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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a Nov 16. 2023

미국 초등학생의 사교육

얼마나 시킬 것인가

엄마 나 오늘 워크북 하기 싫어


그래, 오늘 수영도 가야 하고 새로 산 책도 읽고 싶을 텐데 문제집 풀기 싫겠지. 그래도 해야지 어째 그건 우리의 약속인데.


거실 바닥에 엎드려 국어 문제집을 풀며 칭얼대는 아이를 보면 그냥 하지 말라고 할까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내가 초등(국민)학생일 땐 학교 끝나고 집에 와서 친구들하고 온 동네를 누비다 저녁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야 다시 집에 가곤 했는데, 친구들하고 놀려면 부모들이 약속을 잡아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집 어린이는 집에 오면 워크북부터 편다. 집에 책상도 책도 없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 자각도 없던 시절을 거쳐온 우리와 지금 세대의 아이들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괜히 짠하다. 일반적인 미국 아이라면 안 해도 됐을 한국어 공부까지 해야 하니 말이다.


내가 받은 첫 사교육은 뭐였더라. 지금은 아마도 사라진 것 같은 주산학원이었다. 토요일에 학교 끝나고 거의 온 학교 애들이 몰려가 책걸상이 빼곡히 찬 큰 강당 같은 곳에 앉아 선생님이 부르는 엄청 긴 숫자를 주판으로 계산하곤 했다. 어떤 날은 영화를 보여줬는데 강시(이거 모르는 사람 많겠죠)가 나와서 무서워하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5학년 2학기 때 서울로 이사를 오자마자 남동생과 함께 동네 보습학원에 다녔다. 학교 숙제 봐주는 정도의 학원이었고 몇 달 다녔던 것 같다. 그러다 영어와 수학만 가르쳐 주는 보습학원을 중1과 고2 때 일 년씩 다니고 나의 사교육은 끝났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최선의 지원이셨을 텐데 학원비가 늦는다고 원장님한테 불려 가는 날이 많아서 그만둘 땐 꽤나 후련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우리 집 어린이는 요즘 세 개의 사교육을 받는다. 주중에는 수영을 30분 하고 미술수업을 1시간 받는다. 이동의 제한 때문에 아이를 주중에 학원에 보내는 건 아예 생각도 없었는데 재택근무하는 남편이 고맙게도 시간을 쪼개주어 차로 15분 거리의 수영학원을 보내고 있다. 미술은 동네에 한국 선생님이 가르치는 곳이 있어 학교 끝나고 걸어서 수업에 들여보내고 집에 온다. 토요일에는 한국학교에서 약 네 시간의 수업(미술 추가 50분 포함)에 참여한다. 아이 친구들을 보면 댄스(재즈, 발레, 힙합 등), 각종 스포츠(수영, 농구, 축구, 소프트볼, 스케이트, 태권도 등), 연극, 악기(피아노, 바이올린, 드럼 등) 등 공부만 빼고 대부분 몇 개씩은 배우고 있다. 공부하러 다니는 아이는 주변에서 아직 못 봤는데 이 도시에 구몬학원이 몇 개 있는 걸 보면 좀 더 큰 아이들은 다니는 것 같기도 하다. 여기 사람들은 보통 둘 이상의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떻게 시간 겹치지 않게 매번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기다렸다가 데려오는지 모르겠다. 미국 부모들은 공부 이외의 모든 것을 가르치는 데 다들 진심인 것 같다. 그걸 보면 우리 아이는 지금 배우는 것 이상으로는 배우기 어려운데 기회를 너무 적게 주는 건 아닐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집 앞 상가에 있는 학원에 걸어서 데려다주거나 먼 곳은 셔틀 태워 보내고 부모는 볼 일 볼 수 있는 한국이 얼마나 좋은 환경인지, 아이가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더 절실히 알겠다. 


집교육으로는 매일 영어 챕터북 읽기와 문제집 두 장씩 풀기를 하고 있다. 영어 챕터북은 처음엔 내가 읽어주다가 이제는 아이가 읽고 있는데 실력이 느는 게 눈에 보인다. 이것도 조금은 영어책을 한국책 읽듯이 했으면 하는 부모의 욕심을 담아 하고 있는데 아이가 좋아해서 다행이다. 문제집은 한국에서 사 온 국어/수학/교과통합 세 권을 각각 두 장씩 푼다. 한 권을 두 달 정도면 끝내기 때문에 여름에 한국 갔을 때 대략 계산해서 사 왔는데 수학 문제집은 내 예측과 아이의 수준이 달라서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생겼다. 수학 문제집은 난이도별로 넉넉하게 사 와야 할 것 같다. 각 잡고 하면 2~30분 이내로 끝낼 수 있는 분량인데 어린이님의 상태에 따라 한 시간 넘게 걸리기도 한다. 그래도 싫다는 날보단 즐겁게 하는 날이 많아서 그것도 다행이다. 아이가 혼자서 공부하는 습관을 가져주길 바라며 시작했는데 이 년 정도 되니 어느 정도 달성한 것 같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책상에 앉아 그날의 문제집을 풀고 있는 걸 보면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아이가 좋아하는 과일을 막 준비하게 된다. 어쩔 수 없네 이 엄마란 것이.



+ 표지사진: UnsplashRachel




참고로 우리 집 어린이가 받는 사교육 비용은 다음과 같다.

+ 수영 1회 30분 = $42

+ 미술 1회 60분 = $35

+ 한국학교 16주 =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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