 넣었다. 육류 코너에 가서 붉은 소고기 한근과 손질된 닭 살코기를 한팩 고르고, 자연에 놓아기른 건강한 닭이 낳았다는 달걀도 한 팩 담았다. 냉동식품 코너에서는 손질 된 브로콜리 한 팩만을 담아넣었다.

평소보다 가벼운 쇼핑백을 들고 주차장에 세워둔 차로 걸어갔다. 평소와 달리 스팸도 안샀고, 캔스프도 사지 않았다. 프레쉬 마켓에서 습관적으로 사던 와인 한병도 오늘은 사지않았다. 술을 마시며 며칠 전 있었던 두번째 실연을 잊고 자고싶지만, 그런식으로 내 자신을 또 학대하고 싶지않았다. 예쁘고 안 예쁘고를 떠나서 나에선 하나뿐인 소중한 나 자신을 그런식으로 학대하는 짓은 더 이상 하지않겠다고 생각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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