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공드리 『Eternal sunshine』
1.
영화 Eternal sunshine의 원 제목은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라고 한다. 짧은 실력으로 해석하자면 ‘티 없는 마음의 영원한 햇살’ 정도?
그래서인지 사실 Eternal sunshine이라는 키워드만으로 이 영화를 바라보기엔, 조금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다. 단순히 「영원한 햇살」이라고 하기에는 떠나가 버린 그가 너무나 아프고 뜨거운 여름날의 땡볕 같을 테니까. 게다가 지금도 당장 힘들어 죽겠는데, 영원하다니! 그건 너무 끔찍할 테니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영화 속의 남자 주인공은 마치 ‘이건 영화니까!’라는 것을 각인 시키듯 그녀에게 다시 돌아간다. 영화니까 그럴 수 있는 거다. 영원할 수 있는 거다. 현실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그는. 절대. 내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다시는.
이쯤 되면 화가 난다. 도대체 왜 만났을까? 뭐가 좋았을까? 이렇게 쉽게 변할 거면서 왜 내게 그렇게 예쁘게 웃었을까? 이런 생각들은 결국 시간 낭비, 돈 낭비, 감정 소모 등으로 귀결된다. 생각이 여기까지 뻗치면 이제 모든 것들이 지겹다. 6개월 간 모아둔 적금을 몽땅 깨서라도 날아가고 싶다. 영화 속에 등장했던, 기억을 지워주는 그 말도 안 되는 병원으로.
그래. 우리 뜨겁게 사랑했다. 그러나 해는 결국 저물어버렸고 그는 나를 떠났다. 봄 소풍을 끝낸 아이가 잔디밭에서 자리 털 듯 그렇게 훌훌. 그럼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세상에서 제일 사랑했던 사람이 나를 떠난 마당에. 일에 미친 듯이 몰두해서 Burn out? 술을 진탕 먹고서는 그냥 Black out? 아니면 이 모든 현실을 부정하듯 이대로 눈멀어서 White out? 무슨 짓을 해도 내가 그에게 out되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
2.
더구나 이쯤 되면 지난 날 들에 대한 후회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온다. 내 기준에서는 ‘자아성찰’의 시간이고 친구들의 입장에서는 ‘진상타임’의 시간이.
그렇다. 상실의 제 1단계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언뜻 보면 감독은 이 배신감과 우울함 그리고 분노의 시간들을 건너 뛸 수 있게끔 남자 주인공 ‘조엘’의 모든 기억을 깨끗이 지워준다.
물론 시술은 나빴던 기억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그 reviewing의 시간동안 문득 지우고 싶지 않은 기억들도 있다는 것을 하나 둘 씩 깨닫게 된 조엘은, 그녀-클레멘타인-의 모습들을 자신의 유년기억이나 말도 안 되는 무의식 속에 숨긴다. 하지만 물론 부질없다. 어쩌면 유년시절의 기억들도, 그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함께 성장해 온 그의 무의식도, 클레멘타인을 만나기 위해 존재했던 것일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 때 그 명확한 이유를 찾지 못하는 건, 그것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와 같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을 만나기 위해. 나의 모든 시간과 우주를 통틀어 이 생애에서 너를 만나기 위해. 그 때 그 시절의 너를 눈부시게 사랑하기 위해.
3.
그런데 여기서 잠깐, 조금 신기하고도 재밌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바로 그 기억을 지우는 병원의 간호사이야기다. 그녀는 병원의 한 남자 의사를 동경한다. 그를 보는 그녀의 눈에는 애정이 가득하다. (다음 이야기는 영화로 보는 게 더 재미있을 테니 나머지는 여기서 생략하기로 한다) 그리고는 니체의 명문이 등장한다.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그러나 그 어떤 기억이 지워졌건, 그들의 의지가 어찌되었건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가진 마음의 방향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사랑이라는 것은 ‘망각’이나 'mind'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순수하게 'heart'가 가리키는 방향 쪽으로 향한다. -애초에 마인드 컨트롤이 될 문제였다면 원태연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라는 시 따위는 쓰지 않았겠지!- 기억은 지워져도 사랑했던 그 마음만은 영원하다. 그래서 이 영화의 풀네임은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는 ‘티 없는 마음의 영원한 햇살’
4.
나는 이제 생각한다. 인연이 아니어서 헤어진 게 아니라 인연이었기에, 우리가 만난 것이라고. 지나간 우리의 시간들은 어쩌면 온 우주를 한 바퀴 돌아 우리에게 주어진 「두 번 째」 기회였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다시 태어나도 너를 사랑할거야” 라는, 닭살 섞인 엄마에 대한 아빠의 애정표현을 조금은 이해한다. 나는 아마 그 모든 기억을 지워도 너를 다시 사랑하게 될 테니까. 내 마음이 그럴 테니까. 그 때 그 시절의 너를 사랑하기 위해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난 걸지도 모르니까. 너를 사랑했던 그 때의 내 마음은 망각이나 스러져가는 기억 따위가 함부로 지울 수 없는, 살아가면서 한 번쯤 눈부시게 나를 비춰줄 영원한 햇살이 될 테 니까.
그러니까 네가 봄날에 소풍 온 아이처럼 미련 없이 일어섰다면 나는 그 이듬해에 피어나는 잔디처럼 너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내년에 네가 오지 않는다고 하면 아마 다른 사람이 올 지도 모른다. 그도 나를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을 것이다. 아직 내게 찾아오지 않은 시간들 속의 나를, 뜨겁게 사랑해주기 위해.
그리고 나 또한 네 마음 속 어딘가에 분명히 남아있으리라 믿는다. 그 티 없이 사랑했던 시절의 한 줄기 따듯한 사람으로.
5.
인연이 아니었기에 헤어진 거라구요?
아니요. 인연이었기에 만난거에요, 우린.
* Michel Gondry, <Eternal sunshine>, 2005.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