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는 오르가슴을 느낀 적이 있나?"
분주한 강의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복학을 준비하면서 현수는 난생처음으로 향수를 샀는데 오늘 아침에 향수를 좀 많이 뿌렸나 싶었다. 그리곤 교수가 하필 그 질문을 나한테 한건 이 망할 놈의 향수 때문이라고, 그 찰나에 대답 대신 향수를 떠올렸다. 현수를 빤히 바라보던 교수는 고개를 들어 강의실을 둘러봤다.
"쯧쯧 아직 환희를 느껴본 적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지. 혹시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 중에는 없나?"
현수는 뒤를 돌아볼 순 없었지만 교수가 결국 대답을 듣게 되지 못할 거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전역 후 첫 수업은 건축학 개론. 같이 복학한 친구가 족보가 있다며 꼬드겨 듣게 된 수업이었다. 교수의 오르가슴 발언으로 강의실은 침 넘어가는 소리만 들리는데 하얀 화면 위로 사진이 떠올랐다.
"쾰른 대성당이다. 고딕양식이지. 아까 말했듯이 오르가슴은 환희다. 나는 이 성당을 보면 언제나 전율이 인다. 구토가 나올 정도로 마음이 울렁인 적도 있다. 자네들이 무엇을 상상했던 죽기 전에 꼭 절정을 느끼길 바란다."
그날 현수는 꽉 찬 시간표를 끝내고 버스를 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침보다 옅어진 향수냄새를 맡으며 현수는 초등학교 운동장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가. 모두가 떠난 운동장에서 마지막까지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흔들거리고 있는데 한 방울 두 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졌다. 재빠르게 철봉 위에 앉아 비가 흙에 떨어지는 걸 보고 있는데 바스락 거리던 흙은 점점 선명해졌다. 어린 현수는 철봉에서 훌쩍 뛰어내려 신발을 벗고 조심스레 젖어가는 흙에 발을 댔다. 한발 한발 걸으며 발바닥의 간지럼을 즐겼다. 축구골대 옆 조금 낮은 곳엔 갈색 웅덩이가 생겼는데 아예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첨벙거렸다. 몸을 대자로 뻗어 마침에 웅덩이에 머리까지 눕힌다음 내리는 비로 얼굴을 씻겼다.
현수는 알고 있었다. 아무 이유도 묻지 않고 자신을 받아준 건 그때 그 비에 젖은 흙과 패인 땅에 고인 물웅덩뿐이었단 걸. 그리고 보드랍게 얼굴을 씻어주었던 하늘이 보내준 빗방울까지. 그날 저녁 고열에 시달리며 입이 마르도록 앓았지만 소년의 마음에 한없이 피어났던 충만함. 현수는 그 순수한 환희를 떠올렸다.
그토록 갈구했던 사랑. 그가 원했던 사랑은 결국 그때도 어른이 되어서도 받지 못했지만, 원하지 않아도 그를 한껏 차오르게 하는 거대한 사랑이 어디 있는지 그는 안다. 그를 압도할 그랑 아무르(grand Amour).
현수는 버스 밖의 풍경을 바라봤다. 나무를 보고, 그 밑의 흙을 보고, 걷는 사람들을 보다가 하늘을 봤다.
그리고는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